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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가시화…하나은행, 호주·영국서 해법 찾았다

호주 장기투자·성과관리, 영국 독립 거버넌스 주목 해외 벤치마킹 그룹 차원으로 확대…제도 변화 대비

금융 |김한솔 기자 | 입력 2026. 09. 03. 14:57

|스마트투데이=김한솔 기자| 국내 퇴직연금 시장이 기금형 제도 도입을 앞두고 전환점을 맞고 있다. 정부와 노사정이 기존 계약형 퇴직연금과 기금형을 병행하는 방향에 뜻을 모으면서 금융기관 개방형과 연합형 등 다양한 형태의 기금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제도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먼저 기금형 퇴직연금을 정착시킨 해외 사례도 주목받고 있다. 가입자의 노후자산을 장기간 운용해야 하는 만큼 기금의 자산운용 방식뿐 아니라 거버넌스와 성과평가, 가입자 관리체계를 어떻게 설계할지가 제도 정착의 주요 과제로 꼽힌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해외 기금형 퇴직연금의 운영방식과 정착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해 호주와 영국의 연금 관련 기관을 직접 방문했다.

호주에서는 Mercer·CFS 등 소매형 기금과 ART·Aware Super 등 산업형 기금, 자산운용사를 포함해 10개 기관을 찾았다. 영국에서는 최대 규모 기금 중 하나인 NEST 등 6개 기관을 방문해 제도의 발전 과정과 지배구조, 자산운용 및 가입자 관리 방식을 살펴봤다.

30년 넘게 키운 호주 퇴직연금…장기투자·성과관리 주목

하나은행이 호주에서 주목한 특징은 장기 분산투자다. 퇴직연금을 수십 년간 축적되는 장기자산으로 보고 주식과 채권뿐 아니라 부동산과 인프라 등 다양한 자산에 분산투자하는 구조를 발전시켜 왔다.

호주는 1992년 Superannuation 제도 도입 이후 30년 넘게 기금형 퇴직연금 시장을 발전시켜 왔다. 고용주의 의무적인 퇴직연금 적립을 기반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세제혜택과 엄격한 중도인출 제한 등을 통해 연금자산이 장기간 축적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했다. 적립부터 운용, 성과관리까지 제도 전반을 장기적인 노후자산 형성이라는 목표에 맞춰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연금자산의 운용을 기금에 맡기는 대신 성과에 대한 관리도 엄격하다. 호주 건전성감독청(APRA)은 Performance Test를 통해 기금의 장기 운용성과와 비용 등을 평가하고 있다.

평가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상품은 가입자에게 해당 사실을 통보해야 하며, 2년 연속 기준에 미달하면 신규 가입자를 받을 수 없다.

올해 APRA의 평가에서는 547개 상품 가운데 12개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으며 이 가운데 5개 상품은 2년 이상 연속으로 기준에 미달했다.

영국, 자동가입으로 시장 확대…계약형·기금형 함께 성장

영국은 2012년 Auto-Enrolment(자동가입) 제도를 도입하며 퇴직연금 가입 기반을 크게 넓혔다. 제도 도입 당시 47% 수준이던 직장연금 가입률은 2025년 82%까지 높아졌다.

가입 확대와 함께 성장한 것이 Master Trust다. 여러 사업장이 하나의 기금에 참여하는 구조로, 독립적인 트러스티 이사회가 기금 운영과 주요 의사결정을 맡는다. 가입자 이익을 우선하는 독립적인 거버넌스가 Master Trust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운용 과정에서는 가입자의 선택 부담을 낮췄다. 대부분의 가입자는 디폴트펀드를 통해 별도의 투자상품을 직접 선택하지 않아도 전문가가 설계한 방식에 따라 퇴직연금 자산을 운용할 수 있다. 투자 경험이나 금융지식이 부족한 가입자도 체계적인 자산배분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계약형과 기금형 제도가 함께 존재하며 경쟁해 왔다는 점도 영국 퇴직연금 시장의 특징이다. 두 제도가 시장에서 경쟁하는 과정에서 자산관리 서비스 개선과 비용 경쟁이 촉진됐다.

