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인이 물려받는 최소한의 몫 '유류분'이 변화를 맞았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4월 유류분 제도에서 형제와 자매의 유류분을 위헌으로, 유류분 상실 사유를 정하지 않은 것을 헌법불합치로 결론 냈다.
한국 상속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은행권은 발빠르게 상속신탁 사업을 확대하면서 시니어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 유류분 제도 변화 속에 상속 서비스 수요도 커질 거란 선구안이다. 실제로 상속신탁 시장의 일부인 유언대용신탁 시장은 매년 1조원씩 성장하고 있다.
◇ 하나-신한, 경쟁적으로 시니어 라운지 열어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4월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이 경쟁적으로 상속에 특화된 지점을 선보였다.
지난 2010년 가장 먼저 유언대용신탁을 출시한 하나은행은 금융권 최초로 유산정리 서비스를 시작했다. 일본 신탁 전문은행 스미트러스트와 손잡고 병원부터 금융, 법률, 세무를 아우르는 통합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삼성동 플레이스원빌딩에 시니어라운지도 열었다.
신한은행은 작년에 일산과 노원에 연금라운지를 연 데 이어 지난 4월 대한상공회의소 9층에 상속에 특화된 신탁라운지를 열었다. IBK기업은행은 이달 들어 유언대용신탁 신상품을 출시했다.
이에 앞서 KB국민은행은 지난 2019년 'KB위대한유산' 신탁을 선보이면서 골드바 증여·상속, 유언대용신탁, 기부신탁 등 다양한 신탁상품을 내놨다. 우리은행도 지난 2022년 유언공증서 보관서비스를 도입했다.
증권사와 보험사도 예외는 아니다. 신영증권도 최근 TV 광고를 통해서 자손의 생애주기를 아우르는 가족 신탁 상품군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KB국민은행과 같은 그룹사인 KB증권은 지난 3월 법률 가이드 성격의 상속테마북을 발간했다. 보험사도 사망보험금 상속에 대한 신탁을 제공할 수 있지만, 보험연구원은 작년 10월 보고서에서 다른 금융권에 비해 보험사들이 무관심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은행 산하 연구소들도 상속과 관련된 연구보고서를 잇따라 내놨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지난 4월 19일 '일본 대상속시대 도래와 금융회사의 대응' 보고서를 펴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도 가장 최근에(24일) '고령화 시대 필수품, 상속신탁 - 일본 상속신탁 비즈니스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를 선보였다. KB경영연구소는 작년에 KB골든라이프 보고서를 발표했다.
◇ 매년 1조원씩 크는 시장..유언대용신탁 수탁 쑥쑥
은행권이 상속신탁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성 때문이다. 현재까지 상속신탁 주요상품은 유언, 유언대용, 유산정리가 있다. 이 중 일부인 유언대용신탁의 5대 은행 수탁규모개 매년 1조원씩 성장하고 있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유언대용신탁 수탁 규모는 지난 2021년 1조3400억원으로, 처음 1조원대를 돌파한 후 매년 1조원씩 성장했다. 2022년 2조500억원에서 작년 3조1100억원으로 커졌다.
박지홍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일본(1947~1974년)에 비해 한국 베이비부머 세대(1955~1974년)가 젊어 아직까지 상속 시장의 발전 속도가 느린 편이나 선진국에 비해 초고령화 도달 속도가 빨라 향후 관련 비즈니스 성장세가 클 것"이라며 "한국도 10년 안에 대상속시대(大相續時代)가 본격적으로 도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해 일본 신탁시장 규모는 1580조엔으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경3764조원이다. 반면 작년 한국 신탁시장 규모는 1311조원에 불과하다.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67%인데 반해, 한국은 GDP의 57% 수준이다.
이경훈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과 손준범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금융회사가 5~7년 안에 급격한 성장이 예상되는 상속신탁 시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최소 가입금액이 5천만~10억원으로 다소 높게 형성됐지만 상속신탁 문화가 대중화되면 보급형 상품 출시도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몰론 한계도 있다. 상속인끼리 분쟁이 생기면 신탁은행이 강제 집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소송으로 번진 재벌가 형제의 난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다만 고인의 뜻을 신탁계약서로 명문화했기 때문에 판결에 반영될 여지가 크다. 반려동물을 맡기거나 치매에 대비해 미리 상속계획을 짤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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