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임장 수거꾼'에서 '경영 컨설턴트'로…연 수백억 시장 뜬다

경제·금융 | 심두보  기자 |입력

- 코나아이·DB손보·한국앤컴퍼니…경영권 분쟁 기업, 주총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 분쟁·주주제안 이슈 기업 50% 급증…의결권 대행 문의 전년比 5배 폭증 - 비트컴퓨터 발행주식 13.78% 확보·목표 대비 106% 달성…전국 500명 인력 투입

|스마트투데이=통합뉴스룸 기자| "주총은 이제 단순히 안건을 승인받는 자리가 아닙니다. 기업의 미래 가치를 주주에게 설득하고 신뢰를 얻어내는 고도의 PR 현장입니다.

올봄 정기주주총회 시즌이 일단락됐다. 표면적으로는 예년과 다를 바 없는 3월의 풍경이었지만, 현장에서 뛴 의결권 대행업계 관계자들의 표정은 사뭇 달랐다. 상법 개정 여파,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 셀프 보수 의결권 제한까지 겹치며 올해 주총장은 기업 경영권의 향방을 가르는 그야말로 '전쟁터(戰場)'가 됐다.

분쟁 기업 50% 급증…'긴급 구조대' 된 대행사

국내 의결권 및 IR·PR 전문 기업 로코모티브가 1일 올해 주총 시즌의 성적표를 공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코스피 8개사, 코스닥 7개사 등 총 15개 상장사의 의결권 대행을 수행한 로코모티브가 가장 먼저 꼽은 올해의 특징은 '분쟁의 일상화'다.

경영권 분쟁 및 주주제안 이슈가 발생한 수임 기업 수가 지난해 4개사에서 올해 6개사로 50% 급증했다. 코나아이, DB손해보험, 한국앤컴퍼니 등이 올해 주총장에서 크고 작은 주주 갈등에 직면한 기업들이다. 제도 변화로 인한 정관 변경 수요가 급증하고 기관 투자자의 반대율이 치솟으면서, 이 회사로 접수된 의결권 대행 문의는 전년 대비 5배 이상 급증했다.

주총장의 혼란도 말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주총을 불과 1주일여 앞두고 긴급 지원을 요청하는 기업도 속출했다. 결국 정기주총에서의 부결을 감안해 임시주총을 준비하는 사례도 잇따랐다. 소액주주 연대와 행동주의 펀드가 온라인 플랫폼을 무기로 주주 결집을 가속화하는 한편, 일부 오프라인 대행사가 기존 수임 기업을 등지고, 거꾸로 공격자(소액주주 측)로 돌아서는 이례적인 장면까지 연출됐다.

결국 신뢰할 수 있는 대행사 선정이 경영권 방어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게 된 배경이다.

100만 주주 중 3만7000명 정밀 타깃…전국 500명 인력 투입

숫자는 이 시장이 어디까지 진화했는지를 보여준다. 로코모티브가 올해 대행한 15개 기업의 총주주 수는 약 100만명. 이 회사는 이 중 의사결정의 실질적 변수인 3만7000여명의 주주를 정밀 타깃팅해 의결권 확보 작업을 집중했다. 3월 한 달간 전국에 투입된 전문 인력만 500여명에 달한다.

성과는 수치로 증명됐다. 올해 주총 시즌 목표 주식수 6600만주 대비 106%인 7000만주를 확보했다. 가장 눈에 띄는 단일 사례는 비트컴퓨터다. 총발행 주식의 13.78%에 해당하는 의결권을 단기간에 수거해냈다. 단일 기업 기준으로 이 수치는 적대적 M&A 방어나 대형 지분 분쟁에서도 승패를 가를 수 있는 수준이다.

위임장 수거에서 IR·컨설팅으로…수백억 新시장 열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주총 시즌을 기점으로 의결권 대행업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 이 업종은 위임장을 모아주는 단순 용역에 가까웠다. 기업 측이 준비한 의결권 위임 용지를 주주들에게 배달하고 회수하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은 다르다. 로코모티브가 구축한 자체 의결권 전산 시스템은 위치기반 공간 데이터를 활용해 주주 분포와 이동 패턴을 분석하고 타깃 주주를 선별한다. 여기에 기업 IR 메시지를 정교하게 가다듬어 주주에게 전달하는 PR 대행, 지배구조 개선 컨설팅, 사전 리스크 진단까지 서비스 범주가 확장됐다. 20여 년의 업력을 쌓아온 이 회사가 전국 단위 인적 네트워크와 데이터 시스템을 결합하는 방식은, 기존 법무·회계 법인의 역할 영역과 겹치기 시작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자본시장 제도 변화가 이 시장의 성장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상법 개정 논의가 계속되고 기관 투자자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 기조가 정착되는 한, 기업들이 매년 의결권 전문가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이번 주총 시즌을 발판으로 상시 주주 소통 체계 강화와 IR 컨설팅을 연계한 의결권 솔루션 고도화에 나설 계획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주주행동주의와 제도 변화가 동시에 맞물리면서 의결권 대행은 더 이상 비용 절감 대상이 아니라 경영권을 지키는 핵심 인프라가 됐다"며 "전문 대행사 시장은 앞으로 3~5년내 현재 대비 수배 규모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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