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 디코드

한국앤컴퍼니 이사회의 '셀프 방어막'…상법 개정 취지 훼손 논란

오너 징역형 직후 사외이사·감사위원 3명 돌연 사퇴 이사 책임 한도 제한 정관 상정…개정 상법 무력화 시도

산업 | 심두보  기자 |입력

|스마트투데이=심두보 기자| 한국앤컴퍼니그룹이 다가오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심각한 지배구조 위기에 직면했다. 핵심 계열사인 한국앤컴퍼니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을 감경하는 정관 변경 안건을 상정했다. 자본시장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오너 리스크로부터 경영진을 보호하기 위한 ‘셀프 방어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정관 변경안의 핵심은 이사의 상법상 책임을 최근 1년간 보수액의 일정 비율로 제한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사내이사는 보수의 6배, 사외이사는 3배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 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이사의 책임 부담을 덜어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겠다는 취지지만, 시장의 해석은 다르다.

특히 이번 안건 상정 시점이 주주들의 강한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지배주주인 조현범 회장이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직후에 추진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사회가 총수의 불법 행위를 방조했거나 제어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거센 가운데, 자신들의 법적 책임부터 줄이려는 시도로 읽힌다.

오너 실형에 사외이사 줄사퇴…소송 리스크 회피용 정관 꼼수

이사회의 균열은 이미 가시화된 상태다. 주주총회를 목전에 두고 한국앤컴퍼니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의 독립이사 및 후보 3명이 연달아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3월 11일 김용아 신임 사외이사 후보(한국앤컴퍼니)와 이은경 사외이사 후보(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가 자진 사퇴했고, 17일에는 감사위원을 맡고 있던 김정연 사외이사(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잠시 사외이사 후보로 이름을 올렸던 김용아 이사는 캐나다 디지털금융그룹 EQB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고, 법무법인 와우 변호사로 활동중인 이은경 변호사는 와이낫미디어 사외이사로 활동중이다. 특히, 감사위원에서임기중 중도 사퇴한 김정연 이화여대 법학전문대 조교수는 현재 코람코자산운용과 한화손해보험의 사외이사를 겸직중이다.

사외이사가 주총 직전이나 임기 중 돌연 사퇴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독립적인 감시 역할을 수행해야 할 이사들이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에 부담을 느끼고 이탈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2월 2심 법원은 조현범 회장의 200억원대 업무상 횡령 및 배임, 배임수재 혐의에 대해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회사의 자산이 오너 개인의 이익을 위해 유용되었음이 사법부를 통해 확인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사회가 주주 가치 훼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상법 제399조에 따르면 이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이나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거나 그 임무를 게을리한 경우 회사에 대해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즉, 한국앤컴퍼니의 이사들은 조 회장의 범죄 행위를 사전에 차단하지 못한 선관주의 의무 위반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향후 주주대표소송의 직접적인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회사가 상법 제400조를 근거로 책임 감경 정관을 도입하려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주주들의 소송이 현실화될 경우, 이사 개인이 감당해야 할 재무적 타격을 보수의 3~6배 수준으로 선제적으로 통제하려는 계산이다. 이는 주주들의 정당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

개정 상법 역행에 쏟아지는 비판…"메리츠식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해야"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행보가 최근 자본시장의 화두인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강화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한다는 점이다. 개정 상법의 취지는 이사회의 의사결정이 총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데 있다.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반 주주가 희생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본질을 해결하려는 시대적 요구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역시 이 부분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포럼은 이번 정관 변경 시도를 "독립이사들의 이탈을 막고자 법기술자를 동원해 고안한 임시방편"이라고 규정했다. 아울러 상법 개정안의 본래 취지를 희석화하고 이해상충의 소지가 다분한 꼼수라고 지적하며 안건 철회를 압박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재벌 그룹의 후진적인 지배구조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평가한다. 오너가 옥중에서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사회는 오너를 견제하기보다 오너와 자신들의 안위만을 방어하는 데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의 가이드라인도 이사회에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ISS는 뇌물이나 횡령 등 민형사상 전과가 있는 이사 및 경영진에 대해 해임을 엄격히 권고하고 있다. 조현범 회장을 비롯해 그를 방어하는 현 이사회 구성원들의 연임 안건에 대해 반대 표결을 행사할 명분이 충분한 상황이다.

과다한 보수 지급 문제도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조 회장은 지난 2월 사임 공시를 내어 이사회 승인 대상에서 벗어났지만, 과거 극히 저조한 이사회 출석률(2025년 하반기 기준 13%)에도 불구하고 고액의 보수를 수령해왔다.

자본시장에서는 대안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메리츠금융지주처럼 오너 일가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검증된 전문경영인에게 전권을 위임해야 기업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키맨 리스크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미봉책도 시장의 신뢰를 되찾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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