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안효건 기자| SKC가 미처 정착하지 못한 김종우 대표 체제에서 대규모 유상증자를 진행한다. 안정적인 본업을 바탕으로 일관성 있게 유리기판에 도전하는 예비 경쟁사 삼성전기와 대조적인 장면이다.
모호한 유증 성격, '팽창' 박원철과 '수습' 김종우에 엿보이는 본질
12일 SKC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SKC는 현재 사령탑인 김종우 대표 대신 박원철 전 대표 이름을 유증 신고서에 내걸었다. 이와 달리 주주들에게 전한 주주서한은 김 대표 명의다. 이는 김 대표 체제가 아직 공식 출범하지 않은 영향이다. SKC 이사회는 오는 26일 주총에서 김 대표 선임안 등을 의결할 예정이다.
박 전 대표 이름을 걸었다고 해서 절차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자금조달 시급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 대표 체제 안착을 기다리지 못할 만큼 유증이 급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유증 이후 성장 청사진 역시 확정되지 않았다. 회사는 20% 할인 유증으로 주주 희생을 요구하면서도 명확한 계획을 정하지 못한 상태다. 회사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화학은 매각·철수할 수도, 유지·육성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석유 원료인 화학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미국·이란 전쟁 발발에도 매각 가능성 변화에 대한 질문에 "중장기 사업 계획에 변동 없다"는 모호한 답을 내놓고 있다.
당장 유증 철회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앞서 SKC 관계자는 "최근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며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안정적으로 추진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유증 발행가 계산을 시작한 지난달 25일부터 전날까지 회사 10일 평균 주가는 10만3470원이다. 당초 예상한 기준주가 11만3115원보다 8.5% 낮다. 이 수준이 이어지면 주주 자산을 희생해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이 850억원가량 감소한다.
미래 동력으로 제시한 유리기판 사업도 다르지 않다. 과거 제시한 상용화 시점을 지키지 못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일정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번 위기는 화학·2차전지 부진에서 미처 나오지 못한 상황에 기인한다. 유증 증권신고서에서 남은 화학 전문가 박 전 대표 이름은 그 흔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간 SKC는 단기적 인수합병(M&A)과 사업 매각을 반복한 빅 피벗(Big Pivot)을 해왔다. 그 완결판이 2020~2022년 화학·2차전지 정체성 구축이다.
이때 지휘봉을 쥔 박원철 전 대표 체제는 팽창 기대로 가득했다. 박 전 대표는 SK그룹 내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 신규사업팀 부사장 등을 거친 인물이다. 연구개발(R&D)과 신규 투자를 비롯한 글로벌 사업 팽창을 주도하며 확장에 집중했다.
그는 학위를 화학으로 받고 GS에너지와 OCI 요직을 거쳤는데도 유리기판 자회사 앱솔릭스 대표를 겸직했다. 차세대 반도체 기판 상업화를 진두지휘하며 적극 확장책을 편 건 것이다.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화학·2차전지 구성은 중국산 공세와 전기차 캐즘으로 불과 1년 앞을 못 본 선택으로 드러났다. 2023년 적자 전환 이후 손실이 급증하면서 지난해 영업손실 3050억원, 순손실 7194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주요 신용평가사들은 SKC가 올해도 턴어라운드하지 못할 것으로 본다. 지난해 한국기업평가와 NICE신용평가, 한국신용평가 등은 줄줄이 SKC 신용등급을 내렸다. 일각에서 이번 유증을 성장 재원이 아닌 버티기 자금으로 보는 핵심 이유다. 실제 1조원 중 4100억원은 차입금 상황에 쓰인다. 나머지 5900억원가량이 유리기판(앱솔릭스) 투자금이다.
