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나연 기자|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가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에 제동을 걸었다. 양호한 실적과 일부 지배구조 개선 조치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최 회장 개인의 이사회 잔류에는 선을 그은 것이다.
ISS는 9일 발간한 정기주총 의안분석 보고서를 통해 오는 24일 상정된 최 회장 재선임 안건에 반대를 권고했다. 이번 표 대결의 본질을 거버넌스로 규정했다. 대신 이사 5인 선임을 전제로 영풍·MBK파트너스 측 추천 후보 3인, 고려아연 이사회 추천 1인, 미국 크루서블JV 추천 1인 선임을 지지했다.
다만 ISS는 반대를 받은 후보들이 곧바로 부적절하다는 뜻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찬성을 권고한 5인 조합이 현 시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이사회 구성이라는 판단이라는 점도 함께 밝혔다. 고려아연 측이 ISS 보고서를 전면 부정적 평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실적 사상 최대치 기록, 하지만 거버넌스는 문제 소지
실제로 ISS는 현 경영진의 실적과 거버넌스 개선 노력은 분명히 인정했다. 최근 회계연도 기준 고려아연 매출은 16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7.6% 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큰 폭으로 개선되며 수익성도 제고됐다. 반대주주인 영풍·MBK 측이 제기한 경영 악화 우려를 핵심 판단 사유로 보지 않은 셈이다. 아울러 지난 1년간 이뤄진 주주환원 확대와 사외이사 비율 증가 등 지배구조 개선 조치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럼에도 ISS가 판단한 이번 주총의 핵심 쟁점은 거버넌스였다. 현 경영진이 통제권 방어 과정에서 문제 소지가 있는 관행에 연루됐다고 봤고, 최 회장을 자본 배분과 절차 감독 논란의 중심 인물로 판단했다. 실적과 별개로,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누적된 지배구조 리스크를 무겁게 봤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ISS가 거버넌스 훼손 사례로 지목한 사례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자사주 공개매수 직후의 유상증자 추진, 상호주를 활용한 영풍 의결권 제한, 미국 합작법인인 크루서블JV 투자 승인 과정의 절차 논란이다.
ISS가 첫 번째로 지목한 건은 2024년 단행된 대규모 자사주 공개매수와 유상증자다. 고려아연은 당시 대규모 차입을 동원해 프리미엄 가격으로 자사주를 공개매수했다. 직후 보통주 373만2650주를 주당 67만원에 발행하는 2조5000억원 규모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추진했다. 빚을 내어 회사 레버리지를 키운 직후 할인된 가격의 신주 발행에 나섰다가 시장 반발 속에 결국 철회한 것이다.
시장은 이 흐름을 단순한 자금 조달이 아니라 경영권 분쟁 대응 과정의 자본정책으로 해석해 왔다. 회사 자금과 주식 발행 수단이 짧은 기간 안에 연이어 동원되면서, 일반 주주가치보다 경영권 방어 논리가 앞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뒤따랐다. ISS도 이 사안을 거버넌스 논란의 핵심 사례 중 하나로 짚었다. 차입에 의존한 프리미엄 자사주 공개매수 뒤 할인 발행이 추진됐다는 점을 정리하며, 이번 사안의 핵심은 실적이 아니라 거버넌스라고 판단했다.
주총 직전 반복된 의결권 제한 시도 역시 주된 감점 요인으로 작용했다. 고려아연은 2025년 1월 임시주총과 3월 정기주총을 앞두고 해외 계열사를 활용해 지배구조를 바꿨다. 이를 상호주로 내세워 영풍의 의결권 행사 제한을 시도했다. 1월과 3월의 지분 이동에 대한 법적 판단은 엇갈렸다. 하지만 ISS는 이를 경영권 유지를 위해 주주권 행사 구조를 반복적으로 흔든 사례로 받아들였다.
1월과 3월 사안의 법적 결론은 같지 않았다. 1월 구조에는 법원이 제동을 걸었고, 3월 구조는 적법 판단이 나왔다. 다만 시장이 주목한 지점은 법리 판단의 차이보다, 주총을 앞둘 때마다 의결권 구조가 바뀌고 그 결과 최대주주의 표가 제한되는 장면이 반복됐다는 점이었다. 이는 경영권 방어 과정에서 의결권 제한 장치가 반복적으로 동원됐다는 시장의 우려와 맞닿아 있다.
2025년 12월 추진한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이사회 감독 논란의 최신 사례로 거론됐다. 고려아연은 미국 제련소 합작법인을 상대로 2조8500억원 규모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의결했다. 거래 완료 시 해당 합작법인은 고려아연 지분 10.59%를 확보하게 된다. 성장 투자라는 명분이 제시됐지만, 시장에서는 이 지분이 향후 표 대결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도 함께 주목했다.
논란의 초점은 거래 규모 자체가 아니었다. 실제 미국 제련소 사업을 수행하는 법인과 별도로 합작법인을 두고, 그 합작법인이 다시 고려아연 지분을 직접 확보하는 구조가 왜 필요한지를 두고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영풍·MBK 측은 이를 두고 단순한 해외 투자라기보다 지분 희석과 우호 지분 확보 효과를 동시에 노린 거래라고 주장해 왔다.
절차도 도마에 올랐다. 일부 이사들이 초대형 투자 안건의 구체 내용을 회의 당일 처음 접했고, 구조와 리스크를 면밀히 검토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공개적으로 제기됐다. 회사 측은 충분히 숙의했다고 반박했다. ISS 역시 대규모 자본 배분 과정에서 이사회 검토 시간과 절차적 공정성을 둘러싼 우려를 제기했다. 반대 측 주장 전체를 그대로 단정하지는 않았지만, TMC 투자와 프로젝트 크루서블 주식 배정이 충분치 않은 이사회 검토 시간 속에 이뤄졌다는 문제 제기를 소개했고, 자본 배분과 이사회 감독, 절차적 공정성을 핵심 쟁점으로 봤다.
공통점은 자본 배분과 주주권 구조 문제
세 사건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자사주 공개매수와 유상증자 추진은 자본 배분 문제였다. 영풍 의결권 제한 논란은 주주권 구조 문제였다.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대규모 투자 의사결정의 절차 문제였다. 성격은 달랐지만 ISS는 이 세 축을 모두 통제권 유지 과정에서 나타난 거버넌스 리스크로 읽은 것으로 보인다.
ISS는 이런 흐름을 최 회장의 실적과 철저히 분리했다. 실적 제고와 지배구조 개선 조치는 인정하지만, 이것만으로 재선임의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반대 권고는 경영 성과에 대한 전면 부정이라기보다, 최 회장 체제 아래 누적된 회사 자금 운용과 지분 관련 의사결정과 절차 감독 논란을 무겁게 본 조치로 읽힌다.
이에 따라 ISS는 오너 체제 연장 대신 이사회의 견제와 균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사 5인 선임을 전제로 영풍·MBK 측 후보 3인, 고려아연 이사회 측 후보 1인, 미국 크루서블JV 측 후보 1인 선임을 지지했다. 아울러 신주발행 시 이사의 충실의무 도입, 집행임원제도 도입, 주주총회 의장 변경, 비등기 명예회장에게 대표이사와 동일한 4배수 퇴직금 기준을 적용하는 정관 개정안에도 찬성 의견을 냈다.
결국 이번 권고는 최윤범 회장 개인의 재선임 여부를 넘어, 고려아연 이사회가 어떤 기준으로 정당성을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볼 수 있다. 실적이 유지되더라도 자본 배분과 주주권, 이사회 절차를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면 시장의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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