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유증 포비아'를 무기 삼은 '중복상장'…주주는 호구인가

오피니언 | 김한솔  기자 |입력

|스마트투데이=김한솔 기자| “자본조달 시 증자를 단행하면 주가 하락 우려가 큽니다. 그러니 중복상장이 자금 조달을 위한 최적의 대안 아니겠습니까?”

최근 중복상장 논란에 휩싸인 한 기업 관계자와의 통화에서 돌아온 답변이다. 유상증자에 따른 지분 가치 희석을 경계하는 시장의 민감한 반응을 중복상장 정당화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이 발언은 대한민국 자본시장에서 벌어지는 ‘유증 포비아(유상증자 공포증)’의 책임을 오롯이 주주에게 전가하고 있다. 회사의 주인(主人)인 주주를 자본 조달의 장애물인 객(客)으로 취급하며, 기업 스스로 초래한 불신의 대가를 주주에게 떠넘기는 전형적인 주객전도(主客顚倒)식 논리다.

금융 원론에서 유상증자는 기업이 이자 부담이나 원금 상환 의무가 없는 ‘영구적 자본’을 확충해 재무 건전성을 높이고 미래 성장을 도모하는 가장 이상적인 조달 수단으로 꼽힌다.

실제로 자본시장에서 유상증자는 기업의 강력한 도약 의지를 드러내는 ‘성장 신호’로도 읽힌다. 테슬라는 2020년 초 주가가 고공행진 중이던 시기에 약 20억달러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지분 희석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이를 기가팩토리 건설과 생산 확대를 위한 ‘실탄 확보’로 해석했고, 주가는 오히려 반등했다.

국내 자본시장에서도 유상증자의 목적이 명확하고 타당하다면 시장은 긍정적으로 화답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삼성SDI는 지난 2025년, GM과의 합작법인(JV) 설립 및 헝가리 공장 증설, 그리고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발표 초기에는 주식 가치 희석에 대한 우려로 주가가 일시적인 변동성을 보였으나,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투자 로드맵이 시장의 신뢰를 얻으면서 장기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대다수 한국 기업의 행태다. 시장 참여자들이 유상증자에 격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은 기업이 증자 대금을 성장 사업이 아닌 ‘엉뚱한 곳’에 사용해온 업보가 쌓였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신사업 로드맵 없이 운전자금 확보라는 모호한 명목으로 부실 계열사의 빚을 갚아주는 돌려막기에 나서거나, 대주주의 지배력 유지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 비용으로 주주 자본을 유용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상증자는 주가가 빠지니 중복상장을 하겠다”는 논리는 비겁했다. 중복상장은 기존 주주가 마땅히 누려야 할 신사업의 과실을 통째로 분리해 새로운 주주에게 파는 행위다. 이는 자금 조달을 위한 최적의 대안이 아니라, 기존 주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가장 손쉽게 자금을 조달하려는 경영진의 편의주의적 발상일 뿐이다.

기업은 유증으로 인한 주가하락을 염려하기 전에 먼저 그동안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결정을 내려왔는지 돌아봐야 한다. 주주들이 주인인 주식회사에서 회사는 주주들에게 경영 판단의 근거를 충실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 경영진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돈을 쓰는가’를 주주에게 충실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문화가 정착될 때, 유상증자는 비로소 가치 희석의 위협이 아닌 미래의 파이를 키우는 전략적 도구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결국 유증 포비아는 주주들이 기업에 보내는 가장 뼈아픈 불신의 증거인 셈이다. 이를 ‘중복상장’의 명분으로 삼았던 것은 주주와 기업간의 간극을 더했을 뿐이다. 

다시 관계자의 항변으로 돌아가보자. 기자의 질문에 중복상장을 당당하게 대안으로 소개한 관계자의 발언은, 여전히 우리 기업들이 주주를 기업의 주인이 아닌 자금 조달의 ‘수단’으로만 바라보고 있음을 방증한다.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선진화는 주객전도된 작금의 상황을 다시금 ‘주객전도’하여, 기업이 주주를 다시 ‘주인’으로 모실 때 비로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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