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나연 기자| 세계 3대 광고대행사 중 하나로 꼽히는 퍼블리시스(Publicis) 그룹, 일본 최대 광고대행사 덴츠 그룹, 일본의 국민 메신저 라인을 운영했던 믹시(MIXI), 그리고 글로벌 모터사이클 브랜드 할리데이비슨 코리아와 정통 K-뷰티 기업 아모레퍼시픽.
쟁쟁한 글로벌 기업들을 고객사로 확보한 주인공은 바로 토종 B2B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아드리엘이다. 아드리엘은 다양한 SNS와 광고 매체에 파편화된 기업의 마케팅 데이터를 모아서 정리하고, 이를 통합 대시보드에 시각화해 보여주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마케팅 데이터를 보다 쉽게 분석할 수 있는 기능도 지원한다. 아드리엘의 서비스는 현재 전 세계 28개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엄수원 대표가 이끄는 아드리엘이 처음부터 글로벌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아니었다. ‘한국산 소프트웨어는 글로벌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편견, 그리고 2022년 이후 찾아온 투자 혹한기는 아드리엘에게 ‘생존’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던졌다. 하지만 엄 대표는 사업 전환(피벗)과 기술 고도화를 통해 보란 듯이 아드리엘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서울 종로구 아드리엘 본사에서 엄수원 대표를 만나 아드리엘이 어떻게 글로벌 거대 경쟁자들 사이에서 독자적인 기술적 해자(Moat)를 구축했는지 들어봤다.
● ‘인고의 시간’이 만든 압도적인 기술적 해자
엄수원 대표가 투자자들을 만날 때 가장 공들여 설명하는 부분은 아드리엘은 애드테크(AdTech) 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흔히 마케팅 기술 기업이라고 하면 국내 유니콘 기업인 몰로코나 미국의 더트레이드데스크(The Trade Desk) 같은 애드테크 기업을 떠올리기 쉽다.
애드테크의 사업모델은 광고주와 매체를 연결해주고, 광고 집행 금액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챙기는 구조다. 경기가 나빠져 기업들이 마케팅 예산을 삭감하면 애드테크 기업의 매출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필연적으로 실물 경기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반면 아드리엘은 소프트웨어 정기 구독료를 받는 B2B SaaS 기업이다. 광고 예산의 증감과 상관없이 기업이 마케팅 데이터를 관리하고 분석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써야 하는 인프라에 가깝다. 엄 대표는 “광고비가 줄어들수록 기업은 효율을 높이기 위해 데이터를 더 정밀하게 봐야 하므로 아드리엘의 수요는 오히려 견고하다”며 “변동성이 큰 수수료 모델이 아닌, 안정적인 구독 모델이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강조했다.
아드리엘이 SaaS로서 가지는 경쟁력을 이해하려면 먼저 글로벌 데이터 시장의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통상적으로 데이터 산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흩어진 데이터를 한곳으로 긁어모으는 ETL(추출·변환·적재) 영역과, 모인 데이터를 표나 차트로 시각화해 주는 BI(비즈니스 인텔리전스) 영역이다.
글로벌 시장에는 이 각 영역을 대표하는 거대 경쟁자들이 존재한다. 미국의 퍼널(Funnel)이나 슈퍼메트릭스는 데이터를 모아주는 ETL 역할에는 능하지만, 이를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기능이 없거나 매우 제한적이다. 반면 BI 전용 툴인 태블로는 시각화 도구로서는 훌륭하지만, 수많은 매체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별도로 작업을 해야 한다. 고객 입장에서는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퍼널을 쓰고, 이를 보기 위해 태블로를 따로 결제해야 하는 비효율이 발생하는 구조인 것이다.
아드리엘은 이처럼 분산되어 있는 ETL과 시각화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완벽하게 통합했다.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기술적으로는 구현하기 매우 어렵다. 광고 매체가 점점 더 다양해지면서, 이들의 데이터를 끌어오는 연결 창구인 API의 수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이다. 연결과 시각화가 통합되어 있으면, API가 바뀔 때마다 시각화 툴 전체를 뜯어고쳐야 하는 ‘리팩토링’ 문제가 발생한다.
엄 대표는 “새로운 매체를 연동할 때마다 시각화 엔진 전체를 재설계해야 하는 과정은 엔지니어링 관점에서 엄청난 고통이었다”면서도 “아드리엘은 수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독자적인 ‘캐싱 시스템(Caching System)’을 개발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데이터 로딩 속도와 정합성을 모두 잡으면서, 경쟁사들이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인 사용성을 구현해낸 것이다.
