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공시 잔혹사

④코스닥 2위에서 거래정지까지…신라젠, 공시 너머의 기만

시총 10조 코스닥 2위, 임상 실패로 3일 만에 주가 3분의 1 토막 BW '자금 돌리기'로 350억 배임…대표 징역 5년

산업 | 심두보  기자 |입력
[편집자주] 한국 바이오 산업은 지난 10년간 코스닥 시가총액의 축을 바꿔놓았다. 그 이면에는 공시와 보도자료 사이의 간극, 임상 실패의 지연 공개, 내부자 거래, 성분 허위기재 등 자본시장의 신뢰를 훼손한 사건들이 반복됐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제도 개선이 논의됐지만, 같은 구조의 문제는 기업 이름만 바꿔 되풀이됐다. 이 시리즈는 공시 서류에 적힌 것과 적히지 않은 것을 함께 읽는다. 투자자가 알았어야 할 정보가 어디서 멈췄는지를 추적한다.
바이오 공시 잔혹사/AI 생성 이미지
바이오 공시 잔혹사/AI 생성 이미지

|스마트투데이=심두보 기자| 코스닥 시가총액 2위까지 올랐던 신라젠은 임상 실패, 미공개정보 이용 의혹, 경영진 횡령·배임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거래정지와 상장폐지 심사까지 몰렸다. 앞서 다룬 삼천당제약(공시와 보도자료의 괴리), 한미약품(공시 시간차), 코오롱생명과학(허가 서류의 오류)이 정보 전달의 실패였다면, 신라젠은 정보를 만들어내는 경영진 자체가 시장을 기만한 사례다.

10조원의 기대, 면역항암제 펙사벡

신라젠은 종양살상바이러스 기반 면역항암제 펙사벡(Pexa-Vec)을 개발하던 바이오 기업이다. 펙사벡은 간세포암 환자를 대상으로 미국 FDA 임상 3상이 진행 중이었다. 시장은 펙사벡의 FDA 신약 허가 가능성에 주목했고, 신라젠의 시가총액은 2017년 말 10조원을 돌파하며 코스닥 시총 2위에 올랐다.

이 시기 신라젠의 실적은 시가총액에 비해 극히 미미했다. 기대의 거의 전부가 펙사벡 한 품목의 임상 성공에 걸려 있었다.

2019년 8월 1일(미국 현지시간), 펙사벡 임상 3상의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DMC)가 무용성 평가 결과를 신라젠에 통보했다. 펙사벡과 넥사바를 함께 투여한 군이 넥사바 단독 투여군 대비 생존기간 향상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DMC는 임상 중단을 권고했다.

다음 날 신라젠은 이 사실을 공시했다. 주가는 8월 2일부터 3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4만4550원이던 주가는 1만5300원까지 떨어졌다. 3일 만에 시가총액의 3분의 2가 사라졌다.

전 대표의 주식 전량 매도와 BW 부정거래

임상 중단 공시 이전에 대량 매도가 있었다. 신현필 전 신라젠 대표(당시 전무)는 2019년 6~7월, 보유 주식 전량인 16만7777주를 약 88억원에 장내 매도했다. 임상 결과가 부정적이라는 악재성 정보를 미리 알고 손실을 회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회피한 손실 규모는 약 64억원으로 추정됐다.

검찰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신현필 전 대표를 기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1심부터 무죄를 선고했다. 2심(2022년 2월)에서도 무죄가 유지됐고, 대법원(2022년 8월)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무죄가 확정됐다. 신 전 대표는 이후 형사보상금 9342만원을 수령했다.

신라젠 사태의 더 큰 축은 문은상 전 대표이사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부정거래였다.

문 전 대표는 페이퍼컴퍼니 크레스트파트너를 설립한 뒤, DB금융투자(당시 동부증권)에서 350억원을 빌려 신라젠 BW를 인수하게 했다. BW 인수 대금은 신라젠에 입금됐고, 신라젠은 이 자금을 다시 크레스트파트너에 대여했다. 크레스트파트너는 이 돈으로 동부증권 차입금을 상환했다. 자기 자본을 한 푼도 투입하지 않고 BW를 확보한 뒤, 신주인수권을 행사해 신라젠 지분을 늘리는 구조였다.

2심 재판부는 이 거래가 금융기관이 신라젠 BW의 위험을 감수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투자자들이 신라젠을 실제보다 유망한 투자 대상으로 판단하게 만든 결과를 초래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문 전 대표의 부당이득을 1918억원으로 산정했다. 1심 법원은 BW 발행 당시 가액인 350억원을 배임액으로 인정하고 징역 5년에 벌금 350억원을 선고했다. 2심에서는 형량은 유지하되 벌금을 10억원으로 대폭 줄였다. 대법원은 2022년 6월 배임액 산정 방식을 이유로 파기환송했고, 파기환송심(2022년 12월)에서 징역 5년, 벌금 10억원이 다시 선고됐다.

2년 5개월, 16만5000명의 거래정지

2020년 5월 4일, 신라젠 주식의 거래가 정지됐다. 마지막 거래가는 1만2100원이었다. 한국거래소는 같은 해 6월 신라젠을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후 심사 과정은 길었다. 2020년 11월 기업심사위원회가 1년의 개선기간을 부여했고, 개선기간이 끝난 2022년 1월 기심위는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그러나 상급 기관인 코스닥시장위원회가 2022년 2월 개선기간 6개월을 재부여했다.

2022년 10월 12일, 코스닥시장위원회는 신라젠의 상장유지를 최종 결정했다. 10월 13일 거래가 재개됐다. 거래정지 기간은 2년 5개월이었다. 이 기간 동안 16만5000명의 개인 투자자들은 주식을 팔 수도 살 수도 없는 상태에 묶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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