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심두보 기자| 삼천당제약이 유럽·미국 라이선스 계약 공시와 보도자료에 서로 다른 수치를 쓰면서 자본시장의 정보 비대칭 논란을 불러왔다. 한국거래소는 공정공시 위반으로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예고를 내렸고, 금융감독원은 별도 모니터링에 나서는 한편 바이오 공시 제도 전면 개정을 위한 태스크포스(TF)까지 가동했다. 사흘 만에 시가총액 11조원이 증발한 이 사태의 실체를 공시 원문으로 추적했다.
508억과 5조3000억, 같은 계약의 두 얼굴
삼천당제약은 올해 2월 26일 경구용 인슐린·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GLP-1 제네릭)의 유럽 11개국 독점 판매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거래소에 제출된 투자판단 관련 주요경영사항 공시에는 계약금과 마일스톤을 합산한 확정 수령액으로 3000만유로(약 508억원)이 기재됐다. 수익 배분 조건은 삼천당 60%, 파트너 40%이며, 계약 유효기간은 제품 첫 판매일로부터 10년(5년마다 자동 연장)이었다.
같은 날 삼천당제약이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동일한 계약의 규모를 5조3000억원으로 표기했다. 이 수치는 확정 금액이 아니다. 계약금·마일스톤에 더해 10년간 상업화 이후 판매수익 배분까지 모두 합산한 조건부 총액이다. 한국거래소 역시 공시 검토 과정에서 해당 금액이 계약서에 확정된 수치가 아님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3월 30일에는 미국 독점 판매 라이선스 계약을 추가 공시했다. 대상 제품은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리베우수스 제네릭 1.5mg·3mg·4mg·7mg·9mg·14mg, 위고비 경구형 제네릭 1.5mg·4mg·9mg·25mg)와 경구용 인슐린이다. 공시에 기재된 확정 마일스톤은 USD 1억(약 1508억원)이며, 수익 배분 조건은 삼천당 90%, 파트너 10%로 유럽 계약(60:40)과 크게 달랐다. 두 계약 모두 파트너사 명칭은 공시에 공개되지 않았다.
미국 계약 공시 원문에는 시장의 주목을 덜 받았지만 중요한 조항들이 있다. 파트너사가 연간 판매 예측치의 50%를 2회 연속 미달할 경우, 삼천당이 직접 판매하거나 다른 파트너와 계약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또한 파트너사가 제품 상업화를 포기하거나 실패할 경우 90일 이내에 삼천당에 통보하도록 돼 있다.
유럽 계약 역시 조건부 구조다. 공시에는 "허가 등의 성공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미실현 가능성도 있다"와 "파트너사 제품 상업화 실패 시 계약이 종료될 수 있다"는 주의 문구가 명기돼 있다.
공시 서류 자체에 이미 '미실현 가능성'과 '계약 해지' 조건이 명시돼 있는 셈이지만, 보도자료에서는 5조3000억원이라는 조건부 총액만이 전면에 부각됐다. 공시와 보도자료 사이의 온도 차이는 여기서 비롯됐다.
공정공시 위반의 발단: 2월 6일
거래소가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예고를 통보한 직접적 원인은 유럽이나 미국 계약 공시가 아니다. 위반 발생일은 2월 6일이다.
삼천당제약은 그날 보도자료를 통해 아일리아(Aflibercept) 바이오시밀러 단일 품목에서 매출 97억원, 영업이익 57억원, 영업이익률 60%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올해 목표를 상회할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제시했다. 이 내용은 거래소 공시 시스템에 정식으로 공정공시되지 않았다.
자본시장법상 상장법인이 영업실적 전망 등 투자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언론에 공개할 경우, 동시에 공정공시를 이행해야 한다. 삼천당제약은 "200여개 제품 중 단 1개 제품에 대한 이익 전망이 기사화된 것에 대한 형식적 절차"라고 해명했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3월 31일 "영업실적 등에 대한 전망 또는 예측 공정공시 미이행"을 사유로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예고를 통보했다. 최종 지정 여부는 4월 23일 결정된다. 삼천당제약의 최근 1년 누적 벌점은 현재 0점이다. 벌점이 8점 이상이면 매매거래가 1일 정지되고, 15점 이상이면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된다.
