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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GPU 쌓아두고도 전기 없어 발동동…K-전력기기 43조 잭팟 터졌다

공장서 조립하고 현장서 발전…전력 확보 시간 단축 경쟁 비트코인 채굴시설도 AI 데이터센터로 전환…기존 인프라 재활용 국내 전력기기 3사 수주잔고 43조원…변압기 넘어 차단기·배전반까지 수요 확산

산업 |김나연 기자 | 입력 2026. 09. 21. 08:58
사진=삼성전기 공식 웹사이트
사진=삼성전기 공식 웹사이트

|스마트투데이=김나연 기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경쟁의 병목이 반도체를 넘어 전력 인프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 데이터센터 설비 규모는 2025년 52GW에서 2030년 약 100GW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지만 송전망과 변압기 공급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전력망 완성을 기다리기 어려워지면서 데이터센터 구축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데이터센터 설비를 공장에서 모듈 형태로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거나, 중앙 전력망을 기다리는 대신 부지에 발전설비를 직접 설치하는 방식이다. 이미 대규모 전력 인프라를 확보한 비트코인 채굴시설을 AI 데이터센터로 전환하는 움직임도 같은 맥락이다.

투자시장에서도 관심이 GPU와 메모리에서 전력·냉각 등 데이터센터의 물리적 인프라로 넓어지고 있다. 키움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과거 AI 투자가 엔비디아와 일부 빅테크에 집중됐다면 현재는 메모리, 네트워크, 전력, 냉각, MLCC 등 AI 인프라 구축 과정의 물리적 제약이 새로운 투자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돈은 있는데 전력이 늦는다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2023년 154TWh에서 2025년 224TWh로 45% 늘었고 2030년에는 426TWh에 이를 전망이다. 24시간 가동되는 데이터센터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면서 전체 전력수요뿐 아니라 지역별 피크부하까지 동시에 높아지고 있다.

반면 전력망 확충 속도는 수요 증가를 따라가지 못한다. 미국 전력용 변압기의 평균 납기는 2022년 약 85주에서 2025년 상반기 약 133주로 늘었다. 발전기 승압용 변압기는 같은 기간 48주에서 145주까지 길어졌다. 미국의 345kV 이상 신규 송전선 건설도 2020~2025년 연평균 514마일에 그쳐 2010~2014년 연평균 1781마일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계통연결 대기 물량도 쌓이고 있다. 2025년 말 미국에서 계통연결을 기다리는 발전·저장 프로젝트는 약 8200개, 2060GW에 달했다. 2020년 962GW에서 두 배 이상 증가한 규모다. 전력 유틸리티 업체가 투자를 늘려도 실제 발전원과 송전망, 데이터센터를 연결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구조다.

전력기기 증설만으로 단기간에 문제를 풀기도 어렵다. 대형 변압기는 고객별 전압과 용량, 설치환경에 맞춰 제작하는 주문형 제품이다. 신규 공장을 지어도 숙련공 채용과 훈련, 고객 인증, 초기 양산 검증을 거쳐야 한다. 초고압 변압기에 사용되는 특수 부싱의 납기도 135~145주에 이른다.

