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공모주

벌금 무서워 전기차 판다? 정부 규제가 띄운 '채비' 상장 리레이팅

전기차 캐즘 속 빽빽한 경쟁 환경 상장 심사 중 정부 정책 드라이브가 '단비'

증권 | 안효건  기자 |입력

전기차 급속 충전 기업 채비가 코스닥 상장을 준비한다.
전기차 급속 충전 기업 채비가 코스닥 상장을 준비한다.

|스마트투데이=안효건 기자| 전기차 급속 충전기업 채비가 다음달 코스닥 상장에 도전한다. 상장 심사 도중 나온 정부 정책으로 밸류에이션 리레이팅(재평가)이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흑(黑): 전기차 캐즘과 빽빽한 경쟁 시장

채비는 한때 코스피 직행까지 고려할 만큼 외형을 키웠다. 현재는 코스닥 문턱도 쉽지 않다는 평이 대체적이다. 채비가 속한 전기차 밸류체인은 초기 시장이 주류로 진입하기 전 수요 둔화, 이른바 캐즘 상황이다. 채비 역시 전기차 보급 속도 둔화와 초기 대규모 인프라 선투자 부담으로 적자 상태다.

채비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채비 영업손실은 2024년 276억원,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292억원으로 상당했다. 순손실은 2024년 545억원, 지난해 3분기 누적 316억원이었다. 이익미실현 특례(테슬라 요건) 트랙을 탄 배경이다.

채비가 택한 돌파구는 전기차 밸류체인 내 포지셔닝 조정이다. 초기에는 충전 설비를 직접 제조해 공공기관에 납품하는 B2G 하드웨어 제조 모델이 주력이었다. 최근에는 직접 도심 핵심 상권 공간을 임차해 설비를 깔고 이용자에게 충전 요금을 직접 받는 CPO(충전소 운영) 모델로 체질 전환했다.

2022년 전체 매출 75.9%를 차지한 충전기 제조 및 판매 부문 비중은 지난해 3분기 누적 33%로 급감했다. CPO 서비스 부문 비중은 24.1%에서 67.0%로 늘었다.

문제는 빡빡한 경쟁 환경이다. 새로운 주력 CPO 시장 주요 경쟁자는 환경부, 한국전력공사 등 공공기관과 SK, 롯데, GS 등 대기업 계열사다. 국내 급속 충전 시장 점유율은 환경부(18.3%)와 한국전력(11.5%)으로 공공 사업자 비중이 높다. 이들은 충전 요금에 공공성을 강하게 반영해 사실상 시장 요금 상한선 역할을 한다. 시장 가격과 수익성 상방을 제한하는 주체다.

민간에서는 채비(12.6%)와 SK계열사 SK일렉링크(10.8%), 롯데계열사 이브이시스(4.2%) 등이 각축전이다. 민간 최대 경쟁자인 SK일렉링크는 최근 사모펀드(PEF) 앵커에쿼티가 최대주주를 잡고 경영 개선에 나섰다. 기존 최대주주였던 SK네트웍스는 주요 주주로 남아 협력한다. SK그룹 에너지 및 모빌리티 전략과 연계해 고속도로 휴게소와 대형 상업시설 등을 중심으로 전국 확장할 계획이다.

롯데이노베이트 자회사인 이브이시스는 채비와 같은 체질 전환 전략을 꾸렸다. 본래 충전기 제조업이 본업이었으나 2023년부터 본격적인 운영 사업자로 전환했다. SK그룹처럼 롯데그룹 오프라인 유통망을 캡티브 마켓(전속 시장)으로 적극 활용한다.

백(白): 정부가 밀어주는 확실한 상방, 강제력 있는 성장

캐즘과 과당 경쟁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상방 동력은 정부 전기차 정책 드라이브다. 정부는 지난 1월 제도적 이행 강제력을 대폭 부여한 새 무공해차 보급 목표를 발표했다. 핵심은 무공해차 판매량을 채우지 못한 완성차 기업에 기여금(벌금)을 대폭 올리는 내용이다.

목표 미달 차량 1대당 기여금은 2026~2027년 150만원에서 2028년 300만원으로 뛴다. 과거보다 실적 달성을 위한 기준도 까다로워진다. 무공해차로 넣을 수 있는 실적 대상에서 하이브리드 차량을 사실상 삭제하면서다. 하이브리드 차량을 전기차 실적으로 인정해주던 전환 비율은 올해 0.21대, 2027년 0.15대로 급감한다. 2028년부터는 아예 0%로 배제해 하이브리드 판매로는 실적 달성이 불가능하다.

기업들로서는 정부 정책에 역행해 대규모 기여금을 내는 선택지는 고르기 어려운 상황이다. 채비는 이런 훈풍을 공모가 산정에 적극 반영했다. 거시적 시장 확대를 기반으로 기업 성장을 투영하는 탑다운 밸류에이션을 적용한 것이다.

채비는 정부 목표치 대비 90% 달성을 중립적 시나리오로 가정해 2028년까지 전체 매출액 3104억원, EBITDA(상각전영업이익) 755억원을 낼 것으로 추정했다. 이 2028년 추정 EBITDA에 연 13.01% 가중평균자본비용(WACC) 할인율을 적용해 구한 현재가치는 523억원이다. 여기에 해외 유사기업 평균 EV/EBITDA 배수인 21.4배를 곱해 적정 시총을 1조552억원으로 도출했다.

규제로 보장된 강력한 시장 성장 수혜를 타사보다 앞장서 받겠다는 게 채비 포부다. 채비는 선제적인 프리미엄 부지 선점으로 타사 대비 높은 설비 가동률을 자랑한다. 정부 정책대로 2030년 차량 대 충전기 비율(차충비)이 29:1로 수렴하면 고정비 레버리지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채비는 가동률 우위와 수익성 제고를 위해 추가로 채비스테이 카드를 꺼내들었다. 채비스테이는 식음료(F&B), 세차장 등 편의 시설과 초급속 충전 설비를 결합한 모델이다. 고객 체류 시간과 가동률을 높이는 동시에 전력 판매 이외 추가 상업 매출을 창출한다. 채비는 체비스테이 가동률이 일반 충전소 대비 4~7배 높다고 설명했다.

공모자금 중 200억원도 채비스테이 확장에 쓴다. 지난해 7개소에 불과한 점포를 2028년 75개소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때 채비스테이에서만 매출 495억원을 창출하겠다는 목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결국 핵심은 전기차에 대한 시장 관심"이라며 "유가 상승으로 인한 전기차 가격 상승을 소비자가 어디까지 수용할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력 가격 상승에 따른 마진율 손실에 대한 개별 기업 방어 전략 역시 포인트"라고 덧붙였다.

채비는 희망 공모가는 1만2300~1만5300원이다. 희망 공모금은 1230억~1530억원 규모다. 공모가를 결정하는 수요예측은 다음달 10~16일이다. 일반 청약은 같은 달 20~21일이다. 공동대표주관회사는 KB증권과 삼성증권이다. 대신증권과 하나증권이 공동주관회사로 참여했다.

이익미실현 특례 상장 요건에 따라 주관사단은 3개월 풋백옵션(환매청구권)을 의무적으로 부여한다. 일반 청약자 보호를 위해 상장일로부터 공모가 90% 가격으로 주식을 되팔 수 있는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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