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美 기업 처벌하려면 미국 설득부터 해야 하나

오피니언 |황태규 기자|입력

|스마트투데이=황태규 기자| 프랑스어로 ‘판을 뒤엎는다’는 뜻의 ‘Coup’, 짧고 강한 충격을 뜻하는 ‘Pang’이 합쳐진 쿠팡(Coupang). 쿠팡이 그 어원 그대로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쿠팡이 숨겼던 사실을 취재한 기사들이 쏟아졌지만, 그 중에서도 최근 논란이 된 것은 정부를 상대로 쿠팡이 보인 태도였다.  

한국 고객 약 3300만명의 정보를 유출했음에도 김범석 쿠팡Inc 의장은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았고, 한국 정부와 협의 없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으며, 무엇보다 쿠팡은 이 조사 결과와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은 보상안을 미국 증권 당국에 공시해 현지 투자자를 안심시키는 데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청문회에 참가한 의원들은 박대준 전 쿠팡 한국법인 대표를 비롯해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 대표들을 열심히 윽박지르며 갖가지 위협을 토해냈다. 쿠팡에 대한 영업정지를 검토하겠다는 엄포를 놓았음에도, 이후의 청문회에서도 쿠팡의 고자세는 바뀌지 않았다. 

쿠팡은 싼 가격과 빠른 배송을 원하는 한국 소비자들의 맹목적 사랑을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미국 증시에 상장한 미국 기업 쿠팡은 자신의 나라가 한국에 있는 회사까지 지켜줄 것이란 믿음도 큰 것처럼 비쳤다.

쿠팡은 최근 5년간(2021년~2025년 3분기) 미국 정부에 150억원 이상의 로비 자금을 뿌렸다고 한다. 로비 대상 역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재무부, 농무부까지 전방위적이다. 

실제 미국 정치권과 재계는 쿠팡을 저버리지 않았다. 미국 공화당 인사들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측근들이 쿠팡에 대한 한국 정부의 조사에 “미국 테크기업에 대한 차별”이라고 비난했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에만 입증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서한을 보냈다. 한국 국민의 정보를 유출한 한국내 지배적 사업자 기업을 처벌하는 일이 최우방국 미국과의 외교∙안보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폭탄이 돼 버린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 정부가 쿠팡에 대해 어떠한 판단을 내릴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이번 쿠팡의 사례에서 국내 법상 과징금은 최대 1조2000억원까지 부과 가능하다. 개인정보보호법상 과징금 상한은 기업의 최근 3년 평균 매출액의 3%로, 쿠팡의 지난해 매출이 41조 원임을 감안한 수치다.  

물론 실제로 유사 사례에서 상한에 근접한 과징금이 매겨진 적은 거의 없다. 그러나, 쿠팡의 경우 전례가 없는 규모의 정보 유출이자 국가적 공분을 사고 있는 만큼 상한에 근접한 처벌이 내려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기업이 한국에서 불법 행위를 저지르고, 처벌받은 사례로는 2021년의 구글과 2022년의 페이스북(현 메타)이 있다. 구글은 당시 안드로이드 독점 남용으로 공정위에서 2030억원의 과징금을 부여받았으며, 대법원 확정 후 납부 완료했다. 2022년 페이스북은 개인정보 무단 수집에 대한 처벌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145억원의 과징금이 매겨졌고, 이에 불복했으나 행정소송에서 패소한 후 집행은 완료됐다. 당시 미국 정부는 두 기업에 대한 처벌에 아무 의견도 내지 않았다. 

쿠팡보다 더 많은 금액을 로비 금액으로 지불하는 구글과 메타를 처벌할 때 잠자코 있던 미국 정부가 지금 쿠팡을 감싸는 이유는 뭘까.

구글과 메타는 한국 매출 비중이 전체의 1% 미만일 정도로 미미하지만, 쿠팡은 한국 매출에 90% 이상을 의존하고 있다. 이런 쿠팡을 한국 정부가 제재하면 미국은 자국 회사에 대한 경제적 타격부터 고려하게 된다. 구글, 메타의 1% 정도야 없어도 그만이지만 쿠팡의 90%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쿠팡은 한국서 전례없는 규모의 정보보호 유출 사고를 쳤다. 동시에 이에 따른 합당한 처벌을 내릴 때 눈치가 보이는 미국 기업으로의 포지셔닝에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우리 정부는 쿠팡에 대한 강력 처분을 내리기 위해서 미국을 먼저 설득해야 하는 불쾌한 상황을 맞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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