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나연 기자| 리제네론의 흑색종 신약 병용요법이 면역항암제 황제 키트루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경쟁 신약이 키트루다의 표준치료 지위를 흔들지 못하면서 바이오시밀러 개발사들에는 한층 우호적인 시장 환경이 조성되는 양상이다. 오리지널 키트루다가 특허만료 시점까지 처방 기반을 유지할수록 바이오시밀러가 대체할 시장도 커지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임상 실패가 역설적으로 키트루다 바이오시밀러의 상업적 가치를 지켜내는 버팀목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숫자는 앞섰지만, 키트루다를 넘지는 못했다
리제네론은 15일(현지시간) LAG-3 항체 피안리맙과 PD-1 항체 리브타요 병용요법을 평가한 글로벌 임상 3상에서 1차 평가지표인 무진행생존기간(PFS) 개선의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임상 결과 리제네론의 병용요법은 흑색종 1차 치료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키트루다 단독요법을 통계적으로 넘어서지 못했다.
이번 임상 시험은 이전에 전신치료를 받지 않은 절제 불가능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흑색종 환자 1546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연구진은 피안리맙과 리브타요 병용요법의 효능을 키트루다 단독요법과 직접 비교하는 방식을 취했다. 키트루다는 암종과 병기에 따라 단독요법과 병용요법으로 모두 쓰이지만, 이번 임상의 비교 대상은 흑색종 1차 치료에서 쓰이는 키트루다 단독요법으로 한정됐다.
임상 데이터로는 리제네론의 피안리맙 병용요법이 키트루다보다 병의 진행을 더 늦춘 것처럼 보였다. 고용량 피안리맙·리브타요 병용군의 중앙 PFS는 11.5개월을 기록하며 키트루다 단독군의 6.4개월보다 5.1개월 길었다. 중앙 PFS는 환자 절반에서 병이 악화되지 않고 유지된 기간을 뜻한다. 병용군 환자의 절반은 11.5개월까지 병이 진행되지 않았고, 키트루다군은 이 기간이 6.4개월이었다는 의미다.
두 치료군에서 병이 진행되거나 사망할 위험을 비교한 값인 위험비 역시 고용량 피안리맙 병용군에서 0.845를 기록했다. 이는 피안리맙 병용군의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이 키트루다군보다 15.5% 낮게 추정되었다는 뜻으로, 1보다 낮아 위험도를 낮췄음을 시사한다.
문제는 피안리맙이 통계적 검증에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신약이 이미 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할 때 먼저 기준으로 삼는 표준치료로 자리잡은 오리지널 의약품보다 우월하다고 인정받으려면 사전에 설정한 통계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피안리맙의 고용량 병용군에서 p값은 0.0627로 나타나 사전에 정한 통계 기준을 넘지 못했다. p값은 관찰된 치료 효과 차이가 우연히 나왔을 가능성을 따지는 지표다. 통상 임상시험에서는 0.05 미만을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로 보지만, 실제 성공 기준은 임상 설계 단계에서 유의수준과 분석 방식에 따라 미리 정해진다. 이번 결과는 수치상 개선은 있었지만, 이 차이를 키트루다 대비 확정적인 약효 우위로 인정받을 만큼 우연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위험비도 피안리맙에 유리한 방향으로 나왔지만, 확정적 우위로 보기는 어려웠다. 위험비의 95% 신뢰구간이 0.709~1.008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신뢰구간은 실제 효과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범위를 뜻한다. 위험비에서 1은 두 치료군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기준점이다. 이번 임상은 신뢰구간 상단이 1.008로 1을 넘어, 실제 효과가 키트루다와 다르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했다. 피안리맙 병용요법이 키트루다보다 낫다고 단정할 수 없었던 이유다.
