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종현 기자| “임차료를 내고 화분을 팔며 생계를 꾸려가던 삶을 한 순간에 무너뜨렸습니다. 평소같이 하루를 준비하던 때에 갑자기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고용한 용역들이 들이닥쳐 팔던 화분과 묘목들을 부수고 물도 못 주게 해 고사시켰습니다. 통탄할 따름입니다.”
무소속철거민연합회 지부장 최모씨는 기자와의 면담에서 한탄을 쏟아냈다. LH로 인해 장사용으로 팔던 물건들이 전부 파괴돼 지금도 경제적 재기를 하고 있지 못한다며 70이 넘은 나이에 집회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재산상 손실에 대한 보상금도 전체의 3분의 1이 되지 않는 2000여 만원만 지급했다며 LH를 규탄했다.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 앞 전쟁기념관 광장에서 최모씨가 속한 무소속철거민연합회가 LH를 규탄하는 집회를 신고했다. 오후 2시 열릴 예정이던 집회는 최모씨의 병가상 이유로 열리지 않았지만, 용산 집회를 담당하는 경찰 관계자로부터 최모씨의 연락처를 전달받아 그를 만날 수 있었다.

◆ LH 규탄 집회 위해 상경한 무소속철거민연합회 지부장…”대통령실에 서한 전달할 것”
최모씨는 자신이 몰고 온 차량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를 위해 경기 외곽지역에서 차를 끌고 왔다며, 한 사람 눕기도 비좁은 차 안 공간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뒷칸 눕는 공간을 뒤적이던 최모씨는 자신이 LH를 규탄하는 이유가 담긴 서류뭉치들을 보여줬다. 그 중에는 대통령실에 전달할 서한으로 보이는 문서도 담겨 있었다.
여러 서류 중 가장 먼저 보여준 건 대한주택공사(현 LH) 경기지역본부 수원호매실사업단 명의의 ‘수원호매실 택지개발 사업지구 보상을 위한 정보제공 협조 통보요청서’였다. 해당 요청서에는 ‘LH에서 시행 중인 수원호매실 택지개발 사업지구(호매실동 476, 477번지 일원)에 대한 보상을 위해 토지상의 화훼영업용 비닐하우스 소유자를 파악하고자 하니 귀하께서 건립·매각한 비닐하우스의 매입자 연락처를 통보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재개발을 위해 파괴한 묘목과 화분을 보상하기 위한 절차상 서류였다.
이후 LH는 최모씨에게 공탁금 형식으로 보상금을 지급했다. 2007년 10월 9일 수리가 이뤄졌다고 나온 서류에는 LH가 최모씨에게 공탁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최모씨는 공탁금으로 전체 피해액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2000여 만원만 지급됐다고 주장했다. 최모씨는 LH 고용 용역들이 파괴한 묘목과 화분 값만 7000만 원이 넘는다고 주장한다.

최모씨는 합법적으로 부동산 계약을 맺고 월세를 내며 장사를 했다며 부동산임대차계약서와 전월세 계약서를 보여줬다. 그럼에도 LH가 재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장사하던 물건들을 부수고 턱없이 적은 금액을 보상금으로 지급했다며 집회는 물론 LH를 규탄하는 서한을 대통령실에 보낼 계획을 밝혔다.
수원 호매실지구 택지개발은 LH가 2000년대 중반 시행자로 추진한 대규모 공공택지 개발 사업이다. 경기 수원 권선구 호매실·금곡동 일원에 2만 400세대의 신축 아파트를 지어 5만 5000명의 인구를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17년에는 호반베르디움 아파트가 입주했고, 2018년에는 한양수자인, 2019년에는 호매실 힐스테이트와 금호어울림 에듀포레가 입주 절차를 밟았다.
대규모 사업인 만큼 진행 과정에서 잡음도 많았다. 기존 개발 부지에서 사업을 하던 화훼농가 업주들은 “LH가 협의 과정에서 ‘자진철거에 불응하는 화원’에 용역경비를 배치해 업주의 출입을 막아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던 묘목이 고사했다”며 LH 경기본부를 경찰에 고소했다. 최모씨를 비롯한 화원 업주들은 LH가 화원 일대 토지를 매입하기 전에도 토지주에게 임대료를 내면서 화원을 운영했기에 묘목과 비닐하우스 시설물에 대한 지상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 LH, 보상 완료됐단 입장…”불법 설치물 보상 안 한 것”
최모씨 사안에 대해 LH는 불법 설치물 외 묘목 등 지상권이 있는 소유물에 대해선 보상을 완료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LH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모씨가 주장하는 ‘7000만 원’은 불법 설치물까지 포함된 금액”이라며 “묘목, 화분 등 법적인 권리가 있는 물건들에 대해선 공탁금 등 여러 방식을 통해 보상 절차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최모씨와 소통 여부에 대해선 “2007년 수원호매실 개발이 이뤄진 후에도 최모씨와 여러 차례 접촉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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