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박재형 기자| 두 사람에게 일정한 돈이 주어진다. A는 이 돈을 어떻게 나눌지 정하고, B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다. 받아들이면 두 사람은 A가 정한 비율대로 돈을 갖는다. 하지만 B가 거부하면 둘 다 한 푼도 받지 못한다. 독일의 경제학자 베르너 귀트 등이 고안한 ‘최후통첩 게임’이다.
B의 선택은 간단해 보인다. A가 아주 적은 몫만 제시해도 일단 받는 편이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것보다 낫다. 그러나 인간은 합리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분배가 불공정하다고 느끼면 자신의 몫까지 포기하면서 제안을 거부한다. 조금이라도 얻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이익인데도 ‘이렇게 나눌 수는 없다’라며 게임의 판을 깨는 것이다.
뒤늦게 선 그은 정부…여전히 모호한 ‘룰’에 경영 불확실성의 그림자는 여전
이 사고실험은 올해 산업계 최대 쟁점인 ‘영업이익의 N%’ 성과급 논쟁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반도체 업종에서 본격화한 N% 성과급 요구는 자동차와 조선 등 제조업 전반으로 번졌다. 회사가 실적을 냈으니 그 성과에 기여한 근로자에게 더 많은 몫을 돌려달라는 요구다. 다만 현실의 성과급 논쟁은 최후통첩 게임보다 수많은 요소가 얽히고설킨 고차방정식이다.
가장 큰 문제는 분배의 규칙 자체가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은 노동쟁의 범위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까지 넓혔다. 정부가 지난 2월 해석지침을 마련했지만 사용자 범위 및 노동쟁의 대상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고, 여기에 N% 성과급을 둘러싼 교섭·쟁의 가능성을 포함해 산업 현장의 혼란은 계속됐다.
결국 고용노동부는 최근 별도의 시행지침을 내고 매출액·영업이익·당기순이익 등 기업이익과 일정 비율로 연동하는 성과급 요구는 의무적 교섭이나 조정·쟁의행위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새 지침이 모든 불확실성을 없앤 것도 아니다. 지침은 법률이나 시행령이 아닌 행정기관의 해석·업무처리 기준이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만큼 실제 쟁의의 정당성을 둘러싼 분쟁은 결국 사법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산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경영 불확실성’ 문제는 해소됐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셈이다.
공정하지 않으면 판은 깨진다…성과급도 결국 ‘신뢰의 게임’
최후통첩 게임이론에서 확인하듯, 공정한 분배는 명확한 규칙을 전제로 한다. 성과급의 경우도 무엇을 요구할 수 있고 어디까지 쟁의할 수 있는지조차 불분명하다면, 그 위에서 만들어지는 합의 역시 신뢰받기 어렵다. 성과급 문제를 취재하며, 현장의 이해관계자들이 강조한 것도 결국 ‘영업이익의 N%’라는 숫자보다 제도의 신뢰성에 있었다.
가령 근로자의 불만은 성과급이 적다는 데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회사 실적은 크게 늘었는데 왜 자신의 보상은 이 정도인지, 어떤 기준으로 재원을 정했는지, 산식이 왜 바뀌었는지 설명되지 않을 때 불신은 커진다. N% 성과급 요구에는 회사 재량에 좌우되던 성과급을 보다 투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 규칙으로 바꾸자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N% 성과급 요구가 공정한 분배의 답이 되는 것도 아니다.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산업에서 한 해 이익의 일정 비율을 근로자의 몫으로 고정하면 주주 및 국가 등 다른 이해관계자의 권리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 여기에 기업의 미래 투자 계획에도 차질이 생긴다. 정부 역시 성과급 교섭에서 경영성과뿐 아니라 투자 계획과 유동성, 지속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한 바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분배가 이뤄지는 규칙을 명확하게 세우고, 서로가 그 규칙을 믿을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기업은 성과 배분 기준을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야 하고, 노동조합도 기업 이익에 노동의 기여뿐 아니라 미래 투자와 다른 이해관계자의 몫이 함께 들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현장이 법의 경계를 예측할 수 있도록 보다 안정적인 기준을 만들어갈 책임이 있다. 이 밖에도 국회에선 입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장은 어렵겠지만, 현장의 혼선을 반영한 보완 입법을 추진하는 것도 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신뢰는 ‘믿어 달라’는 말에서 생기지 않는다. 누구도 제멋대로 바꿀 수 없고, 모호하지 않은 규칙이 반복해서 지켜질 때 생긴다. 최후통첩 게임이 보여주는 것도 결국 분배의 크기만큼이나 그 과정의 정당성이 결과의 수용 여부를 좌우한다는 점이다. 성과급 제도도 노사 양측이 정부와 입법자가 제안한 규칙을 신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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