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황태규 기자| 미국이 ‘투자 규모 연동형’ 반도체 관세·투자 정책 방향을 제시하면서 국내 기업과 정부가 긴장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약속한 대만 TSMC의 선례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제조사 역시 비슷한 규모의 현지 투자를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이미 국내에 세계 최대급 반도체 클러스터를 짓고 있는 두 회사가 미국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생산 기업들에 노골적인 미국 투자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최근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의 마이크론 신공장 착공식에 참석해 "메모리를 생산 기업은 2가지 선택지가 있다"며 "이는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이같은 요구는 반도체 기업에 대한 '투자-관세 연계 모델'을 확립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그간 미국에서 반도체는 공급망 안보 차원에서 보조금을 주며 자국 내 생산을 독려해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하는 정책과 주로 결합돼 왔지만, 트럼프 행정부 들어 보조금은커녕 관세를 앞세워 현지 조달·투자를 복합적으로 압박하는 경향으로 극명하게 바뀌었다.
이같은 추세는 이번 대만과의 관세 협상 과정에서 확실하게 확인된다. 대만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5000억 달러(약 738조원) 투자 계획을 제시했다. 대만의 대미 투자금에는 TSMC가 미국 내 신규 공장 설립을 위해 기존에 약속한 1650억 달러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미국은 대만 반도체 기업이 미국 내 생산시설을 신설하거나 증설할 경우, 그 투자 규모에 연동해 대만에 대한 관세 감면 또는 면제를 허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장 건설 기간 동안에는 신규 생산능력의 2.5배까지, 완공 이후에는 1.5배까지 무관세 수입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이후 현재 미국에 1개 공장을 운영 중인 TSMC가 5개 이상의 공장을 추가 건설할 것이라는 기대가 미국 쪽에서 나왔다.
이같은 합의가 알려진 뒤 한국이 미국의 다음 타깃이 될 것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TSMC와의 합의 이후, 미국 관가에서 발신된 메모리 대미 투자 관련 발언이 그런 것인데,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한국의 점유율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TSMC가 메모리보다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방식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에 치중하는 구조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확보 전략의 속내도 확인된다. 대체로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가 각각 한국과 대만에서 생산돼
중국, 베트남 등에서 스마트폰, 서버, PC 등 전자제품으로 조립된 후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에 수출되는 구조다.
이 중 한 축을 담당하는 TSMC가 먼저 미국 생산기지 투자를 대거 확대한만큼, 미국은 반도체 생태계 현지화 전략의 다음 타깃으로 한국을 지목했다는 얘기다.
미국이 한국에 약속한 반도체 관련 최혜국 대우에 대한 논쟁도 분분하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계기 한·미정상회담 등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에 대한 최혜국 대우를 약속한 바 있다. 당시 한·미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에서 미국은 반도체 관세와 관련해 "한국을 다른 주요 반도체 교역국보다 불리하게 대우하지 않겠다"고 명시했다. 이는 교역 규모상 한국의 최대 경쟁국인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최혜국 대우에 대한 믿음은 미국이 '개별 국가 합의'를 언급하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만과의 계약 모델이 미국 내 생산을 늘리는 대신 관세를 깎아주는 '조건부 혜택' 구조이기 때문에, 대만이 받은 혜택이 한국에 자동으로 적용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투자 규모나 생산 계획이 다르면 결과도 달라질 수 있어 최혜국 원칙이 대만보다 불리하게 대우받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일 뿐 혜택을 보장하는 장치는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대만이 이룬 합의와 조건은 미국이 향후 한국과 일본 등 다른 국가들과의 협상에 내세울 조건을 미리 공지한 것과 같다"라며 "국내 기업은 구체적 약정이 없었던 최혜국 대우가 아닌, 미국 투자 계획 등을 통한 개별적 합의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아직 확실한 대응책은 제시하지 않는 모양새다. 아직 미국 쪽에서 직접적인 현지 투자 압박 등이 없는데 우리가 먼저 협의 등에 나설 필요는 없어서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에 명시된 대로 ‘불리하지 않은 대우 원칙’에 따라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협의해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구체적인 사항은 미 측과 협의 과정에서 지속 확인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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