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나연, 심두보 기자| 고려아연의 미국 자원 제련 프로젝트 '크루시블(Crucible)'이 제너럴 다이내믹스, 안두릴 인더스트리즈, 코닝 등 미국 방산·제조 핵심 기업들을 전략적 투자자(SI)로 확보하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공급망 재편 정책에 공식 편입됐다. 이번 동맹은 트럼프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제조업 리쇼어링(Reshoring)'과 '대중국 견제'라는 거시적 정책 기조가 개별 기업의 생존 과제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다만, 4년이라는 대통령 임기 이후의 정책 불확실성은 고려아연이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목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의 미국 합작법인 '크루시블 JV'에 GD, 안두릴, 코닝 등 3개 사가 총 4억 5000만 달러(약 6000억 원)를 출자해 지분 49.9%를 확보했다. GD와 안두릴이 각각 1억 7500만 달러(지분 19.4%), 코닝이 1억 달러(지분 11.1%)를 투입했다. 이들은 단순한 재무적 투자를 넘어, 고려아연으로부터 아연, 게르마늄, 반도체용 황산 등 13종의 핵심 소재를 장기 공급받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SI 구성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핵심 공약인 '강한 미국(Strong America)'과 '공급망 자립'을 실현하기 위한 필수 라인업으로 평가받는다. 트럼프 정부는 매년 국방부의 예산과 정책을 결정하는 국방수권법(NDAA)과 공공 조달 시 미국산 제품 및 자재를 우선적으로 구매하도록 의무화하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을 통해 국방·통신 등 안보 필수 산업에서 중국산 원자재를 원천 배제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어떤 기업이든 정부 입찰에 참여하려면 미국 내에서 제련된 비(非)중국산 소재를 확보해야만 하는 상황이 바로 SI들의 크루시블 JV 투자 참여의 배경인 것이다.
● SI 3사 투자, 트럼프 정책 기조에 부응하기 위한 성격
실제로 제너럴 다이내믹·안두릴·코닝의 핵심 사업을 들여다보면, 이번 투자가 트럼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부응하기 위한 성격을 띤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제너럴 다이내믹은 트럼프 정부의 주요 공략 중 하나인 해군력 재건의 핵심 플레이어로 꼽힌다. 트럼프 정부는 355척 이상의 함대를 건설하겠다는 ‘황금 함대(Golden Fleet)’ 정책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 정책의 꽃은 화력을 극대화한 차세대 주력함 '트럼프급 전함(가칭 USS 디파이언트)' 건설로 꼽힌다.

미사일과 항공 기술에 집중하는 타 방산업체와 달리 핵잠수함 등 대형 군함 건조가 가능한 제너럴 다이내믹은 황금 함대 프로젝트를 수주할 유력 플레이어로 거론된다. 공공 조달에 참여하려면 필수적으로 미국산 자재를 사용해야 하므로, 핵잠수함과 전함의 선체 도금 및 원자로 냉각 시스템에 필요한 고순도 아연을 중국산 없이 조달해야 하는 제너럴 다이내믹의 크루시블 JV 참여는 황금 함대 프로젝트 수주를 위한 필수적인 선결 조건으로 해석된다.
안두릴은 트럼프 정부가 기존 방위산업의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추진하는 레플리케이터 이니셔티브(Replicator Initiative)의 상징적인 파트너로 평가받는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의 물량 공세에 대응해 저렴하면서도 정밀한 무인·자율 무기 체계를 수천 개 이상 신속하게 배치하겠다는 구상을 이 이니셔티브를 통해 현실화하고 있다.

기존 대형 방산기업들이 높은 단가로 비판받는 사이 안두릴은 압도적인 속도와 기술 안보를 앞세워 레플리케이터 이니셔티브의 주요 플레이어로 떠올랐다. 10대 때부터 트럼프 대통령을 추앙해온 것으로 알려진 창업자 팔머 럭키는 트럼프 정부의 움직임에 발맞춰 중국산 부품 배제를 강력한 세일즈 포인트로 삼고 있다. 드론의 모터·배터리·센서 구동에 필수적인 희토류와 구리 등을 중국산 없이 확보해야 하는 안두릴의 크루시블 JV 참여는 자사 무기 체계의 ‘공급망 순혈주의’를 입증하고 트럼프 정부의 신뢰를 얻기 위한 전략적 비용으로 풀이된다.
코닝은 트럼프 2기 정부의 양대 산업 공약인 ‘통신 인프라 자립’과 ‘제조업 리쇼어링(Reshoring)’을 실현할 대체 불가능한 제조사로 분류된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불필요한 환경 규제를 걷어내며 미국 전역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까는 ‘BEAD 프로그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가 직접 발주하는 사업은 아니지만, 보조금을 수령하는 통신사들에 강력한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조항을 적용함으로써 사실상 유일한 미국산 광섬유 공급처인 코닝에게 물량을 몰아주는 구조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의 상징성 또한 확고하다. 코닝은 애플과 협력해 아이폰 등에 탑재되는 세라믹 글라스를 전량 미국 내에서 생산하는 25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발표했는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제조업이 돌아왔다"고 선전할 때마다 인용하는 주요 성과 중 하나다.

문제는 BEAD 프로그램에 납품되는 광섬유 코어 생산에 필수적인 게르마늄은 전 세계 생산량의 60% 이상을 중국이 점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중 무역 갈등 격화로 중국이 희소 금속 수출을 통제할 경우 코닝의 미국 공장은 멈춰 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제련 과정에서 부산물로 게르마늄을 회수하는 기술을 갖춘 고려아연의 크루시블 JV 참여는, 코닝이 중국발 리스크를 원천 차단하고 트럼프 정부의 인프라 프로젝트 요건을 완수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공급망 안전장치’인 셈이다.
● 제너럴 다이내믹·안두릴·코닝의 크루시블 JV에 대한 니즈, '포스트 트럼프' 시대에도 유효할까?
문제는 제너럴 다이내믹·안두릴·코닝과 정부의 공조 체제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종료 후에도 지속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테너시 주 제련소 건설 타임라인과 트럼프 정부 임기 사이의 불일치가 프로젝트 크루시블의 리스크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고려아연 테너시 제련소의 상업 가동 목표 시점은 2029년 상반기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2029년 1월에 종료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장이 본격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순간 정작 이를 지탱해주던 정치적 보호막은 사라지는 셈이다. 정권 교체로 대중국 견제 기조가 완화되거나 예산 우선순위가 바뀔 경우, 프로젝트의 동력이 약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포스트 트럼프' 시대에 고려아연이 짊어질 비용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세운 보호무역 장벽이 낮아져 정부 사업에 저렴한 해외 소재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크루시블 JV의 SI 기업들이 구매처를 변경하거나 보유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막대한 설비투자(CAPEX)를 집행한 고려아연은 미국의 높은 인건비와 전력비 등 고비용 구조를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
프로젝트 크루시블의 재무적 안전장치 또한 취약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로 고려아연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크루시블 JV 뿐만 아니라, 실제 테너시 제련소 사업을 집행하는 법인 크루시블 메탈스를 포함한 전체 사업 자금의 약 90%가 상환 의무가 있는 부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SI 출자금과 보조금을 합친 비상환성 자금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정책 환경 변화로 인해 미국산 소재의 수요가 감소하거나 가격 경쟁력이 하락할 경우, 고정비 부담과 가동률 저하에 따른 재무적 영향은 크루시블 JV에 보증을 선 고려아연이 집중적으로 받게 되는 구조다.
결국 고려아연의 이번 투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장벽이 걷힌 이후에도 생존 가능한 사업 모델을 구축할 수 있느냐가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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