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황태규 기자| 엔비디아가 삼성전자의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를 전격 채택하며 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가시화할 조짐이다. 지난 블랙웰(Blackwell) 세대에서 겪은 공급난을 교훈 삼아 엔비디아가 공급사 다변화와 개발 일정 단축이라는 ‘투트랙’ 전략으로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요청에 따라 HBM4 양산·출하 시점을 설 연휴 직후, 이르면 이달 셋째 주로 확정했다.
이는 세계 최초의 HBM4 출하 사례다. HBM4는 6세대 HBM이다.
해당 제품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Rubin)’에 탑재될 예정으로, 3월 개최되는 ‘GTC 2026’에서 처음 공개될 예정이다.
● 공급난의 뼈아픈 기억, 블랙웰의 그림자
엔비디아가 핵심 부품인 HBM4의 수급처로 삼성전자를 추가한 데는 이전 블랙웰 기반 AI 가속기의 생산 지연 사태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블랙웰 사태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그래픽처리장치(GPU) 공급망 병목 사태로, 엔비디아 블랙웰 GPU에서 설계 결함이 발견되어 출하 시기가 당초 계획했던 때보다 수개월 늦춰진 사건이다.
핵심 부품 공급이 특정 업체에 집중되면서 예기치 못한 납품 차질이 이어졌고, 서버 제조사와 클라우드 고객사들이 피해를 입었다. 해당 여파로 엔비디아 주가는 한 주 동안 약 15% 하락한 바 있다.
이 사건 이후 엔비디아 내부에서는 “공급망은 기술만큼이나 중요하다”라는 기류가 형성됐다고 한다. 단순한 제품 고도화가 아닌 공급망 혁신이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른 셈이다.
루빈 세대는 이런 공급망 전략 전환의 첫 결실이다. 엔비디아는 이전 세대보다 6~12개월 이상 빠른 속도로 개발 및 양산 일정을 결정했다.
실제 루빈 플랫폼은 통상 24∼30개월 걸리는 개발 주기를 18개월로 단축했으며, 2026년 1분기 이미 ‘풀 프로덕션(Full Production)’ 단계에 들어섰다. 이에 맞춰 메모리 파트너사에는 조기 납품이 요구됐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2월 셋째 주 HBM4 양산 출하를 확정한 것도 루빈 플랫폼에 맞추려는 일정 압박과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 성능 기준 상향…HBM4, 속도로 승부한다
이번 루빈용 HBM4는 기존 표준보다 훨씬 공격적인 성능 목표를 갖는다. 엔비디아는 미국 전자산업학회 반도체 공학 표준인 JEDEC 기준 8Gbps보다 높은 10~11Gbps 전송 속도를 요구하며, 발열 허용 한도를 일부 완화하는 대신 데이터 처리 효율을 극대화했다.
지난 1월 29일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2월부터 최상위 속도 11.7Gbps 제품을 포함한 HBM4 양산 출하가 예정돼 있다”라며 “개발 초기부터 성능 목표를 높게 설정했고, 퀄리피케이션 완료 단계에 진입했다. 이미 정상적으로 양산에 투입돼 생산이 진행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의 HBM4가 조기에 이 기준을 통과한 것은 의미가 크다”며 “공급 안정성과 성능을 겸비했다는 점에서 루빈 세대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한편, 엔비디아의 공급망 전략 다변화는 단순히 위험 회피를 넘어, AI 반도체 생태계의 주도권 전환을 시사한다는 해석도 있다. 삼성전자는 HBM4를 발판으로 AI 메모리 시장 점유율 확대를 노리고, 엔비디아는 안정적 부품 수급을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반도체 시대 승부는 기술력 못지않게 공급망의 완성도가 중요한 포인트”라며 “과거의 (수율 확보 등과 관련한) 실패 사례가 지금의 삼성전자에 새로운 기회를 줬고, 엔비디아는 공급망의 안정화를 노리도록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댓글 (0)
댓글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