이번 임상은 표면적인 지표 성과와 최종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통계적 기준이 상반된 결론을 가리킨 대표적 사례다. 피안리맙 병용요법은 키트루다보다 병의 진행을 늦춘 것처럼 보이는 PFS 수치와 낮은 위험비를 보였다. 하지만 신약 허가의 필수 관문인 통계적 유의성 기준을 넘지 못했다. 수치상의 개선 효과가 약효 덕분인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인지 검증하지 못하면서, 기존 표준치료인 키트루다를 대체할 만큼의 임상적 우위는 확보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주 체제 굳힌 키트루다, 바이오시밀러 상업성 재부각
이번 임상 결과는 키트루다 바이오시밀러 개발사들에 간접적인 호재로 해석된다. 경쟁 신약인 리제네론의 피안리맙 임상 3상이 좌초되면서 바이오시밀러가 대체할 키트루다 시장 규모가 유지됐기 때문이다.
만약 리제네론의 피안리맙 신약이 키트루다를 대체했다면 바이오시밀러가 공략할 시장도 함께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키트루다의 독점적 지위가 지속되면 바이오시밀러는 한층 명확한 상업적 논리를 펼칠 수 있다. 더 좋은 효능을 가진 신약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오리지널 의약품보다 더 가격이 낮은 바이오시밀러가 대체재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MSD의 실적을 보면 키트루다의 시장 장악력은 여전히 공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MSD는 2025년 키트루다와 키트루다 QLEX 매출이 전년 대비 7% 증가한 317억 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같은 해 MSD 전체 매출인 650억 달러의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다. 키트루다의 처방 기반이 견고하게 유지될수록 후발 주자들의 시장 진입과 매출 성장 가능성이 높아지는 구조다.
과거 항체치료제 시장을 돌아봐도 유사한 선례를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HER2 양성 조기 유방암 치료제 오리지널 의약품인 허셉틴(성분명 트라스투주맙)과 경쟁 신약 라파티닙의 사례다.
라파티닙은 허셉틴을 대체하거나 보완할 유력한 후속 치료제로 평가받으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라파티닙·허셉틴 병용군의 4년 무병생존율은 88%로 허셉틴 단독군의 86%보다 높았고, 위험비는 0.84를 기록하며 수치적인 개선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라파티닙은 ALTTO 임상 3상에서 통계적 유의성 기준을 넘지 못하며 고배를 마셨다. 임상 결과 라파티닙 병용군의 p값은 0.048로 관측되어 사전에 결정된 기준치인 0.025를 초과했기 때문이다.
후발 신약이 기존 표준치료보다 확실한 우위를 입증하지 못하면 처방 전환 명분은 약해진다. 라파티닙 실패 이후에도 허셉틴은 HER2 양성 유방암 치료의 핵심 항체치료제로 남았고, 이 처방 기반은 이후 바이오시밀러가 대체할 시장으로 이어졌다. 유럽에서는 허셉틴 바이오시밀러가 출시 10개월 만에 허셉틴과 같은 성분인 트라스투주맙 전체 시장의 38%를 차지했다. 오리지널 허셉틴이 독점하던 시장의 3분의 1 이상이 바이오시밀러로 이동한 셈이다.
키트루다 시밀러 시장 노리는 K-바이오
국내 바이오 업계에서는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가 키트루다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키트루다 바이오시밀러 CT-P51의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셀트리온은 2024년 8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CT-P51의 미국 임상 3상 임상시험계획을 승인받았다. 이후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규제 완화 흐름을 반영해 임상 설계를 효율화했고,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 3상 시험계획 변경 승인을 받았다. 이에 따라 당초 606명 규모였던 임상 대상자 수는 220명으로 조정됐다.
이번 임상은 이전 치료 이력이 없는 전이성 비편평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환자에게 백금-페메트렉시드 항암화학요법과 함께 CT-P51 또는 키트루다를 투여한 뒤, 두 약물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비교하는 방식이다. 셀트리온은 환자 수 조정을 통해 임상 비용과 기간을 줄이고, 키트루다 특허만료 시점에 맞춘 시장 진입 속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임상 1상과 3상을 동시에 추진 중인 후보물질 SB27을 통해 키트루다 바이오시밀러 시장 진입을 추진하고 있다. SB27은 지난 2024년 1월에 착수한 임상 1상에서 키트루다 대비 약동학 동등성을 확인받은 바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현재는 전이성 비편평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SB27과 키트루다의 유효성, 안전성, 약동학, 면역원성을 직접 비교하는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임상 1상과 3상을 모두 2026년 안에 끝마칠 계획이다.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