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국민연금 안건별 표심 해부…최윤범 재선임에 반대할까?

이사회 5인 사측 우세, 지배구조는 주주제안 최윤범 재선임, 자문사 엇갈림 속 기권 가능성 국민연금 사안별 핀셋 의결권 행사 유력

증권 | 심두보  기자 |입력

|스마트투데이=심두보 기자| 오는 3월 24일 개최되는 고려아연의 제52기 정기주주총회가 자본시장의 최대 격전지로 부상하며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현재 최윤범 회장 측과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의 지분 격차는 초박빙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양측 모두 과반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탓에 주총 당일 안건별로 치열한 표 대결이 펼쳐질 전망이다.

이러한 팽팽한 지분 구조 속에서 5.2%(2025년 12월 말 기준)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의 의사결정이 경영권 분쟁의 승패를 가를 캐스팅보트로 작용하게 된다. 단일 기관투자자로서 국민연금의 표심이 어느 쪽으로 향하느냐에 따라 각 안건의 통과 여부가 직결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자본시장 참여자들은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기반해 어떠한 잣대를 들이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번 주총에는 이사회 규모, 사내이사 선임, 배당 재원 마련, 정관 변경 등 지배구조의 근간을 다루는 굵직한 안건들이 대거 상정되어 있다. 국민연금은 단순한 진영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철저히 안건 중심의 독립적인 분석을 통해 표결 방향을 확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주총에서 보여준 '사안별 핀셋 의결권' 행사 기조가 올해 안건별 표결에서도 그대로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포인트 1. 최윤범 사내이사 재선임

이번 주주총회의 최대 뇌관이자 양측의 명운이 걸린 사안은 최윤범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다. 경영권 분쟁의 당사자인 최 회장이 이사회에 잔류하여 경영권을 지속적으로 방어할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가장 첨예한 표 대결 구간이다. 이 안건을 두고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의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국민연금의 고심은 한층 깊어지게 되었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최 회장의 재선임 안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를 권고하며 경영진에 타격을 입혔다. 경영권 방어 과정에서 무리하게 추진된 대규모 자사주 고가 매입과 기습적인 유상증자 시도가 일반 주주의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또 다른 양대 산맥인 글래스루이스(Glass Lewis)는 최 회장의 재선임에 '찬성'을 권고하며 ISS와는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글래스루이스는 현 경영진이 적대적 M&A 위협 속에서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취한 조치들의 불가피성을 일정 부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핵심 자문사들의 권고가 엇갈림에 따라 국민연금은 자체적인 스튜어드십 코드 가이드라인을 더욱 엄격하게 들이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최근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발맞춰 주주가치 훼손 이력이 있는 이사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심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금융당국의 제동으로 철회된 2조5000억원 규모의 일반공모 유상증자 시도는 연기금 입장에서 묵과하기 힘든 중대한 거버넌스 흠결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최 회장을 둘러싸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사법 리스크가 국민연금의 운신 폭을 좁히는 결정적 허들이 되고 있다. 금융감독원과 검찰의 다중적인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당사자를 옹호하기란 쉽지 않다. 사법 기관의 최종 판단이 나오지 않은 불확실성 속에서 찬성표를 던졌다가 훗날 수사 결과에 따라 져야 할 내부적 컴플라이언스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민연금이 최 회장의 재선임에 명시적으로 '반대' 표결을 하여 사모펀드의 손을 직접 들어주기도 현실적으로 매우 곤란하다. 국민연금의 반대표는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이 고려아연 경영권을 장악하도록 돕는 방아쇠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국민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적 연기금이 특정 사모펀드의 적대적 M&A에 백기사로 동참했다는 거센 여론의 비판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농후하다.

특히 MBK파트너스는 대주주로 있는 홈플러스의 경영 악화 및 구조조정 논란으로 인해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사모펀드 측에 국민연금이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는 국민 정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위험한 행보다. 국민연금은 잠재적인 정치적 후폭풍과 이해상충 논란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정무적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국민연금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전략적인 선택지로 '기권(중립 투표)'이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다. 찬성도 반대도 표명하지 않음으로써 안건 통과 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고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집단 지성에 결과를 맡기는 방식이다. 거버넌스 훼손에 대한 책임은 우회적으로 묻되 사모펀드의 적대적 M&A도 돕지 않는, 연기금으로서의 가장 안전하고 합리적인 출구 전략인 셈이다.

포인트 2. 이사회 규모 및 구성

또 다른 핵심 쟁점은 이사회 규모를 결정하는 이사 선임 안건으로, 사측의 5인 선임안과 영풍·MBK 연합의 6인 선임안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사측은 기존 체제의 안정을 유지하고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해 5인 체제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MBK 측은 이사회 내 장악력을 높이고 경영진에 대한 견제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명분으로 1인을 추가한 6인 안건을 주주제안으로 올렸다.

이 안건의 향배를 가를 주요 변수로는 오는 9월 시행을 앞둔 개정 상법의 요건 충족 문제가 거론된다.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는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해야 하므로, 영풍·MBK 측의 6인 안건이 통과될 경우 향후 추가적인 이사 선임 요인이 발생하여 이사회 구성의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지배구조의 법적 안정성과 연속성 측면에서 사측의 현행 체제 유지안이 더 높은 설득력을 얻고 있는 형국이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 역시 이러한 법적, 구조적 안정성을 근거로 사측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ISS와 글래스루이스를 포함한 주요 자문사들은 영풍·MBK 측의 무리한 이사회 확장을 경계하며 사측의 5인 선임안에 찬성할 것을 권고했다.

