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아니라 ‘공정’이 권력이다… 희토류 병목에 갇힌 한국의 선택

- 신간 《21세기의 석유, 희토류》가 던지는 공급망의 본질 - 매장량보다 무서운 ‘가공 권력’… ‘공급망 문해력’ 길러야

사회 | 우세현  기자 |입력

|스마트투데이=우세현 기자| 석유가 세계 지도를 바꾸고 전쟁의 명분을 만들던 ‘연료의 질서’가 저물고 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전기차, 풍력 발전, 로봇의 심장을 돌리는 희토류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물질을 ‘땅에서 캐내는 희귀한 흙’ 정도로 오해하곤 한다. 최근 출간된 《21세기의 석유, 희토류: 흙이 아니라 권력이다》(도서출판 나란)는 이러한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으며, 희토류가 어떻게 21세기의 새로운 ‘지정학적 레버’가 되었는지 실증적으로 파헤친다.

광산 너머에 숨겨진 진짜 병목, ‘가공과 규격’

25년 차 언론인 출신의 김흥성 박사와 35년 글로벌 공급망 현장을 누빈 김재용 대표가 의기투합한 이 책의 일성은 명확하다. “희토류의 본질은 광산이 아니라 공정(Process)에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희토류 권력이 단순히 ‘어디에 많이 묻혀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어떤 순도로 정련하여 자석급 규격(Spec)으로 만들어내는가’에서 발생한다고 분석한다. 특히 분리·정련·자석 제조로 이어지는 ‘다운스트림’과 그 과정에서의 검증(QA) 절차가 현대 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음을 입증한다.

책은 AI 기자 ‘지오(GIO, Global Intelligence Observer)’라는 독특한 장치를 도입했다. 지오를 통해 방대한 1차 자료와 기업 공시를 교차 검증하고, 현장 공정을 ‘디지털 트윈’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덕분에 복잡한 화학적 공정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한 르포로 탈바꿈했다.

‘0.4g’의 함정… 제조업과 안보를 흔드는 규격의 언어

스마트폰 한 대에 들어가는 희토류는 고작 0.4g 수준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그 미미한 양에 혹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문제는 ‘양’이 아니라 대체가 불가능한 ‘기능’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석·광학·고온 성능을 결정짓는 미세한 규격 차이가 제조업과 국가 안보를 동시에 흔드는 통제 레버로 작동하고 있다.

책은 수출 통제나 지정학적 이슈를 정치가 아닌 ‘서류·품목코드·공정’이라는 실무의 언어로 번역해낸다. 에티오피아 커피 수입 1위 기업을 일궈낸 김재용 대표의 현장 감각과 김흥성 교수의 날카로운 데이터 분석이 결합하여, 자원 빈국인 한국이 나아가야 할 자원 외교의 방향을 현장에서 제시한다.

무지는 선택의 적… 다층적 포트폴리오 서둘러야

저자들이 제시하는 한국의 생존 전략은 냉정하다. 자원 빈국인 우리에게 ‘한 방’의 해결책은 없다. 대신 동맹·비축·검증 인프라·다운스트림 기술 확보·순환 경제 등 다층적인 포트폴리오를 주문한다. 특히 재활용(도시 광산)을 낭만적인 구호가 아닌 재투입율과 설계의 문제로 접근한 대목은 인상적이다.

“무지는 선택의 적이다”라는 에필로그의 문장은 뼈아프다. 희토류를 원소 기호로만 이해하는 수준에 머문다면, 우리는 언제든 타국이 설계한 규격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미래 산업의 규칙을 읽는 ‘공급망 문해력’을 키우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실효성 있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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