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주가 폭락보다 더 억울한 2차전지·태양광 유상증자의 배신

너무 쉽게 뽑는 '최후의 칼' 주주배정 유상증자 대체조달 검토·자금 사용 검증 강화해야

오피니언 |안효건 기자 | 입력 2026. 08. 03. 07:00

|스마트투데이=안효건 기자| 최근 주가 폭락이 어딜 가나 화제다. 20% 넘게 떨어진 주가에 한숨 쉬면서도 매수 버튼을 눌렀던 자기 손가락을 탓한다. 원래 내가 결정했어도 손실은 억울한 법이다. 여기서 남이 누른 20% 추가 할인 버튼을 누르면 어떤 기분일까? 바닥 주가에서 유상증자 버튼을 누른 2차전지·태양광 기업 이야기다.

성장 동아줄로 포장한 탈출용 밧줄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유증 시장은 2차전지·태양광 기업들이 주도했다. 삼성SDI와 포스코퓨처엠을 시작으로 SKC, 한화솔루션, 에코프로비엠 등이 뒤를 이었다.

시장 반응은 대체로 차가웠다. 삼성SDI 2조원 조달 계획은 최종 1조65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한화솔루션이 최초 2조4000억원으로 제시했던 계획은 최종 1조1700억원으로 줄었다. 에코프로비엠 1조2000억원 구상은 최근 주가 급락으로 위기다. 포스코퓨처엠은 계획했던 1조1000억원 규모를 간신히 지켰다. SKC 정도만 1조원었던 규모를 최종 1조2000억원으로 늘렸다.

결국 맨 앞에 내건 성장 명분이 시장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들은 미국 배터리 합작공장, 캐나다 양극재 공장, 유리기판 상업화, 차세대 태양광, 인도네시아 니켈 제련소 등 다채로운 미래를 제시했다. 문제는 이들이 처한 현실이었다. 여전히 기존 프로젝트를 매듭짓지 못해 발생한 추가 비용 부담이나 운영비·차입금 압력이 높다. 이럴 때 유증을 꺼내 들면 시장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유증은 기업금융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거론하는 조달 방식으로 꼽는다.

그를 감수할 만큼 성장에 자신 있다면 제3자 배정을 택할 수 있었다. 같은 유증 안에서도 제3자 배정과 주주 배정이 주는 신호는 다르다. 제3자 배정 유증은 지배주주가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거나 외부 투자자 유치로 진행한다. 어느 쪽이든 자기 돈을 걸고 충분한 정보로 엄격한 투자 검토를 거쳐 가격을 정한다.

이는 검증 완료 성장 계획이라는 긍정 신호로 이어진다. 자본시장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20~2022년 제3자 배정 유증 기업에서 주주 배정 유증 기업보다 긍정적인 주가 반응이 나타났다. 성장성을 뒷받침하는 자본적 지출(CAPEX)도 비교적 빠르게 증가했다.

앞서 언급한 2차전지·태양광 기업은 모두 주주 배정을 택했다. 물론 개인이 지배주주라면 유동성 부족이 문제였을 수 있다. 이들 지배주주 대다수는 자금력이 튼튼한 대기업 집단이다. 자금 부족보다는 할인 발행 과매수나 경영권 방어 수단 악용 위험을 걱정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유증 결정 당시 시장에서도 성장 기대감은 낮았다. 유증 발행가액은 직전 고점 대비 51~85% 낮았다. 최초 예정한 기준 주가 대비로도 24~82% 빠졌다.

이들 자금 계획과 이행 등은 확실히 자본연 분석과 비슷한 궤적을 그렸다. 삼성SDI는 줄어든 조달금 안에서도 6000억원 넘는 자금을 원래 계획대로 쓰지 못했다. 에코프로비엠 역시 2022년 증자 때 조달한 해외 출자용 자금 일부를 운영자금에 먼저 썼다. 이후 전환사채(CB) 발행으로 추가 자금을 메웠다. 이 CB 풋옵션 청구 가능성은 현재 회사 유동성 부담을 키운다. 이번 유증에서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불확실성으로 꼽는다.

