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안효건 기자| 한국 증시 성장률 1위 간판 스타인 SK그룹 앞에 국가대표로 세계 시장에 나설 자질을 묻는 질문이 남는다. 최대주주와 소액주주에게 공평하게 과실을 나눌 준비가 됐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정부는 기업 지배구조를 단순화해 주주 가치가 새는 누수를 막겠다는 방침이다. 대주주와 소액주주 이익이 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자는 구상이다. 이 철학이 증시를 끌어올린 코리아 프리미엄 동력이라는 게 시장의 평가다. 그런데 SK그룹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자회사 중복상장 금지, 낮은 주가순자산비율(PBR) 개선, 자사주 소각과 주주환원, 계열사 간 거래 지양 등 어느 것 하나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상장사(20개)부터 재계에서 손꼽히게 많다. 이 상황에서 SK그룹이 최대주주로 있는 리벨리온 상장이 수년 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SK에코플랜트 상장에서는 물러섰어도 국가 전략 산업군을 활용해 틈새를 비집는 모습이다. 리벨리온은 AI 반도체 국가대표 스타트업으로 꼽히는 유망주다.
SK그룹 중복상장 의지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SK그룹의 상장사는 시가총액 측면에서 까마득히 앞서는 삼성그룹(18개)을 넘는다. 기업가치가 샐 구멍이 크다는 뜻이다. SK(주)의 PBR은 0.7배 수준으로 1배를 밑돈다. 미래가치는커녕 현재가치도 주가에 제대로 담기지 않는다. 순자산(NAV) 대비 시총 할인율은 50% 안팎이다. 회사 투자가치가 가진 자산 절반에 불과하다는 게 시장 평가인 셈이다.
해외를 통한 주주가치 희석 우려도 생겼다. 최근 SK하이닉스는 미국 주식예탁증서(ADR)를 통한 나스닥 상장 계획을 밝혔다. 한국 주식을 복사해 미국에 상장시키는 구조다.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자사주 활용과 신주 발행이다. 시장에서는 자사주를 해외로 돌리면 자사주 소각을 추진하는 정부 상법 개정 취지에 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주 발행을 택하면 제 2의 기업공개(IPO)와 실질이 유사해진다. 벌써부터 주주가치 희석 우려에 따른 반발이 거세다.
또 다른 자회사 SKC는 여전히 그룹 신사업 실험 대가로 주주 희생을 요구한다. 그간 SKC는 유망 사업마다 손대며 피벗해왔다. 필름, 석유화학, 산업용 가스, 정보통신, 2차전지, 바이오, 태양광, 반도체 소재, 유리기판 등 대상 분야도 광범위하다. 이 과정에서 각종 계열사 및 자회사와 캡티브 마켓을 형성해 자산과 사업 거래를 활발히 진행했다.
현재는 유상증자로 신용등급 강등을 낳은 막대한 빚을 갚고 반도체 소재·유리기판 기업이 되겠다고 나섰다. 시총 4조원 안팎인 상태에서 유증 규모가 1조원에 달한다. 주주가치 희석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현재 SKC 주가는 유증 기준가(11만3115원) 대비 15%이상 떨어졌다. SKC 주주들 사이에서는 "이번엔 진심이라면 자회사와 합병하라"는 성토가 나온다. SKC가 또 발만 담궜다 빼는 것 아니냐는 불신이다.
이렇게 SK그룹이 만든 상황은 정부 목표와 정반대다. 정부는 인수·합병과 분할을 가리지 않고 중복상장에 원칙적 금지를 공표한 상태다. 해외를 통한 중복상장과 자사주 소각 원칙 회피도 엄격히 주시한다. PBR이 낮은 기업에는 종목 옆에 저 PBR 딱지를 붙여 관리한다.
계열사 간 자산·사업 거래에는 가치 정상화로 장벽을 높인다. 자산은 장부가치와 공정가치 차이를 재무제표 주석에 의무 공시하게 했다. 계열사 간 합병이나 주식 교환을 하려면 주가, 자산가치, 수익가치를 종합한 공정가액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여기에는 외부 기관 평가도 뒤따른다. 기존처럼 장부가액과 주가 등으로만 거래할 수 없게 돼 그룹 이익이 개별 기업에 우선하기 어려워졌다.
물론 샛길이 무조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과 일본 등도 중복상장 비율이 0%는 아니다. SK그룹이 구축한 다양한 자회사 포트폴리오는 그간 빠르고 유연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었다.
물음은 주주에 대한 소통과 보호도 미국처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가, 국가대표를 자신할만한가다.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리벨리온 최대주주가 됐다면 상장을 시킬 것인지, 중복상장에 어떤 철학과 비전이 있는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다. SK하이닉스 ADR을 한다면 자사주인지 신주인지, 주주가치 희석은 어떻게 방어할 것인지 구체적 대안을 함께 말할 수 있었다. SKC가 반도체 밸류체인에 들어가야 한다면 자회사로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기존 석유화학 사업은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설명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일단 던지고 정부와 시장 반응을 살피는 모습이다. 나라에 필요한 반도체 사업을 한다는 자신감으로 정부 명분을 누르는 게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상황을 하나 가정해 보자. SK그룹 이사회가 최태원 SK 회장에게 리벨리온 지분 투자와 SK하이닉스 ADR 발행, SKC 포트폴리오 재편 계획을 보고한다. 리밸리온 중복상장에 대한 우려와 대안, SK하이닉스 ADR에 쓸 주식 종류, SKC 석유화학 사업 매각 여부 등은 모조리 빼놓고 그냥 한다고 통보한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SK그룹은 그런 일을 주주들에게 하는 중이다.
SK그룹 주인은 당연히 주주다. SK에서 최 회장 개인 지분율은 17.9%, 특수관계인 합산은 25.42%다. 국민연금(7.37%)과 소액주주(52.03%) 등 국민 몫이 더 크다. 최 회장을 오너로 부르지만 단지 다른 주주 권한을 빌린 대표 주주일 뿐이다.
복잡해 보이는 문제에 대한 답은 대체로, 의외로 단순하다.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면 주주환원과 그룹 자본 재분배가 일치한다. 가령 100%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 100% 자회사에 대한 유상증자는 주주환원과 자본 재배치 통로가 같다. 자회사 상장, 상장 자회사 유상증자 등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최근 현대지에프홀딩스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현대지에프홀딩스는 포괄적 주식 교환을 통해 현대홈쇼핑을 100% 자회사로 만들었다. 선제적 자사주 소각으로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이해관계를 일치시켰다. 그 결과 0.2배에 불과하던 PBR이 0.6배 수준까지 상승했다. 주주들이 따지지 않은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환원까지 스스로 실천해 밸류에이션 재평가를 이끈 모범 사례다. 비단 한국 증시 말단을 차지하는 기업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만 TSMC 등도 자회사 지분 전체를 100% 보유한다. 주주를 모시는 유능한 직원은 이렇게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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