영국은 투자성과뿐 아니라 비용과 서비스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Value for Money(VfM) 체계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세부 규정 마련을 위한 의견수렴이 진행 중이며, 2028년부터 Master Trust 등 대형 연금사업자를 대상으로 첫 평가가 이뤄질 예정이다.

단순히 낮은 수수료만을 기준으로 경쟁하기보다 투자성과와 비용, 서비스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해 가입자가 장기적으로 얻는 성과를 높이려는 취지다.

해외 인사이트, 하나금융그룹 차원 준비로 확대

하나은행은 호주와 영국 현지에서 확인한 내용을 은행에만 적용하지 않고 하나금융그룹 차원의 논의로 확대했다.

해외 방문 이후 현지 제도와 운영 사례를 그룹 내 관련 계열사와 공유하고 향후 국내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에 필요한 역량과 대응방향을 논의하는 회의체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 확인한 장기 자산운용과 독립적인 거버넌스, 전문적인 운용체계, 성과평가 및 가입자 관리 등의 요소를 국내 제도 환경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하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호주와 영국은 각각 다른 경로로 퇴직연금 제도를 발전시켜 왔지만 가입자의 노후자산을 장기간 축적하고 전문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제도와 운용체계를 지속적으로 보완해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며 "해외에서 확인한 내용을 그룹 차원으로 확대해 국내 적용 가능성과 향후 제도 변화에 대한 대응방향을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형 기금형, 도입 이후 운영체계가 관건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이 가시화되면서 제도 도입 이후 기금을 어떤 방식으로 운용하고 관리할지도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호주와 영국 역시 제도 도입 이후 장기간에 걸쳐 자산운용 체계와 성과평가 방식을 보완하며 현재의 퇴직연금 시장을 구축했다.

하나은행은 국내 기금형 제도에서도 가입자의 장기적인 이익을 중심으로 전문적인 자산운용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성과와 비용, 서비스 등을 지속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관리체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호주의 Performance Test와 영국이 추진 중인 VfM처럼 운용 결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성과가 뒤처지는 사업자의 개선을 유도하는 장치도 참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존 계약형과 새롭게 도입되는 기금형이 각각의 장점을 바탕으로 경쟁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과제로 꼽힌다. 특정 방식이 다른 제도를 대체하기보다 가입자가 자신의 상황에 맞는 방식을 선택하고 사업자 간 경쟁을 통해 퇴직연금 시장의 운용성과와 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방식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호주와 영국 역시 오랜 기간 제도를 보완하면서 현재의 퇴직연금 체계를 만들어왔다"며 "우리나라 역시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가입자의 장기적인 노후자산 형성을 중심에 두고 전문적인 운용과 성과관리, 가입자 선택권 등이 균형을 이루는 한국형 기금형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하나은행도 호주와 영국에서 직접 확인한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이어온 그룹 차원의 논의를 토대로 향후 정부의 제도 방향에 맞춰 필요한 역량을 선제적으로 준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외 벤치마킹, 연금 자산관리 전략에도 반영

하나은행은 해외 벤치마킹에서 확인한 장기 자산배분과 성과관리, 가입자 중심의 서비스 경쟁 원칙을 기존 퇴직연금 사업에도 반영하고 있다.

장기간 축적되는 연금자산의 특성을 고려해 개별 상품 중심에서 포트폴리오 기반 자산관리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금융권 최초로 '로보어드바이저 일임운용 서비스'를 출시하고, 전문가가 선정한 포트폴리오와 자산전략을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하나MP 구독 서비스'도 선보였다.

최근에는 은퇴 이후 현금흐름까지 고려해 연금관리 영역을 적립기에서 인출기로 확대하고 있다. 디지털 서비스뿐 아니라 대면상담과 전문인력을 활용한 가입자 관리체계도 강화했다.

이를 위해 연금 전문 상담센터인 '연금 더드림 라운지'를 지방권역까지 확대하는 등 가입 이후에도 지속적인 연금 자산관리가 가능하도록 서비스 범위를 넓히고 있다.

운용성과에 대한 사후관리도 강화하고 있다. 성과가 부진한 디폴트옵션 상품을 변경하는 등 상품 공급에 그치지 않고 운용성과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나은행은 향후 국내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의 구체적인 방향이 정해지면 해외 연금시장에서 확인한 운영방식과 그룹 차원의 논의를 바탕으로 관련 사업 역량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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