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공시 잔혹사

⑤기술특례 1호의 몰락…헬릭스미스, 실패를 실패라 부르지 않은 5년

시총 4조 기술특례 1호, 임상 실패로 73% 증발 "유증 없다" 약속 1년 만에 깨고 2817억 추가 조달

산업 | 심두보  기자 |입력
[편집자주] 한국 바이오 산업은 지난 10년간 코스닥 시가총액의 축을 바꿔놓았다. 그 이면에는 공시와 보도자료 사이의 간극, 임상 실패의 지연 공개, 내부자 거래, 성분 허위기재 등 자본시장의 신뢰를 훼손한 사건들이 반복됐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제도 개선이 논의됐지만, 같은 구조의 문제는 기업 이름만 바꿔 되풀이됐다. 이 시리즈는 공시 서류에 적힌 것과 적히지 않은 것을 함께 읽는다. 투자자가 알았어야 할 정보가 어디서 멈췄는지를 추적한다.
바이오 공시 잔혹사/AI 생성 이미지
바이오 공시 잔혹사/AI 생성 이미지

|스마트투데이=심두보 기자| 2005년 코스닥 기술특례상장 1호로 입성한 바이로메드(현 헬릭스미스)는 한국 바이오 벤처의 상징이었다. 서울대 교수가 창업한 유전자치료제 기업은 시가총액 4조원을 넘기며 코스닥 2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핵심 파이프라인의 임상 실패 이후 회사가 보여준 것은, 실패를 인정하지 않은 채 유상증자를 반복하고 고위험 자산에 현금을 쏟아부은 5년이었다. 앞선 4편까지가 공시의 왜곡·지연·기만이었다면, 헬릭스미스는 희망을 끊지 않는 방식으로 시장을 잡아둔 사례다.

기술특례 1호, 엔젠시스에 건 기대

헬릭스미스의 전신인 바이로메드는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선영 교수가 1996년 학내 벤처로 설립한 기업이다. 2005년 12월 코스닥 기술특례상장 제도의 첫 번째 수혜 기업으로 시장에 입성했다.

핵심 파이프라인은 엔젠시스(VM202)였다. 간세포성장인자(HGF) 유전자를 담은 플라스미드 DNA 기반 유전자치료제로, 당뇨병성신경병증(DPN) 치료를 목표로 했다. 2018년 5월 미국 FDA로부터 재생의약 첨단치료제(RMAT) 지정을 받으면서 시장의 기대가 급등했다. 2019년 3월 주가는 17만813원(무상증자 반영 기준)까지 올랐고, 시가총액은 4조원을 돌파하며 코스닥 시총 2위에 올라섰다.

2019년 9월 23일, 헬릭스미스는 엔젠시스 DPN 미국 임상 3상 결과를 공시했다. 1차 평가지표인 3개월 통증 감소 효과에서 엔젠시스 투약군은 위약군 대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못했다. 여기에 더해 일부 환자에서 위약과 약물 혼용 가능성이 발견됐다. 헬릭스미스는 "결론 도출이 불가능하다"고 발표했다. 주가는 급락했다. 17만원대에서 6개월 만에 4만5337원까지 떨어졌다. 시가총액의 73% 이상이 사라졌다.

문제는 이후였다. 헬릭스미스는 이 임상을 사후적으로 '임상 3-1상'이라 명명했다. 실패한 임상에 번호를 매겨 후속 임상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이어 임상 3-1B상, 임상 3-2상, 임상 3-2b상으로 시험을 쪼개며 재도전을 이어갔다. 임상 3-1B상에서는 소규모 환자군(101명)을 대상으로 6·9·12개월 시점에서 통계적 유의성을 확인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탐색적 성격의 시험이었다. 실패를 실패라 부르지 않는 구조는 5년간 지속됐다.

"유상증자 없다" 1년 만에 번복

923 사태 직후인 2019년 9월, 헬릭스미스는 여의도 NH투자증권에서 긴급 투자자 설명회를 열었다. 김선영 대표는 이 자리에서 "현재 2300억원의 현금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며 "향후 2년간 추가 유상증자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1년 뒤인 2020년 9월 17일, 헬릭스미스는 2817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공시했다. 자금 용도는 시설자금 1079억원, 운영자금 1038억원, 채무상환자금 700억원이었다. 다음 날 주가는 전일 종가 5만2200원에서 19.92% 급락한 4만1800원으로 마감했다.

