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심두보 기자| 2026년 4월, 한국 의약품 유통업계는 본사 앞 1인 시위로 봄을 열었다. 한국의약품유통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4월 1일부터 대웅제약 본사와 전국 지사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에 돌입했고, 회원사 건물과 배송 차량에는 '거점도매 전면 철회'가 적힌 스티커와 현수막이 걸리기 시작했다.
40곳에서 5곳으로…다시 그려지는 유통망
사건의 뿌리는 대웅제약의 거래처 구조 변경이다. 대웅제약은 3월 1일부터 전국을 10개 권역으로 나누고, 권역별 거점 도매를 지정해 해당 도매업체를 중심으로 의약품을 공급하는 블록형 거점도매를 시행했다. 대웅바이오와 한올바이오 품목까지 포함된다. 제안서 평가를 거쳐 최종 선정된 업체는 △인천약품 △백제약품 △복산나이스 △유진약품 △아이팜코리아 등 5곳이다.
이전까지 대웅제약은 전국 40여 개 도매업체와 병행 거래 체제를 유지했다. 산술적으로 보면 거래처가 8분의 1 수준으로 압축된 셈이다. 한 제약사의 유통망이 한꺼번에 이 정도로 수렴된 사례는 드물다. 선정되지 못한 도매업체 입장에서는 거래처 하나를 잃는 차원이 아니라, 상위 공급처 전체가 증발한 것과 같은 충격이다.
유통업계가 문제 삼은 첫 번째 대목은 계약 해지 방식이다. 한국의약품유통협회에 따르면 대웅제약은 기존 거래 도매업체들의 계약기간이 서로 다름에도 일괄 해지를 통보했다. 두 번째는 판매 지역 제한이다. 100% 담보를 제공한 도매상에 대해서도 권역 밖 판매를 제한했다는 주장이다. 세 번째는 상세 조건이 명기되지 않은 계약서 강요 문제다.
협회는 이를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 행위로 규정했다. 대웅제약 거래 의존도가 높았던 도매업체 입장에서는 계약 연장과 판매 권역이 사실상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유통협회는 공정거래위원회 고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약사단체도 가세했다. 대한약사회와 경기분회장협은 권역 간 공급 불균형, 반품 대응 저하, 약국 접근성 훼손을 우려하며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유통 선진화인가 거래처 정리인가…두 프레임의 충돌
대웅제약의 공식 설명은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회사 측은 블록형 거점도매가 유통 단계의 중복을 줄이고 약국·의료기관에 의약품을 더 원활히 공급하기 위한 협력 모델이라는 입장이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과는 무관하며, 약사와 환자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유통 선진화 조치라는 것이 대웅 측 설명이다. 철회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두 프레임은 단어만 바꾸면 동일한 현상을 서로 다르게 묘사한다. 대웅이 말하는 유통 선진화는 유통협회가 말하는 중소 도매 배제와 맞닿아 있고, 대웅이 말하는 공급 효율화는 업계가 말하는 판매지역 제한과 접점을 이룬다. 사실의 차원이 아니라 해석의 차원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해석의 무게중심을 가늠하려면 정량 근거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웅제약이 제시한 효율성·편의성 주장에는 결품률 개선, 공급 리드타임 단축, 약국 만족도 등의 수치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유통업계가 주장하는 공급 차질 우려 역시 제도 시행 두 달 시점에서 정량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다. 양측 모두 사실로 돌아갈 데이터가 희박한 국면이다.
다만 이번 사안은 대웅제약과 유통업계의 개별 분쟁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한국 의약품 유통구조가 수십 년간 유지해온 관행이 재조정될 수 있는 변곡점이 만들어졌다. 공정거래법과 약사법이라는 두 축이 이 사안을 어떻게 해석할지, 중소 도매와 약국 현장이 어떻게 버틸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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