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사고 친 쿠팡, '해결사' 미국만 챙기나 "비판 고조"

산업일반 |황태규 기자|입력

쿠팡, 개인정보 유출 관련 자체 “피해 없다”…’확인 안 된 사실’ 기습 발표 한국 과징금∙영업 정지 위협, 강제성 없어…미국 로비에 힘쓴 정황 드러나 ‘2300만 정보 유출’ SKT, 인당 30만원 배상 거부 “징벌적 배상 등 제도 필요해”

|스마트투데이=황태규 기자|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낸 쿠팡이 한국과 한국 고객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공분을 사고 있다.

쿠팡은 사고 이후 한국 정부 차원의 조사나 정치권·시민사회의 재발 방지 방안 제시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런 와중에 모회사가 있는 미국에서는 대관 조직을 확대하고 거액의 자금을 들여 로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통해 우리 정부의 제재에 대한 무력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에 개인정보 유출 사고 발생 시 실효성 있는 과징금 부과와 징벌적 손해배상 조치 등의 피해자 구제 방안을 제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3000명 정보 저장, 유출은 없다"...국민 인내 시험한 25일 쿠팡의 발표

우선, 25일 쿠팡이 기습적으로 발표한 자체 조사 결과는 정부와 국민의 인내의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 많다.

(사진=쿠팡 홈페이지)
(사진=쿠팡 홈페이지)

이날 쿠팡은 보도자료를 통해 “고객 정보를 유출한 직원을 특정했고, 유출자는 자신의 행위를 자백했으며 고객 정보에 접근한 방식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고 알렸다.

그러면서 쿠팡은 "현재까지 조사에 의하면 유출자는 약 3000개 계정의 제한된 고객 정보만 저장했고, 이후 이를 모두 삭제했다"고 전했다.

쿠팡의 일방적 발표가 이례적인 것은 지금껏 유사한 사건 등으로 정부 조사를 받은 기업 중에서 조사가 한창 진행되는 기간에 관련 사실을 언론에 알린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중간 조사 결과를 외부에 발표하더라도 그 주체는 조사나 수사를 진행한 측, 즉 정부나 경찰이어야 했다. 이 경우에도 정부 등과 조사 대상의 조율이 선행되는 게 순리다.

하지만 쿠팡은 이런 과정 없이 전격적으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 차원의 조사를 주도하고 있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쿠팡 발표 직후 “일방적 주장”이라고 강력 반발한 이유다.

과기정통부는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항을 쿠팡이 일방적으로 알린 것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 쿠팡이 주장하는 사항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날 마침 대통령실에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었던 대통령실과 관련 부처는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대통령실 등에서는 쿠팡의 이런 일방통행식 발표가 국민 정서를 건드렸다는 비판이 거셌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임의제출 받은 개인정보 유출자의 노트북을 다시 포렌식 해 쿠팡 주장의 진위여부를 따진다는 계획이다. 경찰은 쿠팡이 중국으로 건너가 유출자를 만나고 노트북을 입수한 과정 등도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 ‘SKT 정보 유출’ 때와는 다른 정부 대응, 그럼에도⋯

25일 쿠팡의 발표는 가뜩이나 사건 발생 뒤 국회에서 진행된 청문회 등에서 보인 태도로 인해 만연했던 국민과 고객의 실망감을 극에 달하게 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제 국민들은 쿠팡에 대한 단순한 비난을 넘어 확실한 처벌을 요구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 (사진=쿠팡)
김범석 쿠팡Inc 의장. (사진=쿠팡)

실제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국민을 우습게 보는 쿠팡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 “대관업무에 집중해 상황을 넘기려는 쿠팡에 확실한 규제를 내리길 바란다”는 등의 비판 반응이 올라오는 중이다.

정부와 정치권 역시 역대급의 강경한 태도를 유지 중이다.

쿠팡 사고에 앞서 2324만명의 정보를 유출한 SK텔레콤를 비롯해 2만명의 정보를 유출한 KT, 296만명의 정보를 유출한 롯데카드 등의 케이스가 있었지만 국세청 특별 세무조사나 국회 상임위원회 연석 청문회 등이 추진된 사례는 이번이 유일하다.

정부는 여기에 과징금과 영업정지 처분시 이전보다 강화된 기준 적용을 검토하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쿠팡이 실효성 있는 처벌을 받을지에 대해서는 불확실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내법에 따르면 기업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인정될 때, 손해액의 5배까지 청구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존재한다. 다만, 해당 제도는 2015년 도입된 이후 한 차례도 사용된 적이 없다. 

쿠팡 피해자들은 대형 로펌 등을 통해 쿠팡에 대한 위자료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소송에 참여한 인원은 정보 유출 전체 피해자의 약 1%에 불과하다. 

소송에 참가하지 않은 쿠팡 정보 유출 피해자 A씨는 “소송에 참여하는 방법을 모른다. 직장을 다니고, 일을 하면서 소송 참여까지 생각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참여연대, 한국소비자연대 등이 주도하는 집단분쟁조정에 참여할 수 있다. 다만, 집단분쟁조정으로 도출된 조정안에는 강제성이 없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올해 SKT의 정보 유출 건에 대해 1인당 30만원을 배상하라는 안을 제시했으나, SKT는 이에 대한 수용을 거부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박재범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련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회사의 늑장 대응과 투명하지 못한 정보 공개, 미흡한 구제 절차라고 할 수 있다”라며 “내부 보안시스템 관리 부실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사고 발생 시 실효성 있는 과징금 부과 및 시정지시, 징벌적 손해배상, 위약금 면제 등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 조치와 실질적 피해자 구제 방안 등이 제도적으로 강화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韓에선 안들리는 '親쿠팡' 목소리 미국에선 왜 나오나

한국 쿠팡의 본사 쿠팡 아이앤씨(Inc.)가 있는 미국에서 한국 정치권의 쿠팡 압박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우려되는 현상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로버트 오브라이언은 24일 엑스(X·옛 트위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의 무역 관계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한국이 미국 기술 기업을 겨냥해 그의 노력을 훼손한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브라이언이 직접 거명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이 글이 쿠팡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이자 미국의 정치평론가 스티브 코르테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최근 “한국 정부는 (한국에) 막대한 투자를 해 온 미국 기업 쿠팡을 오히려 제재하고 있다”며 이는 ‘한국의 미국 배신행위’라고 한국 정부 등을 직격했다.

이런 목소리의 뒤에는 쿠팡의 막강한 대미 로비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의회 상원 로비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해 12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에 100만달러를 기부하는 등 최근 5년간 미 행정부와 의회를 대상으로 1075만달러(약 155억원)의 자금을 지출했다. 

쿠팡Inc는 최근에도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대관 사무실에서 일할 직원을 채용 중이다. 지원 자격은 미국 정부와 의회 등 공공 부문에서 10년 이상 일한 경력 등이다.

이같은 쿠팡의 미국 내 활동이 한국 정부나 정치권의 제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당장 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 쪽에서 한국 정부 등의 쿠팡 제재를 통상·무역 문제로 인식할 경우는 다르다. 이 경우 미국 통상 당국 등의 압박에 의해 한국 정부의 대(對)쿠팡 규제가 사실상 무력화될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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