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닉스 역대급 호황의 역풍…스마트폰·PC 비싸진다

글로벌 | 김나연  기자 |입력

HBM 공급 우선 배정에 범용 메모리 후순위로 밀려 증설은 더디고 빅테크 수요는 급증해 품귀 장기화 우려

|스마트투데이=김나연 기자| AI 산업의 급격한 성장이 전례 없는 메모리 반도체 품귀 현상을 부르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반도체를 싹쓸이하면서 스마트폰과 PC, 자동차에 들어가는 범용 메모리 공급까지 메말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의 메모리 생산 능력이 AI용 반도체로 집중되는 향후 수년 동안 소비자용 IT 완제품 시장의 가격 상승이 장기화할 할 전망이다.

빅테크에서 출발한 반도체 수급난의 여파는 이미 소비자용 완제품 시장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PC 제조사 HP는 지난 2월 회계연도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노트북 원가 내 메모리 비중이 한 분기 만에 15~18%에서 35% 수준으로 급등했다고 밝혔다.

원가 압박이 커지자 HP와 델 등 주요 제조사들은 PC와 서버 가격을 올리거나 메모리 용량을 줄인 제품을 내놓고 있다. 이런 메모리 감축은 단순한 원가 절감에 그치지 않는다. 기기 성능과 사용 경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더 비싼 제품을 사거나 더 낮은 사양을 받아들여야 하는 셈이다.

스마트폰 시장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메모리 가격 상승으로 향후 스마트폰 제조 원가가 15% 이상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여기에 사진과 게임, 파일 저장에 쓰이는 NAND 가격까지 빠르게 오르면서 수익성이 낮은 보급형 스마트폰 제조사는 사업성 자체를 다시 따져봐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런 원가 부담은 스마트폰 시장 위축 우려도 키우고 있다. IDC는 2026년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12.9%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소니와 닌텐도 같은 게임기 업체, 전장화가 빠르게 진행 중인 자동차 업계도 부품 수급 불안과 원가 상승, 출시 지연 압박을 함께 받고 있다.

문제는 이번 메모리 부족이 과거 업황 사이클 속에서 반복되던 공급 부족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메모리 업계는 통상 경기 변동이나 수요 예측 실패에 따라 공급 과잉과 공급 부족을 오가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AI 인프라 확장이라는 구조적 수요가 시장의 균형 자체를 흔들고 있다. 애플과 알파벳, 테슬라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AI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높은 가격을 감수하면서까지 수년짜리 장기 공급 계약을 맺고 있다. 메모리 업체로서도 수익성이 훨씬 높은 이 주문을 우선 배정할 유인이 크다. 그 결과 소비자용 기기 제조사들은 공급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AI 인프라가 HBM만 빨아들이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대규모 모델 학습과 클라우드 워크로드를 떠받치려면 범용 DRAM과 데이터 저장용 NAND도 함께 필요하다. 결국 스마트폰과 PC, 게임기 등에 들어가는 범용 메모리 생산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부 DRAM 현물가격은 지난 1년 새 700% 가까이 급등했다.

수요 구조 자체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데이터센터용 DRAM 수요는 2025년 기준 전 세계 DRAM 소비량의 약 50%를 차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5년 전 이 수치가 32% 수준이었다는 점을 비중이 큰 폭으로 확대된 셈이다. 더 나아가 2030년에는 AI 서버가 전 세계 DRAM 소비량의 60%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 사람의 개입 없이 상시 구동되는 AI 에이전트 소프트웨어까지 확산하게 되면 메모리 수요는 더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이처럼 수요가 한쪽으로 쏠리자 주요 빅테크 기업의 경영진도 위기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는 이번 사태를 반도체 업계의 병목 지점으로 지목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도 자체 메모리 반도체 생산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공급 불안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하지만 HBM 수요가 폭증한다고 해서 공급이 곧바로 따라붙는 것은 아니다. HBM을 안정적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세 곳뿐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장을 새로 짓거나 생산 라인을 확충하려면 수년의 시간과 수십억달러가 들어간다.

공급이 쉽게 늘지 않는 또다른 이유는 과거 공급 과잉의 후유증이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 주요 업체들은 2023년 수요 예측 실패로 공급 과잉과 대규모 적자를 겪은 바 있다. 이 경험 탓에 지금처럼 주문이 몰려도 공격적으로 생산 능력을 늘리는 데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 빅테크의 2026년 AI 관련 지출이 65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공급이 빠르게 늘지 않는 이유다.

이처럼 단기 증설의 한계와 공급사들의 보수적인 투자 기조가 겹치면서 메모리 부족 사태는 최소 1년 이상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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