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나연 기자| 홈플러스가 2000억원 규모 긴급운영자금(DIP)을 조달하게 되면서 전단채 투자자도 당장의 파산 위험에서는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점포 영업을 재개하고 제3자 매각을 다시 추진할 시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다만 DIP는 기존 전단채보다 먼저 변제될 가능성이 큰 채무인 만큼, 회생에 실패하면 전단채 투자자의 회수 여건은 오히려 악화할 수 있다.
홈플러스의 전단채는 카드대금채권을 기초로 발행된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다. 홈플러스가 카드사에 지급해야 할 구매대금채권을 유동화회사가 넘겨받고, 이를 기초로 전단채를 발행해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구조다. 2025년 회생절차 신청 이후 상환되지 않은 홈플러스 관련 ABSTB는 약 4000억~48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증권사를 통해 개인투자자에게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파산 막지만 먼저 갚아야 할 채무 늘어
이번 DIP가 전단채 투자자에게 주는 긍정적 효과는 즉시 파산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다. 메리츠금융 계열사의 자금 지원이 실행되면 전단채 투자자도 청산 대신 회생을 통한 장기 변제를 다시 기대할 수 있다.
즉시 파산은 전단채 투자자에게 가장 불리한 선택지가 될 가능성이었다. 홈플러스의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은 다수 점포에 담보권을 설정해 놓은 반면, 전단채는 별도의 부동산 담보가 없다. 메리츠가 담보로 확보한 점포 61곳 가운데 상당수가 영업 중단 직전까지 정상 운영된 핵심 점포였다는 조사도 나왔다. 청산 시 우량 자산의 매각대금이 담보채권 상환에 먼저 사용되면 전단채에 배분할 일반재산은 제한될 수 있다.
DIP 2000억원은 이 같은 즉시 청산을 피하고 영업가치를 보존할 기회를 제공한다. 자금이 상품 매입과 점포 운영에 투입돼 매출이 회복되면 홈플러스의 계속기업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 매각 상대방이 등장하거나 회생계획이 인가되면 전단채 투자자는 파산 배당보다 높은 금액을 장기간에 걸쳐 돌려받을 가능성이 생긴다. 기존 회생계획안에서도 전단채를 약 10년에 걸쳐 상환하는 방안이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DIP는 공짜로 들어오는 자금이 아니다. 법원의 허가를 받아 회생절차 중 조달한 신규 운영자금은 공익채권으로 인정될 수 있고, 공익채권은 일반 회생채권보다 우선해 변제된다. 전단채가 일반 금융성 회생채권으로 분류된다면 홈플러스는 DIP 원리금과 다른 공익채권을 먼저 갚은 뒤 남은 재원으로 전단채를 변제해야 한다. 회생을 살리기 위해 투입한 돈이 기존 투자자의 변제순위를 한 단계 더 뒤로 미루는 구조다.
DIP가 2000억원 늘었다고 해서 전단채 투자자의 회수재원이 곧바로 같은 금액만큼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홈플러스는 현금 2000억원을 받는 동시에 2000억원의 신규 채무를 부담한다. 이 자금을 사용해 기업가치가 2000억원 이상 늘어난다면 전단채 투자자에게도 결과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다. 반대로 급여와 임차료, 물류비 등으로 자금이 소진됐는데 매출이나 매각가치가 회복되지 않으면 우선채무만 늘어난 결과가 된다.
회생 성공해야 전단채도 산다
전단채 투자자 입장에서 이번 DIP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은 자금 투입 이후 홈플러스의 가치 변화다. 예를 들어 즉시 청산할 경우 전단채 몫으로 남는 재원이 1000억원이지만, DIP 투입 후 정상화와 매각을 통해 배분 가능 재원이 3000억원으로 늘어난다면 우선변제되는 DIP를 감안해도 회수 여건은 개선될 수 있다. 반면 DIP가 모두 소진된 뒤에도 회사의 매각가치가 증가하지 않으면 전단채는 더 많은 우선채무 뒤에서 변제를 기다려야 한다. DIP가 회생의 마중물인지 손실을 연장하는 자금인지는 기업가치 회복 여부로 판단해야 하는 이유다.
현재 홈플러스에는 DIP 외에도 상당한 공익채권이 누적된 것으로 알려졌다. 회생절차 개시 후 발생한 상품대금과 임차료, 임금, 퇴직금 등 공익채권이 약 1조원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신규 DIP가 공익채권으로 인정되더라도 다른 공익채권과 함께 홈플러스의 현금과 자산을 변제재원으로 사용하게 된다. 기존 전단채 투자자에게는 자기들보다 앞서 갚아야 할 채무 총액이 이미 상당하다는 의미다.
추가 DIP가 필요해지면 전단채 투자자의 불확실성은 더 커진다. 이번 2000억원이 상품 공급 재개와 점포 운영에 소진된 뒤 매출 회복이 지연되면 홈플러스는 2차 DIP를 추진해야 할 수 있다. 신규 DIP가 거듭 공익채권으로 인정되면 전단채보다 앞선 채무가 계속 늘어난다. 반대로 추가 자금을 구하지 못하면 다시 파산 위험에 직면하게 돼 전단채 투자자는 회생과 후순위화 사이에서 같은 딜레마를 반복하게 된다.
투자은행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단채 투자자에게 이번 DIP는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거래"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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