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대 유물된 파타고니아,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브랜드는? [글로벌마켓 디코드]

글로벌 |심두보 기자|입력

실리콘밸리의 상징 파타고니아가 이제는 올드머니 이미지로 변모 아크테릭스, 온, 호카, 뷰오리 등 실용적 기능주의 브랜드가 대세

|스마트투데이=심두보 기자| 실리콘밸리에서 '파타고니아(Patagonia)'가 가졌던 상징성은 단순한 의류를 넘어 "나는 환경을 생각하며, 실용적이고, 성공한 테크 인사이더다"라는 일종의 사회적 신호였다. 그리고 이제 파타고니아는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 현재 파타고니아 조끼는 너무 대중화되어 '올드머니(Old Money)' 혹은 '레거시 금융'의 느낌을 주고 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매끈한 고어텍스 질감과 시조새 로고가 선명한 아크테릭스(Arc'teryx)다.

과거 파타고니아가 ‘환경 보호’와 ‘도덕적 자본주의’를 상징했다면, 2025년의 새로운 유니폼들은 ‘압도적 성능’과 ‘기술적 우월성’을 대변한다. 아크테릭스는 이제 실리콘밸리에서 단순한 아웃도어 브랜드 그 이상이다. 이들은 ‘베타(Beta)’와 ‘알파(Alpha)’ 시리즈를 통해 엔지니어들의 ‘스펙 지향적’ 사고방식을 정조준했다. 800달러를 상회하는 가격표는 일종의 필터링 기제로 작동한다. 누구나 입을 수 있지만, 아무나 입지는 않는다는 ‘폐쇄적 유대감’을 제공하는 것이다.

출처=아크테릭스 홈페이지
출처=아크테릭스 홈페이지

하지만 아크테릭스의 독주는 역설적으로 그들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2025년 하반기 들어 대형 유니콘 기업들이 직원 복지로 아크테릭스 재킷을 대량 배포하면서, 트렌드세터들 사이에서는 벌써 “아크테릭스도 너무 흔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이 틈을 파고드는 것이 바로 ‘넥스트 파타고니아’의 진짜 주인공들이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브랜드는 일본의 골드윈(Goldwin)이다. 골드윈은 아크테릭스의 기술력을 갖췄으면서도 디자인은 훨씬 절제되어 있다. '아는 사람만 알아보는 기술력'이야말로 2025년 말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조용한 럭셔리’의 정석이다. 여기에 북유럽의 66 노스(66 North)가 가세했다. 아이슬란드의 혹독한 환경을 견뎌온 이 브랜드는 ‘오리지널리티’를 중시하는 창업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다.

출처=온 홈페이지
출처=온 홈페이지

신발 시장의 지각 변동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실리콘밸리의 발끝을 책임졌던 올버즈(Allbirds)의 빈자리는 온(On)과 호카(Hoka)가 완벽히 양분했다. 특히 스위스 엔지니어링 기반의 ‘온(On)’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 구멍 뚫린 밑창(CloudTec)은 그 자체로 기술적 대화의 소재가 된다.

의류 부문에서 뷰오리(Vuori)의 부상도 눈여겨봐야 한다. 파타고니아가 산으로 향했다면, 뷰오리는 하이브리드 근무가 정착된 실리콘밸리의 ‘거실과 오피스’ 사이를 공략했다. 뷰오리의 조거 팬츠는 줌(Zoom) 미팅과 요가 스튜디오, 그리고 샌드 힐 로드의 벤처캐피털 미팅까지 아우르는 ‘포스트 팬데믹 유니폼’으로 안착했다.

이러한 브랜드 이동의 배경에는 ‘실용적 기능주의’로의 회귀가 있다. 2024년까지의 AI 열풍이 하이프(Hype)였다면, 2025년은 실질적인 ‘수익성’을 증명해야 하는 시기다. 패션 역시 ‘말뿐인 철학’보다는 당장 내 몸을 보호하고 효율을 높여주는 ‘기능’에 돈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아크테릭스의 하드셸 + 뷰오리의 팬츠 + 온의 운동화’라는 정교한 조합을 통해 자신의 취향과 전문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는 마치 수십 개의 오픈소스 라이브러리를 조합해 최적의 코드를 짜는 개발자의 문법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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