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나연 기자| 한국거래소가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막는 방향의 새 심사기준을 내놨다. 물적분할 자회사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같은 경제적 동일체로 볼 수 있는 종속회사와 계열회사까지 규제 범위를 넓혔다. 다만 학계에서는 거래소 심사만으로는 일반주주 보호에 한계가 있다며 의무공개매수제와 일반주주 동의 절차 같은 더 강한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거래소는 16일 중복상장 제도개선 및 규정 개정안 공개세미나를 열고 중복상장 질적 심사 기준을 공개했다. 핵심은 지배와 종속 관계에 있는 경제적 동일체의 별도 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엄격한 심사를 거쳐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임흥택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상무는 발제를 통해 중복상장에 대해 원칙 금지, 예외 허용의 잣대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법적 형식보다 실질적 지배관계를 기준으로 중복상장을 가려내는 방안을 담았다. 상장법인이 물적분할이나 현물출자, 영업양도를 통해 세운 회사를 다시 상장하는 경우는 물론,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인적분할한 회사를 재상장하는 경우, 현금출자로 신설하거나 인수한 자회사를 상장하는 경우까지 심사 대상으로 삼았다.
심사 기준도 구체화했다. 자회사가 상장하려면 영업 독립성, 경영 독립성, 투자자 보호라는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이 중 하나라도 미달하면 상장을 승인하지 않는 구조다. 영업 독립성은 자회사가 모회사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으로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는지를 따진다. 경영 독립성은 인사와 조직, 이사회 운영, 주요 투자와 생산·판매 의사결정이 모회사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돼 있는지를 본다.
가장 무게가 실린 기준은 투자자 보호다. 거래소는 자회사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에 단순한 주주환원 방안 제시를 넘어, 중복상장의 필요성을 설명하도록 했다. 임흥택 한국거래소 상무는 “다른 자금조달 수단을 두고 왜 자회사 상장을 택해야만 했는지, 그 불가피성과 자본시장에 미칠 영향까지 직접 입증해야만 상장 문턱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 주주 간담회, 설문조사 등 소통 절차와 함께 현금배당, 현물배당, 자기주식 취득 및 소각 같은 보호 조치를 종합적으로 보겠다는 방침이다.
모회사 이사회 책임도 강화된다. 모회사 이사회는 자회사 상장이 모회사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일반주주 관점에서 직접 평가해야 한다. 중복상장에 따른 할인 효과, 배당 효과, 지분 매각 효과 등을 따져 주주 보호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공시해야 한다. 주주 의견을 수렴한 뒤 자회사 상장에 대한 찬반 판단을 공시하고, 그 결정을 자회사에 통지하는 절차도 요구된다.
학계 "일반주주 동의 요건·공모주 우선 배정 등 뒤따라야"
이번 세미나에서 학계와 전문가들은 거래소 심사 기준 강화 외에도 추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상장 심사는 한 차례의 관문이지만,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의 이해상충은 상장 추진 과정뿐 아니라 상장 이후에도 이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거래소 규정만으로는 규제 우회와 사후 가치 훼손을 모두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발제를 맡은 나현승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중복상장의 배경에 지배주주의 유인이 있다고 봤다. 상장 모회사가 유상증자로 자회사를 지원하면 지배주주 지분율이 희석될 수 있지만, 자회사를 직접 상장시키면 추가 자본 투입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모회사 일반주주는 자회사에 대한 직접 소유권과 의결권을 갖지 못한 채 간접 지분 가치만 훼손되는 구조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나현승 교수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국내 중복상장 비중 자체가 해외와 비교해 이례적으로 높은 구조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중복상장 비율은 시가총액 기준 약 18%로 일본 4.38%, 대만 3.18%, 미국 0.35%를 크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 상장 기업 가운데 중복상장 기업 비중도 20% 안팎을 오르내리며 이어지고 있다.
실증 분석도 이런 문제의식을 뒷받침했다. 나현승 교수는 2000년부터 2024년까지 261건의 중복상장 사례를 분석한 결과, 자회사 상장 심사 청구 전후에는 모회사 주가에 미약한 상승 효과가 나타나지만 실제 상장일 전후로는 큰 폭의 하락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상장 후 6개월이 지나면 모회사 누적 초과수익률은 평균 -11%, 중앙값 -16%까지 떨어졌다. 장부가치 대비 시장가치 역시 모회사는 상장 전 1.59배에서 상장 후 1.07배로 낮아진 반면, 자회사는 1.81배 수준의 평가를 받았다.
학계가 거래소안보다 더 강한 장치를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거래소가 상장 문턱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지배주주의 우회 경로를 모두 막기 어렵고, 상장이 이뤄진 뒤 나타나는 모회사 할인까지 해소하기도 어렵다는 판단이다.
나현승 교수는 우선 타 기업 지분 일부만 인수한 뒤 상장하는 방식의 우회로를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인수합병 과정에서 100% 지분 인수를 강제하는 의무공개매수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부 지분만 사들여 상장하는 방식까지 열어두면 거래소의 원칙 금지 기조가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취지다.
예외적으로 자회사 상장을 허용하더라도 일반주주 동의 요건은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사회가 지배주주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모회사 이사회 결의만으로 중복상장을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배주주를 제외한 일반주주 과반결의 절차를 의무화하거나, 의결 과정에서 지배주주 의결권을 대폭 제한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자회사 공모주를 모회사 일반주주에게 우선 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상장이 불가피한 경우라면 최소한 일반주주가 자회사 성장 과실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야 한다는 논리다. 거래소가 제시한 현물배당이나 자사주 소각보다 더 직접적인 권리 보전 장치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미 상장된 기존 중복상장 기업에 대한 후속 대책도 과제로 제시됐다. 신규 상장 문턱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이미 형성된 중복상장 구조를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현승 교수는 지배구조보고서에 중복상장 해소 계획과 주주 보호 방안을 기재하도록 의무화하고, 모자회사 간 거래에 대해 주주총회 승인 등 별도 통제장치를 두는 방식으로 점진적 구조 해소를 유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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