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달러 기준 문제없다” 영풍 “납입자본 감소는 팩트”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증권 |심두보 기자|입력

고려아연 “달러로 투자 받아 달러로 사용”…내추럴 헤지 강조 영풍 “납입자본금에 부족이 생겨 기존 주주들 피해”

|스마트투데이=심두보 기자|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이 ‘쩐의 전쟁’을 넘어 ‘법리 전쟁’의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번 전장의 핵심은 다름 아닌 ‘환율’이다. 지난 26일 납입이 완료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두고,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은 “환율 하락으로 인한 발행가액 규정 위반”이라며 공격에 나서고 있다.

반면 고려아연 측은 이번 자금 조달이 미국 테네시 제련소(Project Crucible) 건설을 위한 ‘달러 베이스’ 투자임을 강조한다. 환율 변동과 무관하게 달러 투자금이 확정되었으므로 사업적 실질에는 문제가 없다는 논리다.

● 고려아연 ‘내추럴 헤지’ vs. 영풍·MBK ‘주주 보호가 핵심’

고려아연은 환율 변동으로 인해 신주 할인이 과도하게 됐다는 보도에 대해 “신주 발행과 관련한 허위 주장과 왜곡된 해석이 보도로 이어지며 시장 질서를 훼손하고 있다”며 “악의적인 사실 왜곡과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해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강력히 반응했다.

고려아연은 “이번 유상증자는 이사회 결의를 통해 발행가액과 발행 주식 수, 발행 총액이 모두 미화 기준으로 확정됐으며 환율 변동에 따라 사후적으로 달라지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신주 발행 대금은 국내 환전을 거치지 않고 달러로 그대로 미국에 투자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를 전형적인 ‘내추럴 헤지(Natural Hedge)’ 전략으로 해석한다. 내추럴 헤지는 별도의 파생상품이나 금융 기법을 동원하지 않고, 수입과 지출의 통화를 일치시킴으로써 환율 변동 위험을 자연스럽게 제거하는 재무 전략을 의미한다. 즉, ‘달러로 조달해 달러로 지출’하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어떻게 변동하든 회사가 확보한 자금의 실질적인 미국 내 구매력(Purchasing Power)은 일정하게 유지된다. 고려아연은 이 점을 들어 ‘환율 변동은 장부상의 숫자일 뿐, 실제 사업 진행에는 리스크가 없다’고 주장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맹점은 고려아연의 '적(籍)'에 있다. 고려아연은 미국 나스닥이 아닌, 원화(KRW)를 기반으로 하는 한국거래소(KRX) 상장법인이라는 점이다. 미국에서 받은 달러를 미국에서 모두 쓴다고 하더라도, 달러로 받은 돈은 환율을 반영해 원화로 계산되고, 이 원화 금액이 장부에 적힌다. 즉, 원화 환산 금액이 줄어들면 재무제표상 ‘주식발행초과금’은 그만큼 적게 찍힌다. 회사 장부에 꽂히는 자본 확충 효과가 173억원만큼 증발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회계적 사실이다.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진행하고 있는 영풍은 “이사회가 환율 변동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외화 납입을 고집함으로써, 이사회에서 결의한 내용과 실제 유상증자 금액이 달라졌을 뿐 아니라, 납입자본금에 부족이 생기기도 하여 기존 주주들에게 그 피해를 입힐 위험이 있어 조속히 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고려아연 “한미 협력 훼손 의도” vs 영풍 “문제를 적법하게 해결”

고려아연은 신주 할인율 10% 초과 논란에 대해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건설과 한미 간 전략적 협력을 훼손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며 위법성에 대해 단호히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영풍은 “자본시장법의 발행가액 규제를 위반한 이번 신주 발행은 원천 무효 사유에 해당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라며 “고려아연 측에서 이사회 결의, 정정공시 등 가능한 방법을 통해 빨리 이 문제를 적법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문제될 것 없다는 고려아연과 중대한 사안이라는 영풍 간의 시각 차이가 매우 큰 셈이다.

고려아연이 다시 이사회를 열어 수정된 금액으로 결의를 하고 정정공시를 내면 되는 게 아니냐는 시장의 의견도 있지만, 이는 고려아연에게는 불리한 절차다. 크루셔블 JV(Crucible JV)가 연내 유상증자 대금을 납입해야만 내년에 있을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

이 같은 복잡한 상황 가운데 고려아연의 기존 입장이 도전을 받고 있다. 고려아연은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는 국가 기간산업 보호와 글로벌 공급망 안보를 위한 핵심 사업이지, 경영진 개인의 안위를 위한 게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투자은행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러한 고려아연의 입장에서 본다면, 납입일을 올해로 맞추는 것보다 논란이 없는 유상증자가 이뤄지게 노력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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