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주주 편인가?"…쩐의 전쟁에서 명분 싸움으로 넘어간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증권 | 김나연  기자 |입력

지분 매입 경쟁 한계 직면하자 '정관 변경' 카드로 전선 확대 집행임원제·주주충실의무 도입...최 회장 '백기사 전략' 봉쇄 및 경영권 힘빼기 의도 액면분할·배당 재원 확보로 '개미·연기금' 표심 공략

|스마트투데이=김나연 기자|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거버넌스 개혁을 전면에 내세운 주주제안을 제출하면서, 쟁점이 이사회 구성뿐 아니라 정관·제도 변경으로까지 넓어지는 모습이다.

12일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은 이날 고려아연 측에 집행임원제 도입,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정관 명문화, 액면분할 등을 골자로 한 주주제안을 회사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단순한 표 대결을 넘어, 이사회 권한과 주주환원 구조를 정관·재무 항목으로 구체화해 주총 의제의 중심에 올리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 집행임원제 도입 안건… ‘이사회 권한 강화’ 승부수

이번 주주제안의 핵심은 ‘집행임원제’ 도입이다. 집행임원제는 감독 기능을 가진 이사회와 실제 업무집행을 담당하는 집행임원을 분리해 운영하는 구조다.

현재 고려아연은 정태웅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최윤범 회장은 사내이사로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집행임원제가 도입되면 대표이사를 둘 수 없고, 이사회가 집행임원을 선임·해임하며 업무집행을 감독하는 구조로 전환된다. 결과적으로 경영진에 대한 이사회의 감독 권한이 제도적으로 강화되는 형태다.

영풍·MBK 측이 이사회 주도권을 확보할 경우, 집행임원 선임 권한을 통해 경영 주도권에도 영향을 미칠 여지가 커진다. 반대로 주총 결과가 어느 한쪽의 압승으로 귀결되지 않더라도, 집행임원제 도입 자체가 향후 권한 배분 방식과 책임 구조를 바꾸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영풍·MBK가 ‘지배구조 선진화’라는 명분과 함께 집행임원제를 전면에 배치한 배경도 이와 맞닿아 있다.

이 과정에서 ‘이사회 독립성’과 같은 거버넌스 지표가 국제 자본시장에서 강조돼 왔다는 점도 변수로 거론된다. 이사회 역할과 구조를 둘러싼 논쟁이 확대될수록, 주총 국면에서 의결권 자문사·기관투자자들이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에 대한 관심도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주주 충실의무’ 명문화… 백기사 거래의 부담 확대 가능성

두 번째 축은 정관 변경을 통해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구체 조항으로 명문화하는 안건이다. 개정 상법 제382조의3에는 이사가 법령과 정관에 따라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하고,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며 전체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취지가 담겼다. 영풍·MBK는 이 취지를 정관에 직접 반영하자고 제안했다.

이 조항이 신설될 경우, 최 회장 측의 우호 지분(백기사) 확보 전략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최 회장 측은 과거 LG화학·한화와 자사주 맞교환을 진행했고,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HMG글로벌의 고려아연 지분 보유도 시장에서는 우호지분으로 거론돼 왔다. 공개매수 국면에서는 베인캐피탈이 거래 구조에 ‘우군’으로 참여한다는 보도도 나온 만큼, FI가 결합하는 방식의 방어 거래 역시 향후 ‘주주 이익’과의 관계를 두고 쟁점화될 가능성이 있다.

해당 조항이 정관에 반영된다고 해서 특정 방어성 거래가 곧바로 위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향후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자사주 처분, 지분거래 등 우호 지분 확보와 관련된 거래가 추진될 경우, 거래의 목적과 절차, 가격의 공정성, 정보공개 수준 등을 놓고 ‘기존 주주 이익 침해’ 여부가 더 자주 다뤄질 수 있다. 법적 공방이 벌어질 때 정관 조항이 판단 기준선으로 활용될 여지도 커진다.

● 액면분할과 배당 확대… 주주환원 요구 전면화

주주환원책도 구체화했다. 영풍·MBK는 현재 1주당 5000원인 액면가를 500원으로 쪼개는 액면분할을 요구했다. 최근 주가가 100만원대 후반을 오가는 고가인 만큼, 분할을 통해 개인 투자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유동성을 확대해 주주가치 제고로 연결하겠다는 취지다.

또한 3924억원 규모의 임의적립금을 배당 가능 이익(미처분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하는 안건도 포함됐다. 유보금을 배당 재원으로 돌려 주주환원 여력을 키우자는 제안으로, 배당과 현금흐름을 중시하는 외국인 투자자와 연기금의 판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영풍·MBK는 이를 통해 현 경영진의 주주환원 약속 이행 여부를 문제 삼는 한편, 보다 적극적인 환원 기조를 전면에 내세워 주총 표 대결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 현 경영진의 딜레마와 ‘특별결의’ 장벽

영풍·MBK의 이번 제안은 회사 측에 선택지를 좁히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거버넌스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를 전면에 내세운 안건을 전부 반대할 경우, 주총 국면에서 설명 부담이 커질 수 있어서다.

다만 현실적인 장벽도 존재한다. 정관 변경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항으로,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동의와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지분 구조상 영풍·MBK 지분만으로 단독 통과가 어렵다는 점에서, 제안의 성패는 우호표 확보와 기관투자자 판단에 달릴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영풍·MBK가 정관·제도 변경 항목을 다수 포함한 것은 가결 여부와 별개로 주총 전 과정에서 쟁점을 선점하고, 표 대결의 기준을 ‘거버넌스’와 ‘주주환원’으로 설정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벌어지는 이번 공방은 단순한 경영권 다툼을 넘어, 국내 자본시장에서 지배구조 의제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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