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이재수 기자| 서울 주요 도시정비사업장에서 시공사 선정 과정의 ‘단독입찰’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 압구정·목동·성수 등 공사비만 수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사업지에서도 경쟁입찰이 성사되지 않는 사례가 늘면서, 건설사들의 수주 전략 변화와 건설업황 악화가 맞물린 구조적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압구정·목동·성수…대형 사업장 줄줄이 유찰
1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공사비 5조 5610억원 규모의 압구정3구역 재건축 사업은 지난 10일 시공사 선정 입찰에서 현대건설이 단독으로 참여하며 유찰됐다. 전통적인 서울 부촌으로 불리는 압구정의 상징성과 ‘압구정 현대’ 브랜드 정체성을 앞세운 전략이 강하게 작용하면서, 타 건설사들이 일찌감시 수주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결과로 풀이된다.
반면 인근 압구정5구역은 현대건설과 DL이앤씨 간 경쟁입찰이 성사됐다. 이 사업은 총 공사비 약 1조 4960억원 규모로, 지하 5층~지상 68층, 8개 동, 1397가구를 짓는 대형 프로젝트다. DL이앤씨는 차별화된 고급화 전략을 앞세워 ‘압구정 현대’와의 차별화화 고급화 전략으로 승기를 잡겠다는 계산이다. 이 지역은 기존 '압구정 한양 1·2차' 단지를 재건축하는 곳으로 다른 지역과 비교해 '압구정 현대'의 색채가 덜한 곳이다.

압구정4구역 역시 삼성물산이 단독 입찰에 나서면서 수의계약 가능성이 커졌다. 공사비 2조1154억원 규모의 초대형 사업임에도 경쟁입찰이 성사되지 않은 배경에는, . 압구정2·3·5구역 싹쓸이 수주에 난선 현대건설이 ‘승산 있는 구역’에만 집중하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목동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졌다. 사업비 약 1조2000억원 규모의 목동신시가지6단지 재건축은 DL이앤씨 단독 응찰로 1차 입찰이 유찰됐다. 도시정비법상 2차 입찰에서도 경쟁이 성사되지 않으면 수의계약으로 전환된다.
성수동 역시 상황은 유사하다. 성수전략정비구역 1지구는 GS건설이 단독 응찰했으며, 성수4지구는 롯데건설과 대우건설이 참여했지만 서류 미비 논란으로 대우건설과 조합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어 경쟁입찰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이길 수 있는 싸움만”…선별수주 전략 강화
이처럼 초대형 사업장에서도 경쟁이 줄어드는 배경에는 건설사들의 ‘선별수주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건설사들은 과거처럼 ‘규모 확대’를 위한 무리한 수주 대신, 수익성과 리스크를 따져 선택적으로 사업에 참여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특히 압구정처럼 특정 건설사가 브랜드·상징성 측면에서 우위를 점한 사업지는 경쟁 자체를 회피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정비사업은 설계·금융·마케팅 비용이 막대하게 투입되는데, 수주 가능성이 낮으면 참여 자체가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며 “사전 분석을 통해 ‘이길 수 있는 사업’만 들어가는 전략이 일반화됐다”고 말했다.
건설사들이 경쟁입찰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로는 수익성 악화가 꼽힌다. 최근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 고금리 환경이 장기화되면서 정비사업의 수익 구조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공사비가 급등한 상황에서 무리한 저가 수주를 할 경우, 향후 공사 과정에서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비용 증가로 사업 리스크가 커지면서, 건설사 입장에서는 대규모 자금을 장기간 묶어두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빅2 독식 구조 심화”…중견사 진입장벽 높아져

이 같은 흐름은 결과적으로 대형 건설사 중심의 ‘독식 구조’를 강화시키고 있다.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등 이른바 ‘빅2’가 선점한 사업장에는 다른 상위 건설사들조차 진입을 꺼리는 분위기다. 브랜드 경쟁력과 조합 선호도가 이미 형성된 상황에서, 후발주자가 경쟁에 뛰어드는 것이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서울 핵심 정비사업장은 ‘10대 건설사가 선점한 곳이 가져가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경쟁입찰 자체는 점점 줄어드는 양상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단독입찰 확산을 시장 위축의 신호로 보지만, 건설 업계에서는 이를 ‘전략적 정상화’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과거 과열 경쟁으로 수익성이 악화됐던 경험을 바탕으로, 건설사들이 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경쟁 감소가 장기화될 경우 조합의 협상력이 약화되고 공사비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적 보완 필요성도 제기된다.
도시정비법에 따르면 건설사 1곳이 입찰에 참여할 경우 자동 유찰하도록 해 경쟁입찰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어진 2차 입찰에서 경쟁입찰이 성사되지 않으면 수의계약으로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단독입찰이 늘어나면 조합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시장 안정과 경쟁 촉진을 위한 정책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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