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 가른 ‘기적(汽笛)’… 26km 표류 다이버 살렸다

(화제)울진서 실종돼 40km 떠내려간 50대 다이버, 쌍용C&E ‘창양호’가 극적 구조

사회 | 우세현 기자 |입력

|스마트투데이=우세현 기자| 지난 25일 밤 10시40분, 강원도 삼척 임원항 인근 해상.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동해 한복판을 항해하던 쌍용C&E 소속 시멘트 전용선 ‘창양호(M/V CHANG YAHNG)’의 갑판 위로 긴박한 공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엔진 소음과 거친 파도 소리 사이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희미한 구조 요청 신호가 승무원의 귀에 포착됐다.

13시간의 사투, 40km를 떠내려온 생명의 신호

구조된 50대 다이버 A씨의 사투는 이날 오전 9시50분경 경북 울진 죽변항 앞바다에서 시작됐다. 레저 활동 중 조류에 휩쓸린 A씨는 순식간에 망망대해로 떠밀려 나갔다. 해경의 수색 작업에도 행방이 묘연했던 그는 꼬박 13시간 동안 차가운 바닷물에서 싸우며 북쪽으로 약 26km 가량을 떠내려갔다.

기력이 다해 가던 밤 10시40분경. 말 그대로 천운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멀리서 항해 중인 창양호의 불빛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고, A씨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낸 외침이 경계 근무 중이던 승무원에게 닿은 것이다. 자칫 환청으로 치부하고 지나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창양호 선원들은 즉각 선박 외부를 직접 확인한 끝에 표류 중인 다이버를 발견했다.

“우리가 여기 있다”... 밤바다 가른 기적(汽笛) 소리

표류자를 확인한 창양호는 즉시 ‘익수자 발생(Man Overboard)’ 상황을 선포하고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신고했다. 수만 톤급 대형 선박을 돌려 표류자에게 접근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강풍과 거센 조류 탓에 구조용 보트 접근이 쉽지 않자, 선원들은 특별한 방법을 동원했다.

창양호는 선박의 거대한 경적(기적)을 반복해 울리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방향 감각을 완전히 잃은 A씨가 소리를 이정표 삼아 배 쪽으로 헤엄쳐 올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한 것이다. "뿌우-" 하며 밤바다를 가른 기적 소리는 A씨에게 "포기하지 마라, 우리가 여기 있다"는 생명의 복음이었다.

체력 고갈된 다이버, 끝까지 보호해 해경 인계

창양호 선원들은 구명장비를 투척하며 A씨를 직접 선상으로 끌어올리려 여러 차례 시도했다. 그러나 오랜 표류로 A씨는 스스로 줄을 잡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승무원들은 무리한 인양 대신 현장에서 추가 안전조치를 취하며 그를 보호했다. 밤 10시46분경 도착한 해경 구조정이 A씨를 무사히 구조 인계했다.

쌍용C&E 관계자는 “해상에서 인명 구조는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라며 “승무원들이 침착하게 해상선박 구조절차를 준수한 덕분에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40km를 떠돌던 한 남자는, 예민하게 깨어있던 어느 화물선의 귀와 밤바다를 울린 뜨거운 기적 소리 덕분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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