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나연, 안효건 기자|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이 엔비디아의 범용 반도체에서 각 기업 서비스에 맞춘 '맞춤형 반도체'로 이동하고 있다. 이 전환기를 맞아 국내 디자인하우스 세미파이브의 사업 모델이 주목 받고 있다. 전통적인 설계 지원 역할을 넘어, 기술 자산 재사용과 턴키(Turnkey·일괄 수주) 체제를 무기로 국내외 맞춤형 반도체 양산 생태계의 주요 파트너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세미파이브의 경쟁력은 다른 반도체 디자인 하우스들의 방식과 다른 '모듈형 설계 플랫폼'에 있다. 이들은 반도체에 들어가는 필수 기능들을 미리 블록(모듈) 형태로 만들어 라이브러리에 축적해 둔다. 고객의 요구 사양에 맞춰 필요한 모듈을 레고 블록처럼 결합해 설계와 검증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수주 물량에 비례해 설계 인력을 무한정 늘려야 했던 기존 위탁 설계 구조에서 벗어나, 기술 자산의 재사용률을 극대화하며 개발 기간과 투입 인력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여기에 패키징과 소프트웨어 테스트, 양산 공급까지 일괄 처리하는 '턴키' 역량이 더해지며 통상 15% 안팎인 기존 디자인하우스의 이익률을 세미파이브는 30~4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범용 칩에서 고객 맞춤형 칩으로
맞춤형 반도체 수요의 증가는 글로벌 빅테크의 행보에서 먼저 확인된다. AI 붐 이후 지속된 엔비디아 독주 체제에도 구글이 자체 반도체 TPU를 포기하지 않고 브로드컴과 함께 고도화해 온 것이 대표적이다. 메타 역시 브로드컴과 손잡고 향후 2년간 4개 세대에 걸친 자체 AI 반도체 출시 로드맵을 확정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 마벨은 오는 2028년 고속 연산 시장에서 고객 맞춤형 반도체 비중이 약 25%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고객은 자사의 핵심 서비스나 아이디어에 집중하고, 반도체 스펙 정의부터 최종 양산까지의 구현은 전문 파트너가 전담하는 방식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맞춤형 반도체 구현을 전문 파트너에게 맡기는 흐름은 국내 AI 팹리스 생태계에서도 확인된다. 한정된 자원으로 개발에 총력을 다해야 하는 스타트업 특성상, 수율 검증이나 양산 인프라까지 직접 구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조적 배경 아래 퓨리오사AI의 '워보이', 리벨리온의 '아톰 시리즈', 모빌린트의 '에리스', 하이퍼엑셀의 '베르다 프로젝트' 등 주요 신경망 처리 장치(NPU) 프로젝트가 세미파이브의 플랫폼을 거쳤다. 이와 같은 프로젝트들은 향후 고객사의 반도체가 본격적인 양산 궤도에 진입할 때 세미파이브의 실적 상방을 열어주는 핵심 포트폴리오로 작용한다.
맞춤형 반도체 수요는 데이터센터와 AI 팹리스를 넘어 완제품(세트) 및 소프트웨어 업체로 확산하고 있다. 스마트 안경이나 보안 기기에서 AI를 저전력으로 구동하려면 범용 칩 대신 목적에 맞는 전용 반도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완제품 기업 대부분은 반도체 설계에 역량을 집중할 수 없는 구조다. 첫 단계인 스펙 정의부터 양산까지 일괄 수행하는 세미파이브의 턴키 체제가 이들의 맞춤형 반도체 수요를 빠르게 흡수하는 배경이다.
전용 반도체를 찾는 완제품·소프트웨어 업체들에 스펙 정의부터 양산까지 전담할 파트너는 필수적입니다.
세미파이브 관계자
이러한 일괄 수주 역량이 실제 사업 기회로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가 한화비전과의 협업이다. 세미파이브는 한화비전과 보안 카메라용 맞춤형 반도체 '와이즈넷9'을 공동 개발한 끝에 양산 확대 단계 안착에 성공했다. 세미파이브 관계자는 "전용 반도체를 찾는 완제품·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스펙 정의부터 양산까지 전담할 파트너를 필수적으로 본다"며 "전 과정을 턴키로 제공할 경쟁자가 시장에 없다는 점이 고부가가치 창출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AI 반도체 팹리스와 일반 기업으로 나뉘는 세미파이브의 고객 구조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세미파이브는 이를 통해 당장의 수익성과 향후 성장 잠재력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세미파이브 관계자는 "양산과 수익이 확실한 프로젝트를 수주해 실적 하방을 받치고, 성장 잠재력을 지닌 스타트업 물량을 초기 벤처 투자처럼 포진시켰다"며 "투트랙 고객군으로 실적 성장을 도모하는 포트폴리오를 갖췄다"고 덧붙였다.

해외에서도 통하는 세미파이브 모델
반도체 양산 수요는 해외 초기 시장에서도 확인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곳은 일본이다. 일본 정부는 2040년에는 40조엔 규모로 시장을 키우겠다는 장기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앞서 2024년 11월에는 2030년까지 반도체와 AI 산업 육성에 10조엔을 투입하겠다는 지원 계획도 공식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 들어 AI 반도체 팹리스가 등장하기 시작한 일본의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세미파이브는 스펙 정의부터 양산까지 전 과정을 턴키로 수행하는 강점이 현지 시장 진입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세미파이브 관계자는 "막 태동하는 해외 스타트업들이 사업 초기부터 모든 양산 인프라를 다 갖추고 시작할 수는 없다"며 "결국 글로벌 AI 시장에서 빠르게 경쟁하기 위해 본인들의 핵심 기술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복잡한 전 과정을 알아서 해결해 줄 '턴키 플랫폼'을 찾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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