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나연 기자| "코스피 8500." 글로벌 자본이 앞다퉈 지수 상단을 높여 잡고 있다. 1년 만에 코스피 지수가 150% 넘게 폭등해 6000선을 가뿐히 넘어서고 8500 시대까지 거론되고 있지만, 이 화려한 랠리를 떠받치는 지반은 턱없이 위태롭다. 코로나19 시기 유동성이 끌어올린 2021년 7월 3305선 고점에서 불과 1년 3개월 만에 2134로 곤두박질쳤던 뼈아픈 과거가 증명하듯, 굳건한 하방 지지력이 없는 급등장은 작은 대외 변수에도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한국 증시의 펀더멘털 제고가 현 정부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면서 '주가 누르기 방지법(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은 자본시장 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승계 시 상속 증여세 부담을 줄이고자 대주주가 고의로 주가를 억누르는 병폐를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 법안은 당초 지난해 5월 국회에서 발의됐다. 국회에 계류 중이던 이 법안은 지난 1월 이재명 대통령이 "상속세 아끼려고 주가를 억지로 낮춰놓다니, 최대한 신속하게 개정하겠다"며 X 계정을 통해 직접 추진을 약속하면서 강력한 동력을 얻었다.

이러한 쇄신의 당위성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에서 출발한다. 지수가 6500선에 육박함에도 코스피 상장사 중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 기업은 약 69%, 0.8배 미만인 기업은 62%를 차지한다. 주식을 사서 보유하는 것보다, 청산하고 그 가치를 나눠받는 것이 더 이득인 기업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비교적 밸류에이션이 높은 코스닥 시장도 PBR 1배 미만인 기업의 비중이 약 42%, PBR 0.8배 미만인 기업은 32%나 된다.
이러한 만성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적인 원인 중 하나로 자본시장연구원은 소유권과 지배권의 괴리를 지목한다. 대주주가 승계 시 절세를 위해 배당을 삭감하고, 계열사 간 주식 매매와 유상증자, 합병 등을 동원해 고의로 싼 주가를 유지한다는 분석이다.
고의로 주가를 억눌러 세금을 피하는 꼼수를 막기 위해 ‘주가 누르기 방지법’은 주가를 아무리 짓눌러도 피할 수 없는 '과세 마지노선'을 설정했다. 상장사 주가가 순자산가치의 80%(PBR 0.8배)를 밑돌 경우, 비상장사와 동일하게 순자산가치의 80%를 평가 하한선으로 강제 적용한다. 주가를 인위적으로 낮춰도 세금 감면 효과를 누릴 수 없도록 제도를 뜯어고쳐, 기업 스스로 주가를 부양하도록 압박하는 장치를 설정한 것이다.
시장은 주가 누르기 방지법을 단순한 증시 부양책으로 가볍게 소비한다. 하지만 단기적인 지수 상승보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상장사와 비상장사 간 기울어진 조세 형평성이다.
재계는 주가 상승이 대주주의 상속세 부담 확대로 직결되어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위축시킨다며 반발한다. 그럼에도 이 법안의 의의는 비상장사들이 법에 정해진 대로 상속세를 산정받는 사이, 상장사는 주가를 눌러 우회적으로 이득을 보는 불공정을 바로잡는 데 있다.
장부가치 1000원인 두 기업을 비교해 보면 기울어진 운동장의 실체가 드러난다. 비상장사는 산정된 기업가치가 아무리 낮아도 법적 최저 하한선인 '순자산의 80%(800원)'를 강제로 적용받는다. 여기에 20% 할증이 붙어 최종 과세표준은 960원이 되며, 50% 최고 세율을 적용받아 최소 480원의 상속세를 내야만 한다.
반면 주가순자산비율(PBR) 0.5배로 거래되는 상장사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비상장사와 같은 강제 하한선 규정이 없어 과세 기준인 시가 자체가 500원으로 인정된다. 똑같이 20% 할증과 50% 최고 세율을 매기더라도 최종 과세표준은 600원, 산출 세액은 300원에 불과하다. 가치가 폭락해도 최소한의 세금(480원)을 물어야 하는 비상장사와 달리, 상장사에게만 낮아진 주가만큼 세금을 대폭 줄일 수 있는 합법적 우회로가 열려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실질적 허리를 담당하는 상장사와 중견기업, 외부감사 대상 비상장사를 모두 합치면 약 4만7970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주가를 낮게 유지해 합법적으로 상속·증여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상장사는 2496개로 전체의 5.2%에 불과하다. 반면 징벌적 수준의 세금 폭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6474개의 중견기업과 3만9000여 개의 외감 비상장사는 전체의 94.8%를 차지한다. 전체 5% 남짓한 상장사가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특권을 누리는 사이, 95%에 달하는 압도적 다수의 비상장 알짜 기업들이 세대교체의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구조적 모순이다.
2024년 기준 중소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중소기업 경영자 중 60세 이상 비중은 33.3%에 달한다. 국가 경제의 근간인 제조업으로 범위를 좁히면 이 비중은 44.8%로 치솟으며, 특히 업력 30년 이상 기업은 10곳 중 8곳(80.9%)이 고령 최고경영자(CEO)를 두고 있어 가업 승계가 그야말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비상장사들이 겪는 과세 고통은 향후 자본시장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상장 요건을 맞출 수 있는 기업들이 세금 폭탄을 피할 탈출구로 절세를 노린 섣부른 상장(IPO)이 늘어날 수 있어서다. 실제 지난해 상장한 모 제약회사는 겸손한 공모가 산정으로 인해 상속세 절세용 상장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상장 이후 세금을 줄이려 주가를 억누르는 기업이 늘어날수록, 일반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증시를 왜곡하는 행위를 막고자 주가 누르기 방지법은 페널티와 인센티브를 결합했다. PBR 0.8배 이상 상장사에 대해 최대주주 20% 할증을 폐지하고 주식 물납을 열어줬다.
상장사만 최대주주 20% 할증을 풀어준 것을 두고 비상장사가 여전히 불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밸류업 동력을 유지하고 조세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안전장치다. 기업이 주주환원에 나서 정상 주가를 회복하면 과세 기준인 시가가 상승해 대주주의 세 부담은 자연스럽게 커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20% 할증까지 더한다면, 지수 하방을 방어한 기업이 도리어 페널티를 받는 모순이 발생한다. 주가를 억누르는 기업에는 비상장사와 동일한 80% 하한선과 20% 할증을 적용하고, 가치 제고에 나선 기업에는 할증을 면제해 자발적인 주가 부양을 유도하기 위한 의도적인 설계인 셈이다.
'주가 누르기 방지법'은 증시 부양책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얽힌 세법을 풀어 시장 왜곡을 바로잡는 과제가 자리 잡고 있다. 세금을 줄이려 기업 가치를 깎아내리는 시장의 모순을 걷어내고, 무거운 과세를 견뎌온 비상장사들과의 조세 형평성을 맞추는 데 있다. 절세 목적의 섣부른 상장을 차단하고 기업 스스로 주가를 부양하도록 이끌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낡은 세법이 초래한 부작용을 덜어낼 때, 코스피 8500선 안착이라는 자본시장의 기대치와 건실한 중소·중견기업들의 안정적인 세대교체도 비로소 현실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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