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나연, 심두보 기자| 정부 주도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5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한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의 행보를 두고 자본시장의 시선은 자금의 용처로 쏠린다. 이미 수천억원대 유동성을 보유한 데다 지속적인 기술수출로 수익을 올리고 있음에도 대규모 자금을 추가 조달했기 때문이다. 이번 조달 자금이 전액 신약 연구개발 운영자금으로 배정됐는 점에서 기존 기술이전 모델의 협상력을 높이고 자체 개발 체력을 다지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5000억의 용처는 단 하나, 임상·연구개발비
리가켐바이오는 이번 조달을 전환사채(CB) 1700억원과 전환우선주(CPS) 약 3300억원으로 나누어 설계했다. 두 자산 모두 운영자금으로 분류됐으며 시설자금, 영업양수자금, 채무상환자금, 타법인 증권 취득자금 등에는 자금을 배정하지 않았다.
자금 사용 계획은 연도별로 구체화되어 있다. 전환사채로 조달한 1700억원은 항체약물접합체(ADC)와 면역항암제 등 신약 연구개발비로 쓰인다. 연도별로는 2026년 300억원, 2027년 600억원, 2028년 이후 800억원이 배정됐다. 단기간에 자금을 소진하기보다 3개 구간으로 나누어 임상과 연구개발에 투입하겠다는 계산이다.
전환우선주 조달분 3300억원도 용도는 같다. 공시상 세부 내역은 ADC, 면역항암제 등 신약연구 및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비 등 운영자금으로 기재됐다. 연도별 사용 예정액은 2026년 600억원, 2027년 1200억원, 2028년 이후 1500억원이다. 두 자금을 합산하면 2026년 900억원, 2027년 1800억원, 2028년 이후 2300억원이 연구개발 운영자금으로 집행되는 구조다.
자금 집행이 가장 집중되는 시기는 2027년이다. 전체 조달액 중 1800억원이 2027년에 몰려 있다. 리가켐바이오의 핵심 파이프라인인 LCB84는 올해 글로벌 임상 1상 결과를 확보한 뒤 임상 2상에 진입하며, LCB02A 역시 올해 3분기 글로벌 임상 1상 진입을 앞두고 있다. 자금 소요가 본격화되는 글로벌 후기 임상 진입 주기가 2027년과 맞물린 결과다.
산업 특성상, 초기 동물실험을 마치고 본격적인 인체 임상으로 넘어가는 구간에서 비용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는 바이오텍이 많다. 바이오 업계의 데스밸리(Death Valley) 구간을 앞두고 선제적으로 자금을 확보해 재무적 리스크를 경감한 것으로 풀이된다.
단기 임상 비용 외에도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자금이 투입된다. 리가켐바이오는 포스트 ADC 시대를 대비해 기존 기술을 발전시킨 이중항체 ADC 기술과 전신 부작용을 감소시키는 차세대 항체-면역자극제 결합 기술(AIC/ADIC) 개발 등에도 자금을 지속 투자할 예정이다.
기술수출 다음 단계, 더 오래 들고 갈 체력
리가켐바이오의 현재 사업 모델은 기술이전 중심이다. LCB14, LCB71, LCB73, LCB84 등 ADC 후보물질을 글로벌 및 지역 파트너사에 이전해 개발을 진행 중이다. LCB14는 중국 포순파마를 통해 유방암 대상 임상 1상과 로슈 케사일라 비교 임상 3상이 진행되고 있으며, 익수다를 통한 글로벌 임상 1상은 호주, 미국, 싱가포르, 뉴질랜드로 확장됐다. LCB71은 시스톤을 통해 미국, 호주, 중국에서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허가임상 개시를 앞두고 있다.
LCB84 역시 주요 파이프라인으로 꼽힌다. 리가켐바이오는 2023년 12월 TROP2-ADC 후보물질인 LCB84를 얀센에 기술이전했으며, 현재 임상 1상을 공동으로 진행 중이다. 또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오노약품공업과 LCB97 및 ADC 플랫폼 대상 2건의 기술이전을 체결했으며, ADC와 합성신약 부문을 포함해 공개된 계약 규모 기준 약 9조4000억원의 마일스톤을 확보한 상태다.
기술이전 모델은 파트너사가 개발을 주도하므로 직접적인 비용 부담은 줄어든다. 반면 더 높은 가치로 기술을 이전하거나 유리한 협상력을 확보하려면 후보물질을 진전된 단계까지 자체적으로 끌고 갈 자금이 필요하다. 전임상이나 초기 임상 단계에서 권리를 넘기는 것과 임상 데이터를 축적한 뒤 협상하는 것은 계약 구조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일반적으로 개발 단계가 진행될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지고 계약 규모가 큰 폭으로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독자적인 후기 임상 추진의 배경에는 임상 데이터가 자리 잡고 있다. 리가켐바이오는 지난 6월 글로벌 ADC 전문 행사인 월드ADC 서밋 코리아에서 기존 블록버스터 ADC 항암제인 엔허투(Enhertu) 투여 후 내성이 생긴 환자 중 70% 이상이 자사 페이로드에 반응을 보였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기존 플랫폼의 부작용인 안독성(Ocular Toxicity) 문제를 해결하며 전임상 단계부터 기술적 우위를 입증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후보물질의 가치를 끌어올려, 향후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상력을 한층 고도화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이번 5000억원 조달은 개발 선택권을 넓히는 자금의 성격을 띤다. 리가켐바이오는 이미 안정적인 기술이전 수익을 올리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술이전 매출은 328억원이며, 2024년 1054억원, 2025년 1212억원에 이어 수익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
재무적으로도 이번 조달은 선제적 자금 확보에 가깝다. 2026년 1분기 말 별도 기준 유동자산은 4701억원이다. 현금및현금성자산은 548억원, 기타유동금융자산은 3802억원이다. 여기에 5000억원이 더해지면 연구개발 재원은 한층 강화된다.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의 연구개발비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2025년 사업보고서 기준 연결 연구개발비용은 2171억원으로, 2024년 1133억원 대비 증가했다. 별도 기준 2025년 연구개발비용은 1959억원이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은 연결 기준 153.37%, 별도 기준 138.42%다. 기술개발비 항목이 2025년 연결 기준 1696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자체 후기 임상 돌입과 함께 기존 라이선스 아웃(L/O) 사업 모델도 변함없이 유지된다. 리가켐바이오 관계자는 "기존 기술이전 전략을 병행하면서, 가치가 큰 핵심 자산에 한해 후기 임상까지 직접 수행하는 선택지를 추가로 확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초기 기술이전으로 현금창출원(캐시카우)을 지탱하는 동시에 핵심 자산은 자체 개발하는 투트랙(Two-Track) 전략을 고도화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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