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리즈는 한국 증시에서 반복돼 온 중복상장 문제를 개별 기업의 일회성 논란이 아니라 자본시장 구조의 문제로 짚어보기 위해 기획했다. 모회사가 상장된 상태에서 핵심 사업이나 자회사를 상장하는 과정은 기업에겐 자금조달과 가치 부각의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기존 주주에게는 권리 약화와 가치 훼손의 경험으로 남아왔다. 카카오, LG, SK, HD현대, NHN, 에코프로, LS 등 주요 사례를 따라가며, 기업은 왜 이 방식을 반복해 왔는지, 시장은 왜 이를 더 이상 예전처럼 받아들이지 않는지, 그리고 중복상장 논란이 왜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주주 보호 문제로 이어지는지를 차례로 살펴본다. 더 나아가 현재와 미래의 상장 기업들의 중복상장 이슈를 점검해본다.

|스마트투데이=김한솔, 안효건 기자| 자회사 중복상장과 코스닥 저질 체력에 대한 고강도 규제 예고가 에코프로 그룹에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회사 상장 불발에 따른 재무 부담과 비주력 코스닥 자회사에 대한 대책 부담 탓이다.
에코프로 IPO 질주에 제동, '저평가 늪' 에코프로HN까지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는 지난 18일 증시 체질 개선 로드맵을 발표했다. 핵심은 중복상장 원칙적 금지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에 대한 강도 높은 관리, 코스닥 리그제 등이다.
PBR이 동일 업종 내 2반기 연속 하위 20%에 해당하는 기업은 거래소 홈페이지에 명단을 공표한다. 종목명 옆에는 '저PBR' 태그를 붙인다. 코스닥 시장에는 프리미엄·스탠더드·관리군으로 나누는 리그제를 도입한다. 관리군은 시장 퇴출이 본격화하는 구간이다.
중복상장과 코스닥 주가 관리 규제 모두 에코프로 그룹에는 위험 요인이다. 25일 기준 에코프로는 에코프로이노베이션과 에코프로씨엔지 등에 재무적 투자자(FI)를 유치한 상태다. 이들이 상장에 실패하면 투자금 상환과 적격 상장 조건 불이행에 따른 이자 등 재무 부담이 4200억원에 달한다.
주가 관리 측면에서는 비주력 자회사 에코프로HN이 아픈 손가락이다. 에코프로HN이 상장한 2021년 19배에 육박했던 PBR은 현재 2배 수준으로 꾸준히 하락했다. 지금 같은 PBR 하락과 코스닥 다산다사에 따른 기업 퇴출이 이어지면 관리 압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위기의 중심에는 창업주, 대주주 지배력 강화의 역사
그룹 중복상장과 에코프로HN 저평가는 이동채 에코프로 전 회장 지배력 강화와 맞물린다. 에코프로 그룹은 반복된 대규모 자본조달로 이 전 회장 지분율이 낮았다. 에코프로 지주사 전환 전인 2021년 3월 이 전 회장 지분은 13.11%에 그쳤다. 특수관계인을 모두 합산해도 18.26%였다. 이사회 특별 결의뿐 아니라 보통 결의 저지선까지 위태로운 수준이다.
이 전 회장은 자회사 지분을 지주사 지분으로 바꿔 지배력을 강화했다. 2021년 5월 에코프로HN을 에코프로에서 인적 분할해 재상장시켰다. 분할 뒤 이 전 회장은 에코프로 지분율(13.11%)만큼 에코프로HN 지분을 갖게 됐다. 해당 지분 13.11%는 에코프로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통해 다시 에코프로 지분으로 바꿔줬다. 그 결과 이 전 회장 에코프로 지분은 19.92%로 수직 상승했다. 특수관계인 포함 지분율은 27.67%까지 뛰었다.
교환 당시 에코프로 그룹은 주력 자회사를 지배하는 지주사와 비주력 자회사 가치를 비슷하게 계산했다. 당시 시총은 에코프로가 1조7850억원, 에코프로HN이 1조6910억원이었다. 회사는 분할 전후 에코프로HN 주가를 끌어올릴 호재를 잇따라 내놨다. 영국 법인 설립 등 장밋빛 내러티브와 300% 무상증자 등이다.
에코프로HN은 그룹 핵심인 2차전지 클로즈드 루프와 연관성이 비교적 떨어지는 환경 기업이다. 내부거래 비중에서 타 계열사가 80%로 묶인 반면 에코프로HN는 20%대에 그친다. 내부 밸류체인보다는 외부 수익이 크다는 뜻이다.
지주사 지분율 포트폴리오를 봐도 에코프로HN 비중이 가장 낮다. 에코프로가 보유한 다른 상장 자회사 지분은 40%를 웃도는 반면 에코프로HN는 31.09%다. 주가 측면에서도 주력 자회사와 지주사 에코프로 주식이 동반 상승할 때 동떨어진 하락 곡선을 그렸다.
주가 급등락에 이동채는 사익, 회사 믿은 주주는 손실

단기 급등한 에코프로HN 주가에는 고평가 시그널이 선명했다. 주요 투자자들부터 분할 직후 엑시트(탈출)했다. 삼성자산운용은 2021년 7월 지분율을 기존 13.68%에서 1.18%로 줄이며 차익을 실현했다. 코스피 신규 상장 종목 매수로 주요 주주가 됐던 국민연금도 같은 달 지분 매각으로 지분율을 5% 밑으로 낮췄다.
애초 2021년 사업보고서에서 에코프로HN 추정 공정가치는 5700억원이상 수준이었다. 외부 평가기관이 미래 5년 재무 전망에 따라 현금흐름을 당겨 계산한 가치다. 주식 교환 가치와 격차가 3배에 달한다. 현재 에코프로HN 시총은 6000억원 안팎이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분할 당시 공정가치보다 후퇴했다.
에코프로는 공정가치 산출에 쓴 재무 전망치를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에코프로NH 분할 증권신고서에는 재무 전망치나 실적 가이던스가 없다. 수치 없이 제시한 성장 계획은 현실과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2024년에는 20% 할인 유상증자로 주주들에게 희생을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이 전 회장은 저가 주식을 고가에 팔아 지배력을 높였다. 회사 전망을 믿고 에코프로HN에 기대를 걸었던 주주들은 손실을 봤다. 이 시기 이 전 회장은 불법 거래도 진행했다. 그는 2020년 1월과 2021년 9월 사이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혐의로 2023년 징역 2년 등 중형을 확정받았다. 이후 이 전 회장은 에코프로머티 등 추가 중복상장을 기획했다. 동일 지분율로 그룹 지배력을 키우고 승계상 절세 효과를 낳는 기획이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이 사용한 인적분할 후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한국 자본시장 고질적 병폐로 지적한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인적분할은 지주사 전환기부터 지배주주의 영향력 확대 도구로 유행하며 국내 자본시장의 왜곡과 일반 주주의 권익 침해를 야기하는 비정상적인 구조로 안착했다"며 "소유 구조가 같은 회사를 두 개로 나누는 방식은 경제적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에코프로 고위 관계자는 "2021년 지주사 전환은 당시 시대 흐름에 맞춰 진행한 것"이라며 "이 전 회장 개인 의지라기보다는 당국과의 협의 결과에 가깝다"고 말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순환출자 해소와 지배구조 투명화를 추진했던 당시 정부가 사실상 지주사 전환을 유도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사주 마법과 자회사 쪼개기 상장이 동반되며 일반 주주 피해와 오너 지배력 강화라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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