한화솔루션 계획은 더 위태로웠다. 시작은 시설자금 9077억원과 채무상환 자금 1조4899억원이었다. 최종 조달금이 줄어드는 동안 시설자금은 온존하고 채무상환 자금은 2636억원으로 대폭 축소했다. 자산 매각과 신종자본증권 발행 등 별도 자구책은 뒤늦게 추진했다. 여러 재무 대안 가운데 일반주주 자금을 가장 크게 끌어오는 안부터 제시한 셈이다.

한화솔루션이 제시한 채무상환 시급성이 사실이라면 에코프로비엠 사례를 따를 위험도 배제하기는 어렵다. 시설자금을 미루고 운영자금으로 사용해 채무 대응 여력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부실한 계획은 결국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으로 이어졌다. 

가격 협상 불가능한 투자자들, 사전·사후 검증이라도 제대로 해야

 이때 일반주주들이 감내하는 가장 큰 약점인 비대칭성이 떠오른다. 차입에서도 제3자 배정 유증처럼 투자자에게 검증과 가격 결정권이 있다. 금융기관과 전문 투자자가 사업성과 상환 능력을 평가하고 그에 맞는 금리를 정한다.

주주 배정 증자에는 이런 규율이 약하다. 일반주주는 경영진과 증자 규모, 목표 수익률, 자금 집행 조건을 협상할 수 없다. 회사가 정한 조건에 따라 돈을 더 내거나 참여하지 않고 주식 가치 희석을 받아내야 한다. 신주를 울며 겨자 먹기로 인수한 주주에게 귀속하는 장기적 위험도 뒤따른다. 실권주 인수 위험을 부담하는 유증 주관사도 허술하게 제시한 성장 계획 실패까지 책임지지는 않는다.

상법 개정 등 주주 보호 강화 흐름에서도 유독 유증은 보이지 않는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도입한 기업지배구조 보고서에도 숱한 기업이 주주가치에 중대한 변화를 줄 수 있는 결정에 대한 주주 보호 제도를 마련하지 않았다고 당당히 적는다.

이제라도 일정 규모 이상 주주배정 증자에 더 엄격한 제도 도입을 검토할 때다. 사외이사 중심 독립위원회나 외부 전문가 중심 특별위원회가 투자 규모와 목적을 사전 심사하는 방법도 있다. 지난 2월 법무부가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이해 상충 우려가 큰 거래에 대해 권고한 바 있는 방식이다.

최근 당국이 모자회사 중복상장 핵심 요건으로 제시한 일반주주 동의도 참고할 만하다. 기존 주주 경제적 권리를 중대하게 변화시키는 공모 증자라는 점에서는 상장과 유증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 발행주식 수나 희석률이 일정 기준을 넘는 증자에 일반주주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를 두지 못할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

증권신고서에는 대체조달 수단을 검토한 과정과 이를 채택하지 않은 이유를 더 구체적으로 기재토록 할 수 있다. 조달 이후에는 자금 사용과 투자 성과에 대한 지속적 검증이 필수적이다. 업계에서는 자금 전용에 대한 너그러운 제재가 “일단 땡기고 보자”는 심리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금 용도를 변경하거나 집행 시점을 미룰 때는 변경 사유와 이사회 판단, 수익성 영향을 정기 공시할 필요가 있다.

다수 기업은 자금을 언제 어디에 투입할지만 유증 신고서에 기재하는 상황이다. 해당 투자가 얼마나 많은 매출과 이익, 현금흐름을 만들지는 좀처럼 제시하지 않는다. 이제 막 상장하는 중소기업도 당장 적자라 특례 상장할 때 추정치라도 계산해 적는다. 증권사 리포트에서도 흔히 제시하는 매출과 이익 목표치를 회사 스스로 계산하지 못한다면 일반주주 자금에는 얼씬하지 않는 편이 낫다.

유증은 성장이 필요한 기업과 기업을 신뢰하는 주주들이 원팀을 꾸릴 수 있는 무대다. 유증에 붙은 선입견이 주가와 조달금을 누른다면 모두에게 손해다. 성장한다는 사업을 미루고, 시설자금이라든 자금 용도를 바꾸고, 그 대가는 일반주주가 감당한 일이 반복되면 선입견은 사라질 수 없다. 사라져서도 안 된다. 진실로 주주가 성장 동반자라면 돈부터 요구하기 전에 계획을 검증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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