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번 중복상장 디코드 시리즈는 한국 증시에서 반복돼 온 중복상장 문제를 개별 기업의 일회성 논란이 아니라 자본시장 구조의 문제로 짚어보기 위해 기획했다. 모회사가 상장된 상태에서 핵심 사업이나 자회사를 상장하는 과정은 기업에겐 자금조달과 가치 부각의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기존 주주에게는 권리 약화와 가치 훼손의 경험으로 남아왔다. 카카오, LG, SK, HD현대, NHN, 에코프로, LS 등 주요 사례를 따라가며, 기업은 왜 이 방식을 반복해 왔는지, 시장은 왜 이를 더 이상 예전처럼 받아들이지 않는지, 그리고 중복상장 논란이 왜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주주 보호 문제로 이어지는지를 살펴본다. 또한 현재와 미래의 상장 기업들의 중복상장 이슈를 점검해본다.

|스마트투데이=안효건 기자| HD현대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춘 정부 중복상장 해소 방침과 온도차를 보인다. LS, SK 등이 대통령 일침 뒤 자세를 낮춘 반면 자회사 상장 의지를 굽히지 않으면서다. HD현대는 다른 그룹과 달리 지주사 할인에 따른 지배구조 재편 이점이 선명한 상황이다.
대통령 지적에 고개 숙인 대기업들, 정부 "원칙적 금지"로 수위 높여
중복상장에 대한 시장 기류가 급변한 기점은 지난 1월이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은 대기업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을 두고 "송아지 밴 암소를 샀는데 송아지만 떼어 따로 파는 격"이라고 비유했다. 직접 나서 중복상장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핵심 원인으로 지적한 발언이다.
가장 먼저 반응한 그룹은 LS였다. 대통령이 "L자 들어간 주식"을 콕 집었다는 관측이 이어지면서 에식솔루션즈 상장 심사를 철회했다. "중복상장이 문제라고 생각하면 주식을 사지 않으면 된다"고까지 했던 구자은 LS 회장 의지가 꺾인 순간이었다.
SK그룹 역시 발등에 떨어진 불에도 백기를 들었다. SK에코플랜트 상장을 철회하고 재무적 투자자(FI)와 투자금 상환 방안을 협의 중으로 알려졌다. SK에코플랜트는 2022년 투자 유치 당시 올해를 엑시트 시점으로 정한 바 있다. 주어진 기간을 꽉 채운 만큼 보상 규모가 극대화됐는데도 상장 의사를 접었다.
이 대통령과 정부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 상황이다. 18일에도 시장에 중복상장에 대한 경고장을 던졌다. 이 대통령은 이날 자본시장 간담회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으로 경영자 지배권 남용을 첫 손에 꼽았다. 그러면서 중복상장을 그 예시로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배권 남용이 "재벌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라며 "알토란 같은 주식을 샀는데 어느 날 보니 알맹이는 쏙 빠지고 껍데기만 남더라"라고 직격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엄격한 심사를 통해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제한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국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도 그 리스트를 공개할 계획이다. 자회사보다는 PBR 디스카운트가 높은 지주사에 영향이 큰 조치다.
HD현대 논리는 "가치 재발견"... 시장은 '글쎄'
HD현대 명분은 자회사 가치 재발견이다. 앞서 HD현대 관계자는 상장 추진 중인 자회사 HD현대로보틱스에 대해 "모회사 연결 실적에서 차지하는 재무적 비중이 0.3%에 불과해 기업가치 훼손 가능성이 적다"며 "자회사가 증시에서 높은 가치를 평가받으면 지주사에도 이익"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자본시장에서 통용되는 논리와 정반대다. 코스닥 상장사 등 소규모 모자회사와 대기업 지주사 아래 코스피 상장하는 자회사는 다르다는 지적이다. 증권가에서는 대기업 지주사 리포트를 수시로 발간한다. 자회사 가치에 대한 평가도 함께다. 자회사가 비상장이라도 모회사 주가에 그 가치가 이미 반영된다는 뜻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가치 재발견은 시장에서 관심받지 못하는 비주력 자회사에 해당하는 이야기"라며 "이는 LG에너지솔루션 사례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고 말했다.
