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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 칼럼

76년 된 대한민국 1호 과자에 담은 건강의 염원

오피니언 |김현정 한국화가 | 입력 2026. 09. 02. 12:38

상품 중 간식류는 먹고 나면 사라진다. 내용물은 없어졌고, 포장은 대부분 버려진다. 기업은 소비자가 같은 상품을 다시 선택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해태제과 연양갱과의 아트 컬래버레이션은 일회성 포장을 다섯 폭의 작품으로 바꾸는 데서 출발했다. 상품 한 개로는 간식이지만 다섯 종류를 모으면 하나의 병풍 작품이 완성되는 구조였다.

협업이 진행된 시기는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던 때였다. 당시 “건강하세요”라는 말은 의례적인 인사를 넘어 가족과 지인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절실한 안부였다. 필자는 연양갱을 먹는 사람에게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는 그림을 전하고 싶었다. 제품을 감싸는 포장이 소비자에게 건네는 작은 축복이 되기를 바란 것이다. 작품명은 〈신십장생도 (Feat. 해태제과 연양갱)〉다. 화면의 조형적 출발점에는 일월오봉도의 병풍 구조가 놓여 있고, 작품의 주제에는 십장생도가 품어 온 건강과 장수의 염원이 담겼다. 전통 회화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명품 같은 상징들을 오늘의 상품에 연결한 작품이다.

일월오봉도와 십장생도는 해와 산, 물, 소나무 등 여러 소재를 공유하면서도 각기 강조하는 의미가 다르다. 일월오봉도는 해와 달, 다섯 봉우리, 소나무와 폭포를 통해 왕권과 나라의 질서, 영속성을 상징한 궁중 회화다. 왕의 어좌 뒤에 놓여 왕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배경으로 기능했다. 십장생도는 해·산·물·돌·소나무·구름·불로초·거북·학·사슴 등 오래 산다고 여긴 자연물을 한 화면에 담아 무병장수와 평안을 기원한 그림이다. 필자는 일월오봉도의 장엄한 산수와 병풍 구도 위에 십장생도의 건강과 장수의 의미를 더하고, 이를 현대인의 생활 방식으로 다시 해석했다.

한국화는 보이는 대상을 닮게 그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화면 속 소재가 무엇을 상징하고 무엇을 기원하는지 읽는 그림이다. 해와 달은 음양의 조화와 영속성을, 산과 바위는 흔들리지 않는 생명력을, 소나무와 물은 지속과 순환을 의미한다. 한국화에서 자연물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의 안녕을 비는 시각적 언어다. 필자는 전통 산수 속에 오늘날의 건강을 상징하는 장면을 넣었다. 코로나 시대에 건강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는 움직이는 몸과 활기찬 일상이었다. 이에 자전거, 골프, 축구, 등산, 낚시를 즐기는 다섯 인물을 각각의 화면에 배치했다. 이 다섯 종목은 현대사회에서 뚜렷한 마니아층과 동호인 문화를 형성한 운동이자 야외활동이다. 자전거로 먼 길을 달리는 사람, 골프장에서 오랜 시간 걷는 사람, 축구장을 뛰는 사람, 산을 오르는 사람, 물가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을 한 폭씩 새겨 넣었다. 연령과 생활 방식은 다르지만 좋아하는 활동을 통해 건강한 일상을 이어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림 속 인물들은 한복 자락 아래 운동화를 신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갓을 쓴 채 축구공을 차고, 골프채와 낚싯대를 들고 산수 속을 누빈다. 전통 의복과 현대의 운동 장비가 한 화면에서 만나는 방식은 필자의 〈내숭 시리즈〉가 사용해 온 표현법이기도 하다. 오래된 회화 형식 안에 오늘의 생활을 넣어 동시대인의 풍속을 기록한 것이다.

왕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던 궁중 병풍 안에는 이제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평범한 사람들이 들어왔다. 일월오봉도의 수호와 안녕의 의미는 왕실에서 소비자의 일상으로 확장됐고, 십장생도의 장수 염원은 현대인의 움직이는 몸으로 번역됐다. ‘신(新)’이라는 글자는 바로 이러한 변화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다섯 장면은 건강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연양갱을 먹는 순간도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자전거를 타거나 산을 오르고, 골프와 축구를 하며 오랫동안 몸을 움직이다 보면 간편하게 꺼내 먹을 수 있는 달콤한 간식이 필요해진다. 낚시처럼 긴 시간 야외에 머무는 활동에서도 휴대하기 쉬운 바 형태의 간식은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제품의 특징을 긴 설명문으로 나열하는 대신, 활동 중 연양갱을 꺼내 먹는 모습을 작품 안에 담았다. 인물의 행동이 제품을 언제, 어디에서 먹을 수 있는지 보여주도록 한 것이다. 그림은 패키지 장식을 넘어 상품의 사용 시점과 장소를 설명하는 브랜드 언어가 됐다.

연양갱은 1945년 해태제과의 출발과 함께 출시된 대한민국 최초의 과자로 알려져 있다. 협업이 진행된 2021년을 기준으로 76년 동안 생산된 장수 상품이었다. 팥과 국내산 한천을 사용한 부드러운 맛과 세로로 긴 바 형태를 유지하며 국내 제과시장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로 자리해 왔다. 중장년층에게 연양갱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오는 친숙한 간식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등산과 자전거 등 야외활동을 할 때 가방에 넣어 다니며 간편하게 먹는 간식으로 소비 장면이 넓어지고 있었다. 연령대마다 연양갱을 기억하고 선택하는 이유는 달랐지만, 노년층부터 활동적인 젊은 소비자까지 폭넓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이 장수 상품의 중요한 경쟁력이었다.

한국화가 김현정은 선화예중·예고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동양화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2026년 8월 박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이다. 현대 한국인의 삶과 감정을 유머와 풍자로 풀어낸 21세기 풍속도 〈내숭 시리즈〉로 널리 알려졌으며, 작품은 초·중·고 교과서 31종에 수록되었다. EBS 〈해요화 해요〉의 ‘댕기언니’로 활동했으며 서울시와 희망브리지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현재 MBC 드라마 〈가족관계증명서〉와 작품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는 등 미술과 방송, 기업 브랜드를 연결하는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30만 팔로워와 소통하며 국내외 전시와 강연을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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