연이은 공시가 만든 주가 랠리
삼천당제약 주가는 2025년 말 23만2500원에서 출발했다. 이후 6개월간 공시가 꼬리를 물며 주가를 끌어올렸다. 2025년 9월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동유럽 8개국 판매계약, 11월 동일 품목 미국·라틴아메리카 6개국(Fresenius Kabi) 계약 정정공시, 올해 1월 일본 다이치산쿄 에스파와의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 파트너십 계약, 2월 유럽 11개국 GLP-1 라이선스 계약, 3월 경구용 인슐린 유럽 임상 1/2상 IND 신청까지 공시가 이어졌다.
사업보고서에 기재된 판매계약만 해도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관련 7건, 점안제·완제·조영제 관련 4건 등 10건 이상이다.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의 경우 △일본 Senju Pharmaceutical(총 계약금액 USD 4270만, 2025년 9월 일본 인허가 승인 완료) △캐나다 Apotex(USD 1500만, 허가 완료 후 수출 중) △유럽 5개국 비공개 파트너(EUR 2000만, 이익의 50% 배분, 2025년 8월 유럽 인허가 완료) △유럽 9개국 비공개 파트너(총매출의 55% 수령) △Fresenius Kabi 미국·라틴아메리카(계약금액 미공개, 20년) △동유럽 8개국(계약금액 미공개) 등으로 지역별로 촘촘하게 깔려 있었다.
시장은 이 연속 공시를 성장 서사로 받아들였다. 3월 24일 장중 123만3000원으로 52주 신고가를 기록하면서 시가총액은 27조원에 달했다. 이 시점에서 삼천당제약의 2025년 연결 기준 매출은 2318억원, 영업이익은 85억원이었다. 시가총액은 연간 매출의 116배, 영업이익의 317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주가가 정점을 찍은 바로 그날, 전인석 대표이사는 거래계획보고서를 제출했다. 보유 지분 1.13%(26만5700주)를 주당 94만1000원(보고서 제출일 전일 종가 기준) 기준 총 2500억원 규모로 시간외매매 방식 처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명시된 거래 목적은 연부연납 세액 납부 및 양도세 재원 확보다. 거래 예정 기간은 4월 23일부터 5월 22일까지 30일간이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3월 31일 미국 계약 공시 당일 주가는 하한가(-29.98%)를 기록해 82만9000원으로 마감했다. 4월 1일에도 10.25% 추가 하락했다.
4월 6일, 전인석 대표는 거래계획 철회보고서를 제출했다. 철회 사유는 ‘시장상황 변동: 거래계획 보고일 전 최종 종가 기준 30% 초과 하락’이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200조의3에 따르면, 이 사유에 해당하면 거래개시일 전에 계획을 철회할 수 있다. 철회 시점까지 전인석 대표의 실제 매도 물량은 0주였다. 블록딜 예고에서 철회까지 11일, 그 사이에 시가총액 11조원이 사라졌다.
금감원 모니터링, 제도 개선 TF 가동
금융감독원 조사1국 관계자는 "해당 사안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조사 착수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금감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바이오 기업 공시 개선 TF'를 구성했다. TF에는 증권사 바이오 애널리스트, 임상시험 교수, 시장 전문가가 참여하며 올해 6월까지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개정 범위는 상장 심사 단계 증권신고서부터 정기·수시공시 서식까지 아우른다. 계약 금액 표현 방식 구체화, 임상 성공 가능성과 허가 불확실성 기재 기준, 보도자료 기준 정비 등이 검토되고 있다.
금감원이 바이오 공시 기준을 정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0년에도 '코스닥시장 제약·바이오 기업 공시 투명성 제고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삼천당제약 사태를 계기로 5년여 만에 전면 개정 작업에 다시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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