현재 김종우 대표 궤적과 위치는 생존과 구조조정에 방점이 찍혔다. 불어불문학, 경영학(MBA) 학위를 딴 김 대표는 SKC 사업분야 전문성과는 거리가 있다. 그보다는 SKC 비즈니스모델(BM)혁신 추진단장 등을 역임한 구조조정 전문가에 가깝다. 반도체 소재 기업 SK엔펄스가 SKC 내부에서 분해돼 사라질 때도 김 대표가 SK엔펄스 대표로 있었다.
현재도 포지셔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반도체 소재 기업 대표 출신인데도 앱솔릭스나 ISC가 아닌 2차전지 동박 자회사 SK넥실리스 대표를 겸직한다. SKC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박동주 부사장 역시 SK넥실리스 CFO 겸직으로 함께한다. 성장성을 맡는 자회사 대신 막대한 적자를 내는 SK넥실릭스에 투톱이 등판한 것이다.
SKC 관계자는 이번 유증을 김 대표가 아닌 박 전 대표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데 대해 "김 대표는 지난해 11월 SKC 사장으로 부임했다"며 "이번 유증 의사결정은 이사회 숙의 등을 거쳐 진행된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반도체 관련 자회사 대신 2차전지 자회사 대표를 겸직하는 배경에는 "김 대표는 자회사 뿐아니라 SKC에도 오래 몸담으셨다"면서 "SKC와 투자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시다"고 설명했다.
인텔마저 신음하는 유리기판, SKC 변화 vs 삼성전기 진화
김 대표가 2차전지에 붙는 동안 유증 핵심 타깃인 앱솔릭스에는 인텔 출신 강지호 대표가 등판했다. 전과 달리 경영 리더십에 전문성을 강화한 조치다. 앞서 비전문가가 맡았던 앱솔릭스는 유리기판 양산 목표를 지난해 말로 공언했는데 지키지 못했다. 최근에는 상용화 시점에 대한 구체적 가이던스조차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는 이미 막대한 적자를 내는 SKC가 언제쯤 유리기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앞서 도전한 화학, 2차전지, 바이오, 태양광 사업처럼 가능성을 현실로 입증하지 못하고 접게 될 위험이 뒤따른다.
업계에서는 강 대표 친정인 글로벌 빅테크 인텔마저 유리기판 철수 등 여러 옵션을 고려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고정밀 TGV 가공 중 발생하는 균열 문제와 대면적 수율 확보 기술 장벽, 천문학적인 자본적 지출(CAPEX) 대비 수익 불확실성에 따른 우려가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 반도체 기업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초고난도 기술 시장에 매년 막대한 현금유출을 기록하며 빚더미(차입금)에 앉은 SKC가 주주 자금 6000억원을 베팅하는 셈이다.
이런 SKC 변화는 유리기판 예비 경쟁사인 삼성전기 진화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장덕현 삼성전기 대표는 SKC 대표들과 달리 정통 엔지니어 출신이다. 서울대와 미국 플로리다 대학에서 전자공학 학위를 취득했다.
2022년 대표 취임 후에는 적층형 세라믹 콘덴서(MLCC)와 패키지 기판이라는 기판 본업 뼈대를 키웠다. 현재 견고한 호황 사이클을 누리는 배경이다. 삼성전기 실적은 2024년 매출 10조2941억원, 영업익 7350억원에서 지난해 매출 11조3145억원, 영업익 9133억원으로 탁월한 성장세를 보였다.
주력인 MLCC와 패키지 기판 부문이 실적을 강력하게 견인한다는 평이 대체적이다. 재무 역시 현금성 자산이 차입금을 초과하는 순현금 상태일 정도로 기초 체력이 튼튼하다.
이는 유리기판처럼 불확실성이 높은 사업에 적극 투자할 수 있는 디딤대로 작용한다. 삼성전기는 구체적 상용화 시점 역시 2027년으로 제시한다. 화학·2차전지 투입 비용을 쥐어 짜 적자를 방어하며 주주 자금으로 성장해야 하는 SKC와 대조적이다.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