이처럼 ETL(데이터 추출·변환)과 시각화를 동시에 구현하는 것은 ‘피를 토하는 고통’에 비유될 만큼 높은 난도를 요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고통스러운 과정은 아드리엘 만의 강력한 해자(Moat)가 됐다. 엄 대표는 “기술의 난도 때문에 후발 주자가 진입하기 매우 어려운 시장”이라며 “3년 전에는 이게 정말 기술적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느냐며 투자자들이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투자 유치 이후 실제로 신규 플레이어가 등장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아드리엘이 시장에서 유일하게 마케팅 데이터 통합 플랫폼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은 아니다. 탭클릭스와 애드버리티 등 글로벌 ETL 기업도 단순한 시각화 대시보드를 지원한다. 하지만 엄 대표는 기능의 유무가 아니라 ‘경험의 격차’를 봐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다른 경쟁사들도 대시보드 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 사용해 본 고객들은 ‘시각화의 차원이 다르다’고 평가한다”며 “아드리엘은 전문 시각화 툴인 태블로나 루커 수준으로 구현할 뿐만 아니라 데이터 처리 속도와 사용자 경험(UX) 측면에서도 더 좋은 퍼포먼스를 낸다”고 설명했다.

● 북미서 증명한 지속 성장 방정식
엄 대표가 2017년 아드리엘을 창업했을 당시 목표한 주 고객층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었다. 그러나 엄 대표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스케일업(사업 확장)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면 돌파를 선택한 엄 대표는 2022년 소상공인 대상 서비스를 과감히 접고 기업용 솔루션으로 체질을 완전히 바꾸는 결단을 내린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현재 아드리엘은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해외에서 거둬들이는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다. 테크 스타트업의 진입 장벽이 높기로 유명한 미국 시장에서만 연 2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며 자생력을 입증했다.
매출 구조가 일회성 수익이 아니라는 점도 고무적이다. 아드리엘의 매출은 기업 고객들이 매년 구독료를 지불하는 연간 반복 매출(ARR) 구조를 띤다. 한국 소프트웨어 회사가 북미 시장에서 매년 1.5배씩 성장하며 20억원이 넘는 규모의 반복 매출을 만들어낸 것은 이례적인 성과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수익성’이다. 외형 성장을 위해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는 방식이 아니라, 기술 효율화를 통해 비용을 통제하며 내실을 다졌다. 엄 대표는 “매출은 매년 성장했지만, 비용은 오히려 줄여왔다”며 “월간 현금 소진율(Burn Rate)이 1억원 미만으로 떨어졌고, 내년 상반기 흑자 전환이 사실상 확실시된다”고 설명했다. 외부 자금 수혈에만 의존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독자 생존할 수 있는 기초 체력을 함께 기른 것이다.
엄수원 대표는 “단순한 외형 성장이 아니라, 북미 시장에서 실제로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이 핵심”이라며 “내년 상반기 손익분기점(BEP) 달성을 기점으로 글로벌 확장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해외 시장에서 ‘퀀텀 점프’
아드리엘의 독보적인 기술력은 글로벌 고객사들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증명되고 있다. 세계 3대 광고 그룹인 퍼블리시스(Publicis)가 북미의 핵심 고객으로 자리 잡았고, 일본 시장에서는 별도로 고객을 찾아 나서지 않았음에도 덴츠 그룹 계열사와 믹시(MIXI) 같은 대형 기업들이 직접 아드리엘을 발굴해 도입했다. 엘살바도르에서는 한 에이전시가 연간 4만달러를 결제할 정도로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국경을 뛰어넘었다. 이에 대해 엄 대표는 “고객사들이 미국의 유명 솔루션들과 꼼꼼히 비교해 본 뒤, 아드리엘이 훨씬 더 뛰어나다고 판단해 사용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드리엘의 기술적 우위는 AI 시대가 본격화함에 따라 더욱 빛을 발할 전망이다. ETL과 시각화 툴을 별도로 구독해 사용하는 기업들의 경우 AI가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없어 AI에이전트를 도입하기가 어렵다. 반면 아드리엘은 모든 데이터가 연결되어 있기에 AI 에이전트가 원활하게 작동한다. 엄 대표는 “데이터가 다 연결이 되어 있고 시각화 툴까지 제공되기 때문에, 아드리엘의 AI 에이전트는 이 모든 정보를 활용해 ‘지난달 광고비 대비 매출 기여도를 산출하라’는 질문에 즉각 답을 줄 수 있다”며 “전체적인 태스크를 자동화하는 것은 경쟁사들이 따라오기 힘든 기술적 격차”라고 자신했다.
아드리엘은 2025년을 ‘일본 시장 본격 확장의 원년’으로 삼았다. 이미 하반기에 일본 현지 팀 세팅을 시작했으며, 내년에는 일본에서만 매출 20억 원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엄 대표는 “북미 시장에서의 안정적인 성장세에 일본 시장의 폭발력을 더해, 내년에는 퀀텀 점프를 이뤄낼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댓글 (0)
댓글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