국민연금 역시 이사회 규모 안건에 대해서는 사측의 5인 선임안에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이 매우 짙은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정기주총에서 정관 변경을 통해 이사회 비대화를 막는 데 명시적으로 찬성했던 기조와 정확히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양측의 무분별한 이사 선임 경쟁을 차단하겠다는 연기금의 의사결정 연속성으로 풀이된다.

포인트 3. 주주 충실의무 및 명예회장 보수 제한

지배구조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직결된 정관 변경 안건들에서는 영풍·MBK 연합이 내놓은 주주제안이 상대적인 우위를 점할 것으로 분석된다. 영풍·MBK 측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 국한하던 상법의 좁은 해석에서 벗어나 '일반 주주'로까지 명시적으로 확대하는 정관 변경안을 상정했다. 이는 최근 자본시장에서 일반 소수주주의 권익 보호를 최우선시하는 정책적 트렌드와 완벽하게 궤를 같이하는 제안이다.

국민연금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을 이끌어야 할 핵심 기관투자자로서 이러한 지배구조 선진화 안건을 외면하기 어렵다. 일반 주주의 권리를 정관에 명문화하여 법적으로 철저히 보호하자는 선의의 주주제안에 대해 연기금이 반대표를 행사할 명분은 사실상 없다. 경영권 장악 여부와는 별개로 해당 안건의 취지 자체가 스튜어드십 코드에 완벽히 부합하기 때문이다.

또한 명예회장 및 고문 등 미등기 임원의 과도한 보수를 정관으로 엄격히 제한하자는 주주제안 안건 역시 시장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사회 결의에 따른 법적인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도 회사로부터 막대한 보수를 수령하는 관행은 한국 자본시장의 고질적인 거버넌스 리스크로 꾸준히 지적되어 왔다. 영풍·MBK 측은 이러한 불투명한 보수 지급 체계를 정관을 통해 투명하게 통제하자는 명분 있는 안건을 내놓았다.

지난해 정기주총에서 국민연금은 경영 성과와 연계되지 않은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 표결을 한 선례가 있다. 등기 이사의 보수조차 엄격하게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는 국민연금이 책임 없는 미등기 임원의 보수 관행을 묵인할 이유가 없다. 과거의 일관된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보수 제한을 골자로 하는 이번 정관 변경 안건에는 찬성표를 던질 것으로 전망된다.

포인트 4: 집행임원제도 도입

영풍·MBK 연합이 주주제안으로 상정한 '집행임원제도 도입' 역시 회사의 근본적인 거버넌스 틀을 바꿀 수 있는 핵심 안건으로 꼽힌다. 이 제도는 이사회의 감독 및 의사결정 기능과 집행임원의 실무 집행 기능을 법적으로 완전히 분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 경영진의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막고 이사회의 사전 통제력을 극대화하여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이 제안의 주된 명분이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이 안건에 대해 현행 이사회 체제의 감독 기능 결함을 보완하는 유의미한 구조적 개혁이라며 명시적인 '찬성'을 권고했다. 대규모 자사주 매입이나 기습적인 유상증자 시도 등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노출된 기존 이사회의 한계를 구조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민연금 역시 그동안 투자 기업들에게 이사회의 독립적인 견제 기능 강화를 꾸준히 요구해 온 만큼 이 안건에 찬성표를 던질 명분이 충분하다. 이사회가 경영진의 업무 집행을 객관적으로 감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스튜어드십 코드의 핵심 지향점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경영권의 향배와 무관하게 선진적인 지배구조 시스템을 정착시킨다는 차원에서 연기금의 긍정적인 표결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포인트 5: 주주총회 의장 변경

주주총회 의장을 기존 '대표이사'에서 '이사회 의장'으로 변경하는 정관 변경 안건도 주총 당일 표 대결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이 안건은 경영권 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본인의 연임 안건이 걸려 있는 대표이사가 직접 의사봉을 잡는 데 따른 이해상충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목적을 지닌다. 현재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만큼, 독립적인 인사가 주주총회를 진행하도록 하여 절차적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ISS는 이 안건에 대해서도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복잡하고 치열한 주총을 이끄는 것이 절차적 중립성 확보에 훨씬 부합한다며 '찬성'을 권고했다.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는 주주총회 현장에서 의장의 권한이 표결 결과나 진행 흐름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주주총회의 절차적 투명성과 소수 주주의 권익 보호를 매우 중대한 의결권 행사 기준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경영권 분쟁의 당사자가 아닌 제3의 독립적인 인사가 주총을 주재하도록 하는 주주제안에 대해 국민연금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이 안건 역시 사모펀드의 경영권 장악을 돕는 취지라기보다는 거버넌스의 기본 원칙을 바로 세우는 성격이 강해 국민연금의 무난한 찬성 표결이 전망된다.

사안별 교차 투표가 남길 거버넌스 이정표

조만간 열릴 2026년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은 철저한 '사안별 교차 투표'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경영권 분쟁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적 구도에 함몰되지 않고 각 안건이 기업가치와 주주 권익에 미치는 파장을 독립적으로 쪼개어 심사하는 방식이다.

국민연금의 안건별 분리 의결권 행사 전망은 향후 한국 자본시장의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에 매우 중대한 시사점을 남기게 된다. 거대 지배주주 간의 사활을 건 진흙탕 경영권 다툼 속에서도 기관투자자가 중심을 잃지 않고 냉정하게 원칙을 지켜낼 수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장의 시선은 3월 24일 주주총회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최종적으로 내놓을 결단에 쏠려 있다. 팽팽한 지분 구조 탓에 단 1%의 표심도 아쉬운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사안별 교차 투표는 양측 모두에게 절반의 승리와 절반의 뼈아픈 타격을 동시에 안겨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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