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나연 기자| 고려아연이 추진 중인 11조원(약 74억달러) 규모의 미국 제련소 건설 사업 ‘프로젝트 크루시블’의 자금 조달 구조가 과도한 레버리지(부채)에 의존하고 있어 재무적 리스크가 높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당초 고려아연 측은 "미국 정부와 전략적 투자자(SI)가 자금의 90%를 분담한다"며 안정성을 강조했으나, 금융감독원 공시를 분석한 결과 해당 자금의 대부분이 상환 의무가 있는 부채로 구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전체 차입금의 절반을 차지하는 약 3조6000억원 규모의 상업 은행 대출(신디케이트 론) 만기가 5년으로 설정되어 있어, 제련소 가동 직후 대규모 유동성 압박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투자·사업 법인 이원화···자금 조달 주체 분리
프로젝트 크루시블의 추진 구조는 자금 유입 창구인 투자 법인과 실제 사업을 수행하는 사업 법인으로 이원화돼 있다. 이에 따라 각 법인이 조달하는 자금의 원천과 채무를 부담하는 주체 역시 분리되는 구조다.
우선 미국 전쟁부 산하 전략자본실(OSC)로부터 자금을 차입한 주체는 합작법인 크루시블 JV(Crucible JV LLC)다. 이 법인은 OSC 차입금 12억5000만달러에 출자금을 더해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 지분 약 10.6%를 취득했다.
반면 실제 제련소 건설과 운영을 전담하는 사업 주체는 고려아연의 100% 손자회사인 크루시블 메탈스(Crucible Metals, LLC)다. 크루시블 메탈스는 공장 건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총 47억달러 규모의 대규모 외부 차입금을 조달한다.
주목할 점은 이 47억달러가 단일 대출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이원화된 차입 구조는 지난 12월 26일 정정 공시된 ‘타인에 대한 채무보증 결정’ 보고서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전체 차입금의 절반인 약 23억5000만달러(약 3조6738억원)는 JP모건이 주관하는 민간 상업은행 대출인 신디케이트론(Syndicated Loan)으로 구성되며, 나머지 절반(약 23억5000만달러)은 OSC가 제공하는 별도의 정책 자금 대출이다. 크루시블 메탈스는 성격이 상이한 이 두 가지 채무 모두에 대해 직접적인 상환 의무를 진다.
● '투자'는 8%뿐… 남의 돈 빌려 짓고 책임은 '나 홀로'
문제는 법인은 분리돼 있으나 프로젝트 크루시블의 전체 부채 상환 책임이 고려아연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13일 금융감독원 공시와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총사업비 74억달러 중 외부 투자자가 원금 손실 위험을 부담하는 투자금(Equity)은 미국 전쟁부가 출자한 1억5000만달러와 전략적 투자자의 출자금 4억5000만달러의 합계인 6억달러로 전체의 8.1% 수준이다. 반면 전체 자금의 약 80%에 해당하는 미국 전쟁부 차입금(12억5000만달러)과 크루시블 메탈스의 신디케이트론(47억달러)을 합친 59억5000만달러는 전액 부채로 충당된다.
고려아연은 사업 법인인 크루시블 메탈스가 조달하는 최대 46억9800만달러(약 6조9000억원)의 차입금 전액에 대해 채무보증을 제공했다. 리스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크루시블 JV가 전쟁부로부터 차입한 12억5000만달러에 대해서도, JV가 취득한 고려아연 신주 전량과 해당 계좌의 현금성 자산에 근질권을 설정해 담보를 제공하고 있다.
외형상으로는 미국 정부와 협력하는 모양새지만, 자금 조달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고려아연의 신용을 담보로 한 '고강도 레버리지(차입)' 구조인 셈이다. "자금의 90% 이상을 미국 정부와 투자자가 분담한다"는 고려아연 측의 설명은 '자금의 출처'를 의미할 뿐 사업 실패 시 '고통의 분담'을 뜻하지는 않는다.
고려아연은 지난 1일 주주서한을 통해 재무적 부담 완화와 안정성을 강조했으나, 실상은 사업 진행 과정의 모든 재무적 리스크가 고려아연에 집중된 형국이다. 최악의 경우 빚을 갚지 못하면 담보로 잡힌 고려아연의 지분이 미국 정부로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구조다.
● 장기전인 줄 알았는데… 5년 뒤 3.6조 갚아라?
이러한 부채 구조가 재무적 뇌관으로 지목되는 핵심 이유는 만기 구조의 불일치에 있다. 25년 만기의 장기 자금인 전쟁부(OSC) 차입금과 달리, 민간 상업은행이 주도하는 신디케이트론은 상환 스케줄이 매우 촉박하게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26일 정정된 공시에 따르면, JP모건 등 대주단으로부터 조달하는 최대 23억4900만달러(약 3조6738억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 만기는 ‘금융 종결(Financial Close) 후 5년’으로 확정됐다.
여기서 금융 종결이란 대주단과 대출 약정을 체결한 뒤 인허가나 담보 설정 등 자금 인출을 위한 선결 조건이 모두 충족돼 실제 자금 집행이 가능해진 시점을 뜻한다. 공사비 투입과 함께 '빚의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금융 종결 시점을 2025년 말로 가정할 경우 대출 만기는 2030년 12월 말이 된다.
대규모 제련소 건설에 통상 수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촉박한 상환 일정이다. 고려아연은 2029년부터 단계적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장을 완공하고 기계를 돌려 수익을 내기 시작할 시점에 3조60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원금 상환일이 닥치는 셈이다.
초기 가동 비용과 설비 안정화 기간 등을 고려할 때 자체 현금 창출력만으로 차입금을 전액 상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2030년 말 만기 도래 시점에 맞춰 새로운 대출로 기존 채무를 상환하는 리파이낸싱이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된다.
● 정권 교체기 맞물려 리파이낸싱 리스크 고조
시장에서는 리파이낸싱 시점으로 예상되는 2030년이 지정학적·정치적 리스크의 정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2029년 1월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기 임기가 종료되는 시점이다.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해 제련소 건설을 지원했던 행정부가 물러난 직후, 차기 정부의 정책 기조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주단 심사를 받아야 하는 셈이다.
이에 통상적인 대규모 플랜트 건설 및 수율 안정화 소요 기간을 감안할 때, 5년이라는 만기는 여유가 없는 조건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 정부와 전략적 투자자의 참여를 내세워 사업의 안정성을 강조했으나, 실제 자금 조달 구조의 핵심은 단기간 내에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상업적 대출 계약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댓글 (0)
댓글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