공장서 조립하고 발전소도 직접…전력 확보 시간 줄이기

전력 병목을 피하기 위한 첫 번째 방식은 모듈러 데이터센터다. 데이터센터를 현장에서 처음부터 건설하는 대신 전력·냉각·서버 관련 설비를 공장에서 모듈 단위로 제작한 뒤 현장으로 옮겨 조립한다. 현장 공정을 줄이고 표준화해 데이터센터 가동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자체 발전이다. 전력회사의 송전망과 변전설비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데이터센터 부지에 발전설비를 직접 설치한다. 필요한 전력의 일부 또는 전부를 현장에서 확보해 계통연결 지연에 따른 영향을 줄인다. 미국에서는 발전·저장 프로젝트의 계통연결 대기용량이 2000GW를 넘어서는 등 전력망 병목이 누적되고 있다. 이에 데이터센터 사업자들도 실제 전력을 사용할 수 있는 시점을 앞당기기 위해 자체 발전 등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세 번째는 이미 전력 인프라를 확보한 시설을 AI 데이터센터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비트코인 채굴시설은 대규모 전력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사업 특성상 전력계약과 변전설비, 토지 등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요한 기반을 갖춘 경우가 많다. 신규 부지를 확보해 전력 연결부터 다시 시작하는 대신 기존 인프라를 AI 컴퓨팅용으로 돌려 구축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실제 비트코인 채굴업체 코어사이언티픽은 기존 미국 내 시설을 AI·고성능컴퓨팅(HPC)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최근 미국 시장에서 네오클라우드와 데이터센터 공급망을 따로 묶는 투자상품이 잇따라 등장하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키움증권이 정리한 최근 신규 ETF 가운데는 반도체뿐 아니라 전력·냉각·발전원까지 데이터센터 공급망 전체를 묶거나, 데이터센터 전력관리와 냉각에 집중하는 상품이 포함됐다.

미국 전력기기 부족…한국이 공급망 메운다

미국의 전력 인프라 투자 확대는 국내 전력기기 업체의 수주 증가를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은 1만kVA 이상 대형 변압기의 수입의존도가 2022년 이후 90%를 웃돈다. 초고압 절연설계와 열관리, 고전압 시험설비가 필요한 데다 숙련인력 확보까지 필요해 미국 내 생산기반을 단기간에 늘리기 어렵다.

한국의 미국향 전력기기 수출은 2020~2025년 연평균 14.1% 증가했다. 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 LS일렉트릭 등 국내 주요 3사의 전체 수주잔고는 2021년 말 5조7000억원에서 올해 6월 말 약 43조원으로 늘었다. 변압기 수출단가도 2021년 4분기 톤당 7777달러에서 올해 2분기 1만2674달러로 상승했다.

효성중공업은 765kV급 변압기와 800kV급 차단기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2019년 인수한 멤피스 공장은 현재 미국 내 유일한 765kV급 변압기 생산거점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앨라배마 제2공장을 통해 초고압 변압기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제2공장이 완공되면 현지 초고압 변압기 생산능력이 약 50% 늘어나고 765kV급 제품 생산과 시험 능력도 확보할 예정이다.

LS일렉트릭은 배전설비와 초고압 송전 양쪽으로 사업을 넓히고 있다. 미국 유타를 중심으로 배전반·스위치기어 생산거점을 확대하는 한편 지난 8월 GE버노바와 전압형 초고압직류송전(VSC-HVDC)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체결했다. 자체 HVDC용 변압기 생산역량과 GE버노바의 변환기술을 결합해 초고압 송전 시장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하는 전략이다.

변압기 다음은 차단기·배전반

수혜 범위는 초고압 변압기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데이터센터는 외부에서 대규모 전력을 끌어오는 초고압 설비뿐 아니라 내부에서 전압을 낮추고 전력을 분배하는 변압·보호·제어·배전설비까지 필요하다. 데이터센터가 늘어날수록 송전단에서 시작된 전력기기 수요가 차단기와 배전반 등 하위 제품군으로 확산되는 구조다.

HD현대일렉트릭은 청주 배전캠퍼스를 구축해 중저압 차단기 생산능력을 연 500만대에서 850만대로 늘렸다. 효성중공업은 미국 전력 인프라 서비스 기업 콴타 계열사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미국 현지에서 72.5~800kV급 차단기를 생산할 예정이다. LS일렉트릭은 약 2500억원을 투자해 미국 유타 배전반 생산거점을 증설하고 2027년부터 연간 5000억원 규모의 생산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AI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이 택하는 방식은 모듈화와 현장 발전, 기존 전력 인프라 재활용 등으로 나뉘지만 공통점은 전력을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시점을 앞당기는 데 있다. 어떤 방식을 선택하더라도 데이터센터까지 전력을 끌어오고 내부에서 변환·분배하기 위한 변압기와 차단기, 배전반은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전력망과 전력기기 공급은 단기간에 따라가기 어렵다”며 “초고압 변압기뿐 아니라 차단기와 배전반 등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전반으로 수요가 확산되는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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