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월스트리트'로 불리는 가부토쵸가 종래 증권 및 금융거래 중심지에서 핀테크와 스타트업의 보금자리로 거듭나고 있다고 재팬타임즈가 보도했다.
1990년대 초 도쿄 츄오구 지역은 수많은 주식 투자자와 증권사 직원들로 붐볐다. 가부토쵸에 있었던 당시도쿄증권거래소(TSE)에서는 증권 거래가 수동으로 처리됐다. 주가가 크게 오르는 날은 밤거리가 흥청거렸다. 100만 엔 정도의 돈을 들고 다니며 술마시는 일은 흔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이런 호화로운 장면들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증권사들은 대거 이탈하고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의 발길은 뜸해졌다. 1980년대 자산 거품 시대에는 이 지역에 50개 이상의 증권사가 있었다. 가부토초의 전환점은 1990년대에 컴퓨터화된 증권 거래 시스템과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솔루션의 도입이었다. 이는 수십 개의 증권사들이 더 이상 비싼 땅에 존재할 이유를 없앴고, 증권사들은 그곳을 떠났다. 1999년 도쿄증권거래소는 거래를 중단했다.
지역 활성화에 나선 것은 가부토쵸에 본사를 둔 부동산 개발회사 헤이와부동산이었다. 헤이와는 도쿄 증권거래소가 있는 건물을 포함해 이 지역에 많은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다.
2014년 헤이와는 이곳을 재개발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핀테크 스타트업과 자산운용사를 유치해 가부토쵸를 새로운 금융 중심지로 탈바꿈시키겠다는 비전을 추진했다. 프로젝트의 목적은 일반인의 투자를 촉진하고 일본이 직면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사회 문제란 사람들의 투자 마인드였다. 정부는 과거 20년 동안 국민들이 은행에 쌓아 둔 엄청난 양의 자금을 투자로 전용하도록 장려했지만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다.
헤이와는 사람들이 투자에 관심이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산운용사가 판매하는 매력적인 금융상품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가부토쵸가 자산운용사의 허브가 될 수 있다면 투자를 유인할 수 있는 상품을 더 많이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핀테크 분야도 크게 성장할 시기였다. 핀테크와 자산관리를 통해 가부토쵸가 더 강력한 커뮤니티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일본에서는 핀테크 관련 스타트업들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스타트업 생태계 육성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 행정부의 핵심 경제정책 구상이기도 했다.
가부토쵸의 장점은 마루노우치나 인근의 다른 주요 비즈니스 지역에 비해 사무실 임대료가 대단히 저렴하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헤이와는 소유한 건물들을 개조해 핀게이트(Fingate)라는 이름의 사무동을 만들었다. 핀게이트는 ‘핀테크의 문’이라는 의미다.
2019년 20개 미만이었던 핀게이트 입주 기업 수는 이달 1일 현재 65개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이 지역을 새로운 비즈니스 중심지로 만들기 위한 헤이와의 노력은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입주기업은 100개 정도로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다.
헤이와는 단순한 부동산 개발업자가 아니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세입자를 지원했다. 핀게이트 입주 기업들은 백오피스 작업을 관리하는 컴퓨터나 소프트웨어 등 각종 툴 사용료를 할인받는다. 헤이와는 이를 위해 공급자들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스타트업을 위한 멘토링 서비스를 제공하고 커뮤니티 유대를 강화하기 위한 이벤트를 진행한다. 핀게이트에는 또 금융청과 도쿄의 지사가 상주하고 있다. 때문에 기업은 각종 규정이나 허가에 대해 상담이 필요할 경우 관계자와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가부토쵸는 외국 사업자들도 적극 유치하고 있다. 핀게이트 세입자의 약 20%가 해외에서 진출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더 많은 외국 핀테크 기업들이 입주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헤이와에 임대를 문의하는 해외 기업이 늘고 있다고 한다.
싱가포르의 핀테크 스타트업 니움(Nium)도 가부토쵸에 진출한 외국기업이다. 기업용 결제 인프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일본 사업자들이 핀테크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니움의 오치 가즈마 일본 지사장은 “처음에는 가부토쵸 사무실이 그다지 활기차지 않았지만 핀테크와 자산운용사들의 진입이 크게 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오치가 묘사한 것처럼, 가부토쵸는 증권 중심지로 번창하던 시절과 완전히 달라졌다. 거리는 젊은이들로 붐비며, 현대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상점들과 카페들이 들어차고 있다.
가부토쵸의 변화는 일본 기업문화와 성격이 크게 달라졌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소니, 후지쓰, 미쓰비시, 도요타 등 전통 기업이 경제를 지배했던 일본이었다. 스타트업이 흥성하는 기업 문화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 경제 전체가 달라지고 있다. 스타트업 문화와 열기는 오히려 한국을 앞서는 듯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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