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나연 기자|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를 진행하며 경영 정상화의 핵심 전략으로 미국 식료품점 '트레이더 조(Trader Joe's)' 모델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채택했다. 이는 기존 대형마트가 고수해 온 대규모 점포와 방대한 상품 구색 중심의 사업 방식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현재의 재무 구조로는 다품종 대량 판매 방식의 전통적 유통 모델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벤치마킹하는 트레이더 조는 상장사가 아닌 비공개 가족 기업 형태로 운영된다. 이들은 단기적인 분기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비용을 통제하고 수익성을 높이는 독자적인 사업 구조를 구축했다. 매출이나 영업이익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으나, 매장 규모 대비 단위 면적당 매출 효율이 미국 내 경쟁 유통사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홈플러스 역시 이러한 고효율 구조를 이식해 재무적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계획이다.
고효율 중심의 사업 구조…선택과 집중 전략
트레이더 조 비즈니스 모델의 가장 큰 특징은 취급 품목(SKU)의 극단적인 제한이다. 일반적인 미국 대형마트가 5만 개 이상의 품목을 진열하는 것과 달리, 트레이더 조는 약 4000개의 핵심 품목만을 매장에 배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품목 수의 제한은 공급망 관리를 단순화하고 재고 회전율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소비자에게는 선택의 피로도를 낮추고 회사 측면에서는 제한된 매장 공간의 활용도를 극대화할 수 있다.
매장에 진열된 상품의 80% 이상은 자사 상표를 부착한 자체 브랜드(PB) 상품으로 채워진다. 유명 제조사 브랜드를 유통하는 대신 독자적인 상품을 기획함으로써 중간 유통 단계에서 발생하는 마진을 회사 내부로 흡수한다. 이를 위해 제조사와 직접 계약을 맺고 비밀 유지 조항을 두어 상품을 소싱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대형 제조사의 생산 인프라를 활용해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원가를 낮추는 유통 구조를 확립했다.
가격 정책 측면에서는 상시 저가 정책을 고수하며 마케팅 비용을 철저하게 통제한다. 주간 할인 행사나 쿠폰 발행, 로열티 프로그램 운영을 전면 배제하여 관련 시스템 유지와 홍보에 들어가는 비용을 삭감했다. 일관된 가격을 제공함으로써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하고 가격 변동에 따른 재고 관리 리스크를 최소화한다. 이는 판촉비를 억제하여 최종 판매 가격을 일반 브랜드 대비 낮게 책정하는 기반이 된다.

매장 규모 역시 일반적인 대형 유통업체나 창고형 할인점과 비교해 현저히 작게 운영한다. 소형 매장은 도심 내 입점 접근성을 높이고 임대료와 유지보수 비용 등 부동산 관련 고정비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적은 면적에 선별된 품목만을 밀도 있게 진열하여 단위 면적당 매출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한다. 결과적으로 매장 자체가 하나의 효율적인 물류 및 오프라인 판매 거점으로 기능하게 된다.
취급 품목은 적지만 냉동식품이나 독자적인 소스류 등 대체 불가능한 특화 상품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상품 구성은 소비자가 다른 대형마트나 이커머스 대신 해당 매장을 직접 방문해야만 하는 목적을 제공한다. 온라인 배송 서비스를 일절 운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매장으로 고객을 유인하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오프라인 유통의 본질적인 경쟁력을 자체 상품 기획력에서 확보한 셈이다.
자본 효율성 확보와 수익성 방어를 위한 선택
회생절차에 들어간 홈플러스가 이 모델을 도입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운전자본 부담의 즉각적인 축소다. 기존 다품종 구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류센터와 매장에 막대한 규모의 재고를 쌓아두어야 한다. 품목 수를 대폭 압축하면 재고 매입에 묶여 있던 대규모 자금이 단기간에 유동화된다. 현금흐름 개선이 시급한 기업 입장에서는 자금 경색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구조 조정 방안이다.
자체 브랜드 중심의 상품 재편은 유통 마진의 내재화와 수익성 방어를 가능하게 한다. 일반 제조업체의 브랜드를 단순히 매입해 판매하는 방식으로는 영업이익률을 개선하는 데 구조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자체 기획 상품 비중을 극대화하면 유통 마진이 절감되어 전체 매출액 규모가 감소하더라도 실제 기업에 유입되는 이익률은 높아질 수 있다.
또 오프라인 매장의 운영 구조를 소형화하고 고밀도화하여 막대한 고정비를 감축할 수 있다. 다품종 대량 전시를 위해 유지해 온 대규모 점포 면적은 회생 과정에서 매각이나 임대 축소의 대상이 된다. 매장 면적을 줄이면 임대료, 냉난방비, 조명 등 매월 고정적으로 발생하는 오프라인 운영 비용이 대폭 감소한다. 고정 비용을 통제하면서 핵심 상품 위주로 판매를 집중해 평당 매출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
판촉과 마케팅에 소모되는 판매관리비 통제 역시 재무 개선을 위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할 과정이다. 전단지 제작, 한정 할인, 포인트 적립 등 전통적인 마트의 마케팅 활동은 상당한 예산을 수반한다. 상시 저가 정책으로 가격 운영 방식을 전환하면 이러한 프로모션 관련 비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매장 내 인력 운영의 효율성도 높아져 전사적인 비용 구조가 가벼워지는 결과를 낳는다.
투자은행 업계의 한 관계자는 "트레이더 조 모델은 사실 홈플러스가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벤치마킹 대상으로 보인다"며 "트레이더 조의 성공 사례는 홈플러스 회생에 있어 한줄기 빛과 같다"고 밝혔다. 다만 홈플러스가 실제 트레이더 조 모델을 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그는 "현재 홈플러스는 트레이더 조와 같은 협상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참고 사례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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