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딥테크를 알아볼 VC가 '더더더' 필요하다

오피니언 | 심두보  기자 |입력

|스마트투데이=심두보 기자| AI와 양자컴퓨터, 우주항공 등 딥테크(Deep Tech)가 자본시장의 핵심 투자처로 부상했다.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도가 투자 성공의 필수 전제 조건이 됐다. 그러나 국내 벤처캐피털(VC) 업계를 이끄는 의사결정권자들의 투자 잣대는 여전히 과거 '제조업과 소프트웨어' 중심의 성장 공식에 머물러 있다. 이는 개별 심사역의 역량 부족이라기보다, 급변하는 기술의 속도를 자본의 평가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적 지체 현상에 가깝다.

현재 주요 대형 VC의 최종 의사결정권자 대다수는 2000년대 초중반 제조업 기반 기업이나 초기 인터넷 서비스 투자로 트랙레코드를 쌓아온 인물들이다. 이들은 공장을 짓고 생산 수율을 높여 마진을 남기거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로 매출을 점진적으로 늘리는 선형적(Linear) 비즈니스 모델에 익숙하다. 자연스럽게 투자 회수(Exit) 전략 역시 재무적 지표 중심의 과거 기준에 맞춰져 있다.

문제는 딥테크 산업이 본격화되면서 기술 자체의 가치평가 난도가 급상승했다는 점이다. 기존 B2C 서비스나 전통 제조업은 어느 정도의 학습을 통한 분석이 어느 정도 가능했다. 반면 딥테크 분야는 기술의 세분화와 고도화가 급격히 진행되어, 그 잠재 가치를 측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평가 체계의 한계는 벤처투자 현장에서 소통 병목 현상을 야기한다. 딥테크 스타트업 대표가 실무진인 VC 심사역에게 복잡한 알고리즘과 기술 트렌드를 1차적으로 설명하면, 심사역이 다시 투자심의위원회(투심위)의 경영진을 설득해야 하는 이중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딥테크 특유의 파괴적 혁신성은 조금씩 희석된다. 결국 투심위 통과를 위해 경영진의 이해 범위에 맞춘 마일스톤만이 투자 승인의 핵심 요건으로 남게 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 문법은 한국의 상황과 상반된 양상을 띤다. 미국의 딥테크 창업자들은 기술적 확신을 바탕으로 자본 시장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며, VC 역시 기술의 진보를 능동적으로 학습하고 수용한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나 AI 검색 엔진 퍼플렉시티(Perplexity)는 초기 수익 모델이 모호했음에도 천문학적인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자본이 기술을 재단하는 대신, 기술이 자본의 흐름을 주도하는 환경이 조성된 결과다.

반면 국내에서는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창업자가 핵심 사업 모델을 변형하는 일이 빈번하다. 장기적인 R&D 투자가 생존의 필수 조건인 딥테크 기업들이 당장의 실적을 증명하기 위해 단순 시스템 통합(SI) 외주 용역에 뛰어들거나 곁가지 수익 사업으로 눈을 돌린다. 이는 기업의 본원적 R&D 역량을 분산시키고,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될 원천 기술 확보 시점을 지연시킨다. 단기적인 자금 조달을 위해 기업의 장기적 성장 동력을 훼손하는 모순이다.

글로벌 자본시장은 이미 테크 전문 심사역 육성과 기술 특화 펀드 조성으로 발 빠르게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 국내 VC 업계 역시 기술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전문성을 최우선 과제로 내재화해야 한다.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대안은 각 산업 분야의 최고 기술 전문가들을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시키는 것이다. 최고기술책임자(CTO)급 인사를 사내 벤처파트너로 영입하는 게 대표적이다. 자본의 기술 이해도가 높아지지 않는 한, 한국 자본시장에서 제2의 퍼플렉시티를 기대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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