이 유상증자가 헬릭스미스의 첫 유상증자도 아니었다. 2019년 8월에도 약 1469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이미 실시한 상태였다. "유상증자 없다"는 약속은 이미 한 차례 대규모 증자를 마친 뒤 나온 것이고, 그 약속마저 1년 만에 깨졌다.

유상증자를 반복하면서도 현금이 부족해진 배경에는 사모펀드 투자 손실이 있었다. 2020년 10월, 헬릭스미스가 2016년부터 5년간 사모펀드·사모사채·파생결합증권(DLS) 등 고위험 자산에 총 2643억원을 투자해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공개됐다.

팝펀딩 연계 사모펀드 3개에만 390억원을 투자했으나 만기가 도래한 뒤에도 회수한 자금은 64억원에 그쳤다. 회수 불능으로 손실 처리한 금액은 75억원이었다. 2020년 연결기준 영업손실은 1082억원에 달했다. 바이오 기업이 임상 자금을 위해 유상증자를 반복하면서, 동시에 수천억원을 고위험 금융상품에 넣고 있었던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유상증자 증권신고서 심사 과정에서 이 사실을 확인했다. 헬릭스미스가 주주에게 보낸 해명자료에는 "관리종목 지정 가능성은 매우 낮다", "상장폐지 가능성은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으나, 이는 증권신고서에 기재된 투자 위험 요인과 상반되는 것이었다. 금감원은 헬릭스미스에 주의 조치를 내렸다.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그리고 경영권 매각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헬릭스미스를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했다. 임상 데이터 이상현상 조사결과 확인에 관한 사항을 지연 공시한 것이 사유였다. 벌점 2.0점, 공시위반제재금 800만원이 부과됐다.

소액주주들의 반발도 거셌다. 2021년 소액주주연합이 구성돼 3명의 등기이사를 선임했다. 같은 해 7월 김선영 대표 해임안이 주주총회에 상정됐으나 부결됐다. 김 대표는 "엔젠시스 FDA 임상 3상이 통과하지 못하면 사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022년 12월, 임상이 완료되기 전에 김 대표는 이사회를 열어 경영권을 카나리아바이오엠에 넘겼다. 형식상 350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였으나, 증자 대금 중 300억원은 카나리아바이오엠에 합병된 세종메디칼의 전환사채 매입에 사용됐다. 실질 유입 자금은 50억원이었다. 시가총액 5000억원, 본사 사옥 가치만 1200억원, 현금 보유액 800억원대인 회사가 50억원에 넘어간 셈이었다.

2023년 말, 헬릭스미스는 첨단바이오의약품 기업 바이오솔루션을 새 최대주주로 맞이하며 365억원의 자금을 유치했다. 카나리아바이오엠과의 지분관계를 청산하고 재정비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2024년 1월 2일, 헬릭스미스는 엔젠시스 DPN 임상 3-2상 및 3-2b상 톱라인 결과를 공시했다. 엔젠시스 투약군은 위약군 대비 1차 평가지표를 충족하지 못했다. 5년에 걸친 재도전이 다시 실패로 끝났다. 다음 날 주가는 29.98% 하락하며 하한가(4250원)로 직행했다. 2019년 17만원대에서 출발한 주가는 이후 5년 최저점인 2115원까지 떨어졌다. 최고점 대비 98% 이상이 증발한 것이다.

희망의 지속 공급이라는 공시 실패

헬릭스미스의 공시 실패는 삼천당제약(수치 괴리)이나 한미약품(시간차), 코오롱생명과학(성분 오류), 신라젠(경영진 기만)과 결이 다르다. 허위 정보를 제공하거나 정보를 숨긴 것이 아니라, 실패한 임상에 새 번호를 매기고 설명회에서 약속을 하고 이를 번복하며 희망을 지속적으로 공급한 것이 헬릭스미스의 방식이었다.

"결론 도출 불가"라는 표현은 "실패"와 다른 것이었다. "3-1상"이라는 사후 명명은 후속 임상이 예정되어 있다는 신호였다. "유상증자 없다"는 약속은 주주를 잡아두는 장치였다. 각각의 공시는 형식적으로 거짓이 아니었지만, 투자자들이 받아든 메시지는 현실과 계속 어긋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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