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심두보 기자| 3월 24일 고려아연의 제52기 정기주주총회가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다. 이번 정기주주총회(이하 주총)는 재무제표 승인을 넘는 의미를 지닌다. 주총은 현 경영진과 MBK 파트너스·영풍 연합 간의 경영권 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열리는 핵심 분수령이다.
제1호 의안인 재무제표 승인을 시작으로 정관 변경, 이사 선임,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등 굵직한 안건들이 줄지어 상정되어 있다. 특히 정관 변경 안건의 경우 회사 측과 주주제안 측이 팽팽하게 맞서며 다수의 의안을 올린 상태다. 양측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치열한 표 대결을 예고하고 있다.
지배구조 프레임 전쟁: 집행임원제도와 이사회 권한
이번 주총에서 자본시장이 가장 주목하는 핵심 쟁점은 제2-11호 의안으로 상정된 '집행임원제도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의 건이다. 이 안건은 와이피씨, 영풍, 한국기업투자홀딩스가 주주제안으로 상정한 것이다. 해당 정관이 통과될 경우, 고려아연의 경영 체제는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집행임원제도는 이사회가 담당하던 업무 집행 기능과 감독 기능을 분리하여, 업무 집행은 별도의 집행임원에게 맡기고 이사회는 감독에 전념하도록 하는 제도다. 주주제안 측은 개정안을 통해 대표집행임원이 회사를 대표하고 업무를 총괄하도록 규정하려 한다. 이는 이사회의 성격을 실무 중심에서 감독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이 제도의 도입 목적은 현 경영진의 실질적 권한을 축소하려는 데 있다. MBK·영풍 연합은 지분율 우위를 바탕으로 이사회를 장악한 뒤, 이 제도를 통해 현 최윤범 회장의 경영 권한을 박탈하려는 계산을 깔고 있다. 이사회가 대표집행임원을 선임 및 해임할 수 있게 되면, 이사회 과반을 차지한 측이 경영권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현 경영진 측은 이사회 내 독립이사 구성요건 명확화(제2-4호 의안)와 소수주주에 대한 보호 관련 정관 명문화(제2-1호 의안)를 추진하고 있다. 고려아연 경영진 측은 이사총수의 과반수를 독립이사로 구성하도록 정관에 못 박으려 한다. 이는 이사회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조함으로써 기관투자자들의 명분적 지지를 얻으려는 전략이다.
주주제안 측은 이사회 소집 통지 기간을 연장하는 정관 변경(제2-13호 의안)도 함께 상정했다. 기존 1일 전까지 통보하던 것을 3일 전으로 변경하여, 현 경영진이 기습적으로 이사회를 개최하여 졸속으로 안건을 처리하는 것을 방지하고 이사들의 충분한 안건 검토 시간을 확보하려는 견제 목적의 포석으로 풀이된다. 주총 의장을 이사회 의장으로 변경하려는 안건(제2-12호 의안) 역시 이사회 중심의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다.
양측의 이러한 정관 변경 시도는 단순한 규정 정비를 넘어선다. 누구의 정관 변경안이 통과되느냐에 따라 향후 이사회의 권한 범위와 경영진의 방어 논리가 뒤바뀔 수 있다.
신주발행과 주주환원, 방패와 창의 대결
경영권 방어 수단을 무력화하려는 공격과 이를 방어하려는 움직임은 신주발행 관련 정관 개정안에서도 드러난다.
주주제안 측은 제2-10호 의안으로 '신주발행 시 이사의 충실의무 도입'을 상정했다. 제3자 배정 신주발행 시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는 향후 고려아연 현 경영진이 우호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려는 강력한 견제장치다. 업계에서는 이 조항이 도입될 경우, 긴급한 자금 조달이나 전략적 제휴를 위한 신주발행이 상당한 제약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 측은 이에 맞서 제2-5호 의안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도입' 안건을 상정하며 상법 개정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사는 직무 수행 시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공평하게 대우해야 함을 일반 조항으로 신설했다. 특정 상황에 국한하지 않고 전체적인 ESG 경영 및 주주 친화 정책의 일환으로 이 안건을 내세운 것이다.
