상폐할까요

①글로벌 스탠다드 저평가 자회사 퇴출, 회장님들 '선택의 시간'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국식 중복상장, 신규 종목 금지만으로 해소 어려울 정도 일본식 모델 주목하는 업계, 질긴 저평가 자회사 해명 요구로 기업이 자발적 해소

증권 | 안효건  기자 |입력
〈편집자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어 온 중복상장 이슈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쪼개기 상장으로 소액주주의 가치가 훼손되는 가운데, 정부와 시장은 일본식 모델을 참고한 자발적 해소 방안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해외 주요국 대비 현저히 높은 국내 중복상장 비율은 글로벌 투자자의 신뢰를 저하시키는 고질적인 요인으로 꼽힙니다. 이에 따라 자본시장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주주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본지는 기획 시리즈를 통해 국내 중복상장의 실태를 진단하고, 저평가 자회사 정리와 상법 개정 등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집중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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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투데이=안효건 기자|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인 중복상장 해소 방안으로 저평가 상장 자회사 퇴출이 부상한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 자취를 감추는 '저평가 자회사'에 대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면서다.

2024년 시가총액 기준 한국 중복상장 비율(18.4%)은 신규 상장 금지만으로는 주요국 수준에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미국(0.4%), 영국(0%), 프랑스(2%) 등 자본시장 선진국에 비해 압도적인 수치다. 재벌 등 한국과 비교적 유사한 기업 지배구조를 가졌던 일본(4.4%)이나 대만(3.2%)과 비교해도 턱없이 높은 수준이다. 기업 수 기준으로는 전체 22.5%로 그 비중이 더욱 커진다. 유가증권시장(코스피)만 놓고 보면 그 비율이 32.7%까지 치솟는다.

주요국 시가총액 기준 중복상장 비율 (단위: %) 한국 18.4% 일본 4.4% 대만 3.2% 프랑스 2.0% 미국 0.4% 영국 0.0% 2024년 기준

이런 격차를 만든 배경은 유망한 핵심 사업부를 물적분할한 뒤 별도 자회사로 상장시키는 이른바 쪼개기 상장이다. 이는 모회사 디스카운트로 이어져 소액주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해 왔다. 시장에서는 모회사가 갖는 자회사 가치가 상장 전보다 30% 이상 감소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0년 LG화학이 핵심 사업인 전지사업본부를 물적분할해 상장시킨 LG에너지솔루션 등이다. LG그룹은 상장 과정에서 사상 최대 청약 증거금을 모으는 등 자금 조달에는 성공했다. 정작 모회사인 LG화학 주주들은 극심한 지분가치 희석과 주가 하락을 경험해야만 했다. 최근까지 영국계 행동주의 펀드 팰리서캐피탈이 LG화학 주총에서 주주가치 훼손 문제를 공식적으로 지적하는 등 후폭풍이 이어진다.

중복상장을 둘러싼 시장 거부감은 갈수록 커진다. LS그룹은 앞선 중복상장 사례보다 강한 것으로 평가받은 명분으로 손자회사 에식스솔루션즈 상장을 추진하다가 좌절했다. 에식스솔루션즈는 일반적인 쪼개기와 달리 나스닥 상장사가 모태다. 상장 추진 과정에서는 공모주 주주배정 등 카드를 내놓은 바 있다.

일본 선례: 연성 규범 통한 자발적 해소 유도

자본시장에서는 일본과 같이 기존 중복상장 종목에 대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보다 앞서 중복상장 문제를 겪었던 일본은 연성 규범 압박으로 자발적 해소를 이끌었다. 일방적인 강제 퇴출이나 법적 금지보다는 기업 지배구조 보고서 등을 활용한 압박이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 등은 PBR 1배 미만 저평가 기업들을 타깃으로 모자회사 중복상장 구조를 유지하는 당위성과 그로 인한 밸류업 부진 사유를 상세히 소명하도록 요구했다. 이에 부담을 느낀 일본 기업들은 지배구조를 자발적으로 개편하기 시작했다.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전량 매입해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거나 시너지가 없는 자회사를 사모펀드 등에 매각하는 방식이다.

9.5% 2014년 ▼ 48.8% 급감 4.4% 현재 324 166 도쿄증권거래소 중복상장 기업 추이

그 결과 도쿄증권거래소 내 중복상장 기업 수는 2014년 324개(비중 9.5%)에서 올해 166개(4.4%)까지 유의미하게 급감했다. 일본 프라임(Prime) 시장에서 중복상장을 해소한 모회사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 상승률(56.8%)은 시장 전체 평균(49.1%)을 7.7%p나 웃돌았다. 자회사를 2개 이상 상장 폐지해 지배구조를 적극 개선한 기업은 주가 상승률 대비 PBR 상승률이 1.3~1.8배에 달했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중복상장인데 기업가치가 부진한 어색한 구조에서 가치를 어떻게 제고할 것인지 경영진이 직접 소명해 가는 과정은 당연하다"면서 "경영진이 이런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내놓기 어렵고 부담을 느끼게 될 때 일본 사례처럼 자연스럽게 자발적인 중복상장 해소가 일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우리 증시도 새로운 규제를 만들기보다는 현재 코스피 상장사 대상 기업 지배구조 보고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저평가된 모자 기업들에게 밸류업 계획을 묻는 압박으로 자연스러운 구조 해소를 유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도 압박 본격화, 이사 충실의무 확대

한국 역시 방향이 다르지는 않다. 당국은 상장사 PBR이 동일 업종 내 2개 반기 연속 하위 20%에 속하는 기업 명단을 한국거래소 밸류업 홈페이지에 상시 공표한다. 종목명 앞에는 아예 저PBR 태그를 노출시키는 '네이밍 & 셰이밍(Naming & Shaming) 제도'다. 국회 차원에서도 1배 미만 PBR을 2년 연속 지속하는 상장사에 기업가치 제고 계획서 공시를 의무화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추진한다.

가장 파괴력이 큰 변화는 이사의 충실의무와 적대적 인수합병(M&A) 제도 개편 등이다. 상법 개정에 따라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했다. 이사회는 과거처럼 지배주주의 이익만을 대변해 외부의 M&A 제안을 무조건 차단할 수 없다.

만년 저PBR 상태를 방치하는 지주회사에 높은 가격의 경영권 인수 제안이 오면 이사회는 전체 주주 이익 관점에서 매수 가격 공정성을 검토하고 일반 주주에게 상세히 공시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한국판 베어허그(Bear Hug·적대적 인수 제안) 도입을 의미한다. 지배구조 개편에 미온적인 저평가 중복상장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주주행동주의 및 M&A 타깃이 된다.

일각에서는 저평가 상장 자회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대주주 이익과 소액주주 손실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복상장 해소는 당연히 타당하다"면서도 "그 해소 방안으로 자회사 합병이나 상장폐지 등을 추진한다면 합병가액 등을 대주주뿐 아니라 소액주주 관점에서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설정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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