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만약 고려아연이 뉴욕증시에 상장돼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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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투데이=심두보 기자| "Korea Zinc Inc. (Ticker: KZ)"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서울 본사인 고려아연이 만약 코스피가 아닌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된 기업이었다면 지금의 사태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적대적 M&A와 경영권 방어의 역사가 깊은 미국, 그중에서도 기업법의 표준이라 불리는 델라웨어주(State of Delaware) 법원의 잣대를 들이대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진흙탕 싸움'의 승패는 의외로 명확해진다.

현재 고려아연 분쟁의 최전선은 최윤범 회장이 추진하는 '미국 제련소 합작법인(JV) 설립과 이에 따른 신주 10% 발행'이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글로벌 확장을 위한 경영상 판단’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되어 법원의 가처분 심판대에 올라 있다. 하지만 델라웨어 형평법원(Court of Chancery) 판사들 앞이었다면, 이 논리는 '기각'을 넘어 '경영진의 권한 남용'이라는 호된 질책을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판례는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의 신주 발행을 엄격히 구분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블라시우스(Blasius) 기준'이다. 1988년 Blasius Industries v. Atlas Corp. 사건에서 확립된 이 원칙은 명쾌하다. 경영진이 내린 결정의 주된 목적이 ‘주주들의 투표권 행사를 방해하거나, 현 경영진의 자리를 보전(Entrenchment)하기 위함’이라고 판단되면, 법원은 그 행위를 가차 없이 무효화한다.

주주총회를 코앞에 둔 시점, 캐스팅보트를 쥔 특정 세력에게, 경영권 방어에 결정적인 규모(10%)의 주식을 넘기는 행위. 한국에서는 “사업적 목적이 있다"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미국 법정에서는 "주주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심각한 반칙"으로 간주된다. 경영상 필요성이 아무리 급박해도, 그것이 주주들의 표 대결을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미국 자본주의의 철칙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서슬 퍼런 감시망도 간과할 수 없다. 이번 분쟁 과정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면 계약' 의혹들—예컨대 베인캐피탈이나 합작 파트너에게 추후 손실을 보전해 주기로 한 풋옵션(Put Option) 약정—이 만약 사실인데 공시되지 않았다면 어떨까?

한국에서는 뒤늦게 실무자의 착오라며 정정 공시를 내고 과징금 조금 내면 그만일지 모른다. 하지만 월가에서 '중요 정보의 은폐(Misleading)'와 '공시 위반(13D 규정)'은 CEO가 옷을 벗는 것을 넘어 감옥 담벼락을 걸어야 하는 중범죄다. SEC는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의 비대칭을 혐오하며, 주주들은 즉각 천문학적인 규모의 집단 소송(Class Action)으로 응수했을 것이다.

지금 한국 자본시장이 겪고 있는 혼란은 '글로벌 스탠다드'와 '한국적 특수성' 사이의 거대한 괴리에서 비롯된다. 최윤범 회장의 방어 논리가 한국 법원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글로벌 투자자들의 눈에는 "주주 가치를 훼손해서라도 내 자리를 지키겠다"는 아집으로 비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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