주주환원 정책을 둘러싼 대결도 치열하다. 주주제안 측은 발행주식 액면분할(제2-9호 의안)을 통해 주당 금액을 5000원에서 500원으로 낮출 것을 요구했다. 유통 주식 수를 늘려 소액주주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주가 부양을 도모하겠다는 명분이다. 이는 단기적인 주주친화책을 선호하는 개인투자자들의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적 카드다.
회사 측은 분기배당 관련 정관 변경(제2-6호 의안) 및 제52기 이익배당 승인을 통해 주주환원을 약속하고 있다. 현행 이익배당 정책의 안정성을 강조하며, 배당 재원 확보를 위해 임의적립금 약 9176억 원을 미처분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하는 안건(제1-3-1호 의안)도 상정했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배당 수익을 원하는 기관투자자들을 향한 메시지다.
이사회 장악을 위한 집중투표제 수싸움
이번 주주총회의 하이라이트는 제3호 의안인 '집중투표에 의한 이사 선임의 건'이다. 집중투표제는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주주에게 의결권을 부여하고, 이를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지분율이 팽팽한 고려아연의 상황에서는 이사 한 명의 당락이 경영권의 향배를 가를 수 있다.
주주제안 측 간에도 미묘한 수싸움이 존재한다. 유미개발은 이사 5인 선임(제3-1-1호 의안)을 제안했고, 와이피씨 등 연합 측은 이사 6인 선임(제3-1-2호 의안)을 제안했다. 이 안건들은 일괄표결 후 다득표 의안이 가결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사 수가 적을수록 집중투표의 분산 효과가 줄어들어 소수 지분권자에게 유리해질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변수가 발생했다. MBK·영풍 연합이 사외이사 후보로 제안했던 오영 후보가 일신상의 사유로 자진 사퇴함에 따라 해당 안건(제3-2-6호 및 제3-3-6호)이 자동 폐기된 것이다. 이는 표면상 개인적 사유이지만, 자본시장 일각에서는 철저히 계산된 전략적 선택으로 분석한다.
집중투표제 하에서 후보 수가 줄어들면, 자신들이 보유한 표를 나머지 후보인 박병욱, 최연석, 최병일, 이선숙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아군 이사의 당선 확률을 극대화하려는 궤도 수정이다. 한 명이라도 확실하게 이사회에 진입시키는 것이 유리하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회사 측은 사내이사로 최윤범 회장을 재선임하고, 사외이사로 황덕남 후보를 추천하여 방어에 나섰다. 최윤범 회장은 SMC 경영정상화 등 글로벌 사업 경영 능력을 내세우고 있으며, 황덕남 후보는 법률 전문가로서의 독립성을 강조한다. 또한 주주제안 측인 Crucible JV LLC는 기타비상무이사로 월터 필드 맥랠런(Walter Field McLallen)을 추천하며 지지세를 규합하고 있다.
각 후보자들의 직무수행 계획서를 보면 향후 이사회의 치열한 논쟁을 예고한다. 회사 측 황덕남 후보는 이사의 충실의무 등 법적 의무 엄수를 강조하며 적법성 위주의 감독을 약속했다. 주주제안 측 최병일 후보는 이사회 내 합리적 의사결정과 글로벌 규범 변화에 대한 견제를, 이선숙 후보는 투명한 이사회 운영을 각각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후보자마다 내세우는 프레임이 뚜렷하게 갈리는 상황이다. 글로벌 기관투자자들과 소액주주들이 과연 '경영 안정성'과 '지배구조 쇄신' 중 어느 쪽의 명분에 손을 들어줄지가 관건이다. 집중투표제의 특성상 외국인 투자자들의 표심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별결의 안건 통과는 어려울 듯…인적 구성 싸움에 주목
상법상 정관 변경은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이 필요한 특별결의 사항이다. 현재 양측의 지분율이 박빙인 상황을 고려할 때, 어느 한쪽이 단독으로 3분의 2를 확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이번 주총에 상정된 양측의 정관 변경 안건들인 집행임원제도나 신주발행 충실의무 등은 모두 부결될 확률이 상당하다. 특별결의 안건들이 줄부결될 경우, 결국 승부는 보통결의 사항인 이사 선임과 감사위원 선임 등 인적 구성 싸움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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