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프로젝트 크루시블’의 지정학적 셈법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산업 |심두보 기자|입력

미국 금속 주권 복원 시도…붕괴된 아연 제련술의 재건 높은 인건비 및 에너지 비용, 환경 구제 등은 리스크

|스마트투데이=심두보 기자| 경영권 분쟁을 떠나 ‘프로젝트 크루셔블(Project Crucible)’은 상당히 대담한 딜이다.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미국 정부가 직접 자금을 대며 복원하려는 ‘미국 금속 주권’을 대변하기 때문.

● 절박한 미국 “더 이상 중국에 의존할 수 없다”

미국이 고려아연과 손을 잡은 배경에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미국은 세계적인 광물 부국이지만, 이를 금속으로 가공하는 ‘제련(Smelting)’ 역량은 사실상 붕괴 상태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미국 내 주요 1차 아연 제련소들이 경제성 부족과 환경 규제로 잇달아 문을 닫았다. 미국은 자국 땅에서 캔 아연 정광을 해외로 보내고 비싼 값에 금속을 되사오는 기형적인 구조를 유지해왔다.

문제는 이 공백을 중국이 파고들었다는 점이다. 중국이 전 세계 제련 시장을 장악하면서, 유사시 미국의 방위 산업과 자동차 산업이 멈춰 설 수 있다는 위기감이 미국을 자극했다.

미국의 아연 수입 의존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미국은 정련 아연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특히 갈륨, 게르마늄 등 희소 금속의 경우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고려아연의 미국 테네시 제련소는 이 의존의 고리를 끊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연간 수십만 톤의 아연을 생산해 미국 내 자동차(도금강판) 및 건설 수요를 충당함으로써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부산물이다. 아연 제련 과정에서 추출되는 갈륨과 게르마늄은 고성능 레이더, 야간 투시경, 반도체 웨이퍼의 핵심 소재다. 고려아연의 제련소는 미국 본토 내에서 전략 광물을 생산하는 중요한 자산이 되는 셈이다.

● 높은 비용과 환경 규제는 상당한 불확실성

다만 실제 제련소 건설이 진행되는 과정과 운영되는 과정에서의 불확실성, 즉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미국에서의 제조업 프로젝트는 한국보다 훨씬 복잡한 난관을 통과해야 한다. 가장 큰 리스크는 ‘비용’과 ‘규제’다.

미국의 건설 인건비와 전력 비용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방부의 자금 지원이 초기 투자비 부담을 덜어줄 수는 있지만, 공장 가동 후의 운영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온전히 고려아연의 몫이다.

또한, 미국의 환경 규제는 악명이 높다. 국가환경정책법(NEPA)에 따른 환경 영향 평가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는 까다로운 절차다. 테네시주가 상대적으로 친기업적인 환경이라 하더라도, 지역 환경 단체의 반발이나 예상치 못한 소송이 발생할 경우 공기 지연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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