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흔들리는 재건축 설계공모, 이대로 괜찮은가

오피니언 |김종현 기자 | 입력 2026. 07. 07. 09:00

|스마트투데이=김종현 기자| 최근 몇 년 사이 서울 강남권과 한강변을 중심으로 대규모 재건축 사업이 잇따라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목동에 이어 송파, 대치, 개포 등 굵직한 단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설계공모와 시공사 선정 절차를 밟으면서, 정비사업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띠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정비계획과 심의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설계안이 버젓이 조합 총회를 통과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사업 지연과 조합원 갈등, 나아가 도시 전체의 주거 형평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이 현상을 더 이상 개별 사업장의 해프닝으로 넘길 수는 없다.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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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심의 기준, 왜 만들어졌나

서울시는 단지내·외 과도한 단차를 지양하고 주변 지형과 어울리는 지반층을 계획하도록 하고, 2022년 재건축·재개발 단지에서 임대주택을 특정 동이나 저층부에 몰아넣는 방식을 금지하는 이른바 '소셜믹스 원칙'을 통합심의 기준에 반영했다. 조합원 세대와 일반분양 세대, 임대 세대를 분리하거나 커뮤니티 시설 이용을 제한하는 설계가 결과적으로 입주민 간 차별을 조장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조치다. 이 기준을 지키지 않을 경우 통합심의에서 보류 판정을 받아 인허가 자체가 지연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설계사 입장에서는 공모 단계에서부터 이를 전제로 계획을 짜야 한다.

문제는 설계공모 단계에서 조합원세대, 일반분양세대와 임대세대를 따로 분리하거나 진입도로와 레벨차를 둔 과도한 인공데크를 조성해 데크 하부로 공공보행통로를 분리하는 등의 계획으로 조합원들의 표심을 얻은 안이, 정작 심의 진행시에는 지자체 협의의견 및 심의기준에 따라 반려되거나 대폭 축소되는 사례가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정비계획을 벗어난 설계, 사업 지연으로 돌아온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지난해 H 설계사에서 당선된 이촌동 한 아파트 재건축 사업현장에서 벌어졌다. 현상공모시에는 한강변 첫주동 49층 적용, 과도한 지상데크층 계획, 북측 주거지 및 한 주동안에서의 일조채광 무시 등 기본적인 법규를 지키지 않아 문제가 되었지만, 실제 인허가 진행 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해당 사업은 한강변 첫주동 20층 이하 분동, 지상데크층 건폐율에 맞게 축소, 북측 주거지에 대한 일조 준수 및 한 동에서 마주보는 채광창 삭제 등 초기 계획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

또한, 지난해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 3지구 공모시 조합은 설계공모 당선작을 선정해 총회까지 열었지만, 성동구청은 당선작이 정비계획상 허용된 초고층 랜드마크 동 수 기준을 초과했다고 보고 설계자 선정 자체를 취소하도록 명령했다. 조합이 절차를 강행하려 하자 구청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위반을 근거로 고발까지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전달했고, 결국 조합은 설계공모를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애초 예정보다 시공사 선정 일정이 밀리면서 금융비용과 공사비 상승분이 고스란히 조합원 부담으로 돌아가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정비계획과 심의 기준을 벗어난 설계는 아무리 조합원 투표에서 높은 지지를 얻더라도 결국 인허가 단계에서 발목을 잡히고, 그 손실은 고스란히 조합원들에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설계사들은 공모 단계에서 화려하고 파격적인 제안으로 조합원의 표심을 얻는 데 집중하고, 정작 실현 가능성과 규정 준수 여부는 뒷전으로 미루는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다.

왜 반복되는가 —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

이런 사례가 나올 때마다 특정 설계사의 도덕성이나 성실성을 탓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심의 기준을 몰라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런 지적이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심의 기준을 잘 알면서도 당장의 설계공모 당선을 위해 '조합원 표심을 얻는 안'에 집중하는 관행이 있다면, 이는 실현 가능성과 규정 준수라는 본분을 뒤로 미룬 도덕적 해이에 가깝다. 재건축 설계공모의 판을 흐리는 이런 관행에는 합당한 대가가 따라야, 같은 문제가 다른 단지에서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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