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공시 잔혹사] ②호재 뒤에 숨긴 14시간…한미약품, 늑장공시가 남긴 것

산업 | 심두보  기자 |입력

9월 29일 호재 공시, 14시간 뒤 악재 공시 카카오톡이 공시보다 빨랐다…4명 구속 대법원, 지연공시 배상 책임 첫 인정

[편집자주] 한국 바이오 산업은 지난 10년간 코스닥 시가총액의 축을 바꿔놓았다. 그 이면에는 공시와 보도자료 사이의 간극, 임상 실패의 지연 공개, 내부자 거래, 성분 허위기재 등 자본시장의 신뢰를 훼손한 사건들이 반복됐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제도 개선이 논의됐지만, 같은 구조의 문제는 기업 이름만 바꿔 되풀이됐다. 이 시리즈는 공시 서류에 적힌 것과 적히지 않은 것을 함께 읽는다. 투자자가 알았어야 할 정보가 어디서 멈췄는지를 추적한다.
바이오 공시 잔혹사/AI 생성 이미지
바이오 공시 잔혹사/AI 생성 이미지

|스마트투데이=심두보 기자| 2016년 9월 29일 오후 4시 33분, 한미약품은 제넨텍과 1조원 규모의 항암제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그로부터 14시간 뒤인 다음 날 오전 9시 29분, 한미약품은 베링거인겔하임과의 8500억원 규모 기술수출 계약이 해지됐다고 공시했다. 호재와 악재 사이의 14시간 동안 시장에는 정보의 공백이 있었고, 그 공백을 먼저 메운 쪽은 공시가 아니라 카카오톡이었다. 한미약품 사태는 바이오 공시의 시간차가 어떻게 자본시장의 신뢰를 훼손하는지를 보여준 원형적 사건이다.

8조원 기술수출의 해, 그리고 균열

한미약품은 2015년 한 해 동안 글로벌 제약사들과 잇달아 대형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국내 바이오 업계의 대표 주자로 부상했다. 일라이릴리와의 면역질환치료제 포셀티닙, 베링거인겔하임과의 표적항암제 올무티닙, 얀센과의 비만·당뇨 치료제 에피노페그듀타이드, 사노피와의 퀀텀프로젝트(에페글레나타이드 포함 당뇨신약 3종) 등이 줄줄이 공시됐다. 계약 총액은 약 8조원에 달했다.

시장은 한미약품을 한국형 신약 개발의 성공 모델로 받아들였다. 주가는 2015년 초 10만원대에서 같은 해 11월 79만1000원까지 올랐다.

2016년 9월 28일 밤, 바이오주 투자자들 사이에서 카카오톡을 통해 조만간 한미약품에 큰 악재가 나온다는 정보가 돌기 시작했다. 베링거인겔하임이 올무티닙의 임상 개발을 중단하고 권리를 반환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올무티닙은 비소세포폐암 3차 치료제로 개발 중이던 표적항암제다. 국내 임상 2상 과정에서 투약 환자 731명 중 3명에게서 중증 피부 부작용이 발생했다. 독성표피괴사용해(TEN) 2건과 스티븐스존슨증후군(SJS) 1건이었다. TEN 환자 1명이 사망했고, SJS 환자 1명은 원질환(폐암) 진행으로 사망했다. 식약처는 이후 임상 중 발생한 사망 10건 중 약물과 직접 연관된 사례는 1건이라고 발표했다. 베링거인겔하임은 중증 피부 부작용 발생 등을 근거로 개발 중단을 결정했다.

이 정보는 공시 이전에 이미 증권가 일부에 퍼져 있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한미사이언스 임원 황모씨가 관련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주식을 매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직원 김모씨는 남자친구 정모씨에게 SNS로 정보를 넘겼고, 정씨는 다시 증권사 직원 조모씨에게 전달했다.

9월 29일 장 마감 후인 오후 4시 33분, 한미약품은 호프만라로슈의 자회사 제넨텍과 표적항암제 HM95573에 대해 1조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같은 날 오후 7시 6분, 한미약품은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올무티닙 기술수출 계약 해지를 공식 통보받았다.

그러나 해지 공시가 나온 것은 다음 날인 9월 30일 오전 9시 29분이었다. 통보를 받은 시점부터 공시까지 14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장이 열렸고, 전날 제넨텍 호재만을 반영한 주가는 전일 대비 5.5% 높은 가격에 거래를 시작했다.

오전 9시 29분 악재 공시가 나온 뒤 주가는 급반전했다. 종가 기준 18.1% 폭락했다. 장 초반 호재만 믿고 매수한 투자자들은 하루 만에 20% 이상의 손실을 떠안았다.

4명 구속, 대법원은 지연 자체에 책임 물었다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한미약품 미공개정보 이용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결과 한미사이언스 임원 황모씨 등 4명이 구속기소됐고, 2명이 불구속 기소, 11명이 벌금형으로 약식기소됐다. 적발된 이들이 공시 전 미리 주식을 매도해 취한 부당이득은 총 33억원이었다.

검찰은 한미약품 회사 차원의 공시 지연 의도는 인정하지 않았다. 공시 문구 협의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된 것이며, 의도적 늑장공시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정보가 공시 이전에 SNS를 통해 유통되고, 이를 이용한 거래가 이뤄졌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소액주주 120여명은 한미약품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한미약품이 9월 29일 저녁에 통보받은 악재를 9월 30일 장 시작 전에 공시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법원은 가능했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악재를 거래 개시 전에 공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봤다. 다만 소액주주들이 오로지 공시만을 근거로 매매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손해배상 범위를 인정된 손해액의 70%로 제한했다.

2022년 1월 27일, 대법원 민사2부는 한미약품의 상고를 심리불속행기각했다. 총 청구금액 13억8700여만원의 약 70%인 10억원 수준의 배상이 확정됐다. 금액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상장사의 지연 공시에 대해 대법원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올무티닙 해지는 시작에 불과했다. 2016년 12월 사노피는 퀀텀프로젝트 중 지속형 인슐린에 대한 권리를 반환했다. 같은 달 얀센이 기술수출 신약의 임상을 일시 중단했다. 2019년에는 일라이릴리가 면역질환치료제 권리를 돌려보냈다. 2020년 6월, 사노피는 60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하던 에페글레나타이드 임상 3상 5건을 모두 중단하고 최종적으로 권리를 반환했다.

2015년 체결된 대형 계약 상당수가 반환으로 돌아왔다. 한미약품이 수령한 계약금(사노피 약 2643억원 포함)은 반환 의무가 없었지만, 시가총액은 2016년 한 해 동안 4조2000억원이 증발했다. 연초 대비 주가 하락률은 57%에 달했다.

시간차가 만든 정보 비대칭

한미약품 사태의 본질은 기술이전 실패 자체가 아니었다. 신약 개발은 본래 실패 확률이 높은 사업이다. 문제는 실패 정보가 시장에 전달되는 시간과 경로였다.

호재 공시와 악재 공시 사이에 14시간의 간격이 있었다. 그 사이 일부는 SNS를 통해 악재를 미리 알았고, 대다수 투자자는 호재만 보고 거래했다. 공시 제도가 만들어야 할 정보의 동시성이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검찰은 회사의 의도적 지연은 아니라고 결론 내렸지만, 대법원은 지연 자체에 배상 책임을 물었다. 공시 의무의 핵심이 의도가 아니라 결과에 있음을 확인한 판결이었다. 판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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