LG화학은 2020년 핵심 배터리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만들었다. 직후 상장을 준비해 2022년 1월 기업공개(IPO)를 마쳤다. 그 결과 모회사 LG화학 주가는 뼈아픈 더블카운팅(가치 중복계산) 할인을 맞았다.
LG화학 주가는 LG에너지솔루션 상장 심사 통과 직전 70만원을 웃돌았다. LG에너지솔루션 상장 당일에는 61만원까지 내렸다. 3년여 만인 현재는 31만원 선으로 절반 가까이 폭락했다. LG에너지솔루션 주가는 현재 34만원 수준이다. 2차전지 불황에도 여전히 공모가 30만원보다 높다.
LG에너지솔루션 때 시장이 적용한 모회사 디스카운트 논리는 지금도 유효하다. 지난해 핵심 자회사 DN솔루션즈 상장을 추진했던 DN오토모티브 사례가 대표적이다.
송선재 하나증권 연구원은 최근 리포트에서 DN오토모티브 상한가에 대해 "DN솔루션즈의 기업가치를 고려하면 주가 상승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평했다. 그는 "투자자들이 DN솔루션즈 재상장 추진에 따른 지분 희석 및 수요 분산 우려를 갖고 있었다"면서 "상장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밸류가 정상화되는 계기로 기대한다"고 분석했다. 중복상장 이슈가 해소되면서 모회사의 주가가 오른 사례다.
중복상장 논란에 덧붙는 지배구조 해석
HD현대는 중복상장 논란과 지배구조 변화 가능성이 함께 거론되는 기업이다. 최대주주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지분(26.60%)이 그룹 경영을 맡은 정기선 회장(6.12%)을 크게 웃돈다. 승계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세금이 불가피하다.
시장 일각에서는 자회사 상장이 지배구조 변화 과정과 맞물려 해석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상 비상장사는 자산가치 80%를 하한선으로 세금을 매긴다. 상장사는 평가일 전후 2개월 종가 평균으로 세금을 산정한다. 실물보다는 장부가로 세금을 계산해 장부가가 실물보다 낮을수록 유리하다.
흥국증권 리포트에 따르면 최근 HD현대 시가총액은 순자산(NAV) 대비 46.5% 낮다. HD현대로보틱스를 상장시키면 영구적 할인 심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HD현대로보틱스에는 HD현대 시총 20%를 웃도는 5조원 이상 기업가치가 거론된다.

앞선 상장 추진 흐름도 그룹 지배구조 변화 과정과 시기적으로 맞물린다. 2017년 HD현대 지주사 전환 당시 산하 상장사는 5개에 불과했다. HD현대는 이후 9년 간 중복상장 규모를 2배로 키우려 했다. 지주사 전환 뒤 HD현대중공업, HD현대마린솔루션이 코스피 상장했다. HD현대오일뱅크, HD현대삼호, HD현대로보틱스 등도 상장을 시도했다. 시도가 모두 성공했다면, 상장 자회사는 무려 10개로 불어난다.
2017년 지주사 전환 때 정 회장은 현대중공업 부사장으로 승진해 그룹 내 영향력을 키웠다. HD현대중공업이 상장한 2021년에는 HD현대·HD한국조선해양 사장으로 승진했다. HD현대오일뱅크와 HD현대삼호 상장을 추진했던 2023년에는 그룹 부회장으로 올라섰다. 이듬해 HD현대마린솔루션 상장 때는 수석부회장 승진으로 1인자 체제를 한층 다졌다. HD현대로보틱스 상장 추진을 앞뒀던 지난해 10